원전 폐쇄한 자리에서 배터리 만드는 독일 에너지전환 근황[기후로운 경제생활]

독일도 탈원전 접었다? 러-우 전쟁에도 원전 재가동 불가 기조 여전
원전 재가동 논의 대신 재생에너지 확대 중심으로 '속도 조절' 중
자원 빈국·수출의존형, 독일은 여전한 한국의 벤치마킹 대상
폐원전 부지에 초대형 배터리 저장소… '후퇴 아닌 진화'의 상징
국제 가스가격 10배 폭등 속 '재생에너지 방패막이'로 40% 인상 그쳐
시민이 고르는 전기 요금제, 100% 재생에너지 요금제가 더 저렴해


◆ 홍종호> 독일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염광희 선임연구원 나와 계십니다. 박사님 안녕하세요?

◇ 염광희> 네. 안녕하세요.

◆ 홍종호> 곧 다시 독일로 간다고 하셨는데 바쁘신 와중에도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에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특히 국내 청취자들께서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연구소를 잘 모르시니 연구소 소개도 간단히 해 주시고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설명해 주시죠.

◇ 염광희> 네. 귀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는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민간 에너지 정책 싱크탱크입니다.

◆ 홍종호> 민간 연구소군요.

◇ 염광희> 예. 그렇습니다. 2012년 4월에 설립됐으니까 만 13년이 된 민간 싱크탱크인데요. 후쿠시마 사고가 날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이 재생에너지를 많이 보급한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점에 독일에서 17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독일의 시민 사회에서 봤을 때는 후쿠시마의 사고가 났는데 독일 원전이 어떻게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더욱 빠르게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서 이런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모아져서 설립된 싱크탱크입니다. 처음 설립 당시에는 8명 정도가 근무했었는데 지금은 약 180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 홍종호> 180명의 연구원이 있군요.

◇ 염광희> 예. 그렇습니다. 독일은 우리나라의 정치 체계와는 달리 유럽연합이란 곳이 있습니다. 독일 국가에서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싶어도 유럽연합 내에서 불평등이나 차별 문제가 생기면 독일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수 없기 때문에 저희가 브뤼셀에도 사무소를 냈고요. 특히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베이징하고 방콕에도 사무실을 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홍종호> 박사님은 그곳에서 어떤 역할을 하세요?

◇ 염광희> 저는 한국을 담당하는 선임 연구원입니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가 처음 출범했을 때는 독일만 담당해서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려고 했는데 저희의 영향력이 조금씩 커지면서 지역적인 범위도 넓혀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저와 같이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연구원들도 30명이 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 그리고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 홍종호> 독일 정치권 또는 학계에서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관심도가 높습니까?

◇ 염광희> 그럼요. 엄청나게 높죠. 우리나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0월에 탄소 중립 선언을 하셨는데요. 그게 굉장히 놀라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 홍종호> 독일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나요?

◇ 염광희> 그렇습니다. 독일도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알고 있고요.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한국이 에너지 전환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면 동남아시아까지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CBS 경제연구실 캡처

◆ 홍종호> 사실 저희 방송에서 여러 번 다뤘는데요.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0%에 머무르고 있고 독일은 60%와 같은 숫자들이 나오고 있잖아요. 과연 한국이 독일을 모델로 해서 따라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 가능한 것인지, 바람직한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한국 사회 내에 있는 것 같아요. 박사님은 한국에서 활동도 하셨고 시민단체 활동과 정부에서 근무도 하셨죠. 지금은 독일에서 근무하고 있으신데 어떻습니까? 독일이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한국이 벤치마킹할 국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 염광희> 한국과 독일의 유사성이 매우 많습니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분단의 경험도 있었고요. 지금 먹고 사는 것과 관련된 경제 구조를 보면 에너지 다소비형 수출 중심의 제조업이 GDP를 이끌고 있는 구조도 같고요. 특히 국내 총수입에서 수출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독일과 우리나라가 굉장히 높은 편에 들어갑니다.

◆ 홍종호>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나라죠. 한국은 훨씬 높고요.

◇ 염광희>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 중에서 한국, 독일보다 수출입 비중이 높은 나라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정도에 불과합니다. 경제 구조가 똑같고요. 또 하나 유심히 살펴봐야 할 것은 두 나라 모두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 같은 경우에도 2021년 기준으로 보면 68% 정도의 1차 에너지를 다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죠. 우리는 90%가 넘고요. 이런 자원의 보유 현황이나 경제 구조, 국가 규모 등을 봤을 때 과연 독일이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나라인가 하면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유의미한 비교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CBS 경제연구실 캡처

◆ 홍종호> 저는 독일을 보면서 연구자로서 가장 신기한 것은 국토 면적도 한국의 약 4배이고 인구도 우리보다 3천만 명 이상이 많은 8,400만 명 정도잖아요. 덴마크와 같이 규모가 작은 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90% 한다는 것보다도, 이렇게 경제 규모가 큰 나라인 독일이 60%를 찍고 있다는 게 굉장히 놀랍게 다가오긴 하는데요. 말씀하신 대로 한국과 독일이 산업 구조와 무역 의존도에 있어서는 유사성이 있음에도 어떻게 재생에너지에 있어서는 많이 다른 길을 걷게 된 걸까요? 언제부터 달라진 걸까요? 말씀하신 대로 독일은 석탄도 많고 가스는 다 수입하고 있고요. 안에서 원전도 꽤 하던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은 에너지 공급 구조가 굉장히 많이 바뀌어 있잖아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다른 길을 가게 된 건지 분석해 주시죠.

◇ 염광희> 네. 연구하시는 학자분마다 해석이 다 다를 수 있는데요. 제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경험한 바로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1986년도에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날 당시에 제가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글을 쓰기 위해서 비교를 해보니까 체르노빌에서 베를린까지가 직선거리로 약 1,100km 정도 되더라고요. 후쿠시마에서 서울까지가 약 1,200km 되고요.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와는 달리, 체르노빌 사고가 났을 때는 바람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바람에 독일이 아주 직접적인 방사능 낙진의 피해를 봤습니다.

◆ 홍종호> 그런 일이 있었군요.

◇ 염광희> 네. 그래서 당시 문헌을 찾아보면 체르노빌 사고가 나고 정확히 8개월에서 9개월 이후부터 베를린에서 다운 증후군 신생아의 출산율이 급증했고요.

◆ 홍종호> 실제로 그런 피해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군요.

◇ 염광희> 그렇습니다. 갑상선암 환자도 많이 증가했고요. 최근 들어서도 바이에른 지역의 야산에서 버섯과 멧돼지를 조사하면 유럽연합의 기준치를 상회하는 세슘이 검출되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겪다 보니 이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였다는 것이죠.

◆ 홍종호> 핵폐기물 저장소 이런 얘기를 떠나서 우리가 직접적인 피해를 봤다, 원전이 무섭다는 생각을 독일 국민이 하게 됐다는 말씀이군요.

◇ 염광희> 그렇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다당제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요. 녹색당이 유효한 득표율을 계속 받으면서 의회에서 본격적으로 탈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얘기했습니다. 결국 시민들이 원전에 대해 갖는 두려움과 공포가 정치를 통해서 정책으로 구체화됐고 우리와는 다른 경로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석합니다.

◆ 홍종호> 이런 보도가 있어요. 독일은 물론 연정을 합니다만 기독교 민주당, 기민당이 중도 보수 성향인데 이 정당이 집권하면서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원전에 대한 입장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얘기가 좀 나오는데요. 독일 현지에 계시면서 보기에 정치적 상황이 어떻습니까?

◇ 염광희> 네. 지금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이 에너지 전환에 대해서 조금 소극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는 국민에게 보다 저렴하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이 더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재밌게도 연합 정부를 구성해서 집권하고 있는데요. 연합 정부의 파트너인 사민당은 재생에너지에 우호적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는 연합 정부 내에서 에너지 정책과 관련해 특별하게 방향성이 구체화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에너지 관련 법이 아직 개정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큰 방향에서는 이전 정부의 방향성, 원칙, 전략 등을 추진해 나가되,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 속도는 조금 조절될 수 있을 걸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CBS 경제연구실 캡처

◆ 홍종호> 메르츠 총리가 기민당 소속이고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을 띠니까 아무래도 재생 에너지에 더 우호적이라는 건데요. 어떻게 보세요? 잘 화합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앞으로 약간의 파열음이 생길 것 같습니까?

◇ 염광희> 파열음까지는 아닐 거고요. 지금까지 독일 현대 정치를 보면 연합 정부를 구성하는데요. 기민당과 사민당의 연합 정부는 대연정이라고 얘기하거든요. 두 당이 다 의석수가 많은데 이념 차이는 존재하죠. 그래서 대연정 기간에는 사실 새로운 개혁 과제가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전 정부의 정책이 빠른 속도로 후퇴하거나 변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일 국민은 연합 정부가 깨져서 재선거하는 것을 반기지 않기 때문에 연합 정부가 존속은 하겠습니다만 이전 정부와 정책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 홍종호> 두 가지 상황 변화와 관련하여 여쭤보고 싶어요. 2022년 러-우 전쟁으로 인해 유럽이 늘 러시아에 믿고 의존했던 PNG, 파이프라인 가스 공급이 굉장한 타격을 입었어요. 또 한 가지는 최근에 AI 데이터센터로 인해 전기가 많이 필요한 거 아니냐, 전기 공급이 충분히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런 상황이 현시점에서 독일의 탈원전 기조와 에너지 전환, 재생에너지에 올인하자는 흐름과 관련한 정치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준다고 보십니까?

◇ 염광희> 러시아 전쟁이 정말 크게 다가왔죠. 통계에 따라 좀 다릅니다만 독일 전체 천연가스 수요의 최소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그로부터 천연가스 공급이 어느 날 갑자기 안 돼서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었죠. 동시에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불안정성 때문에 국제 천연가스 요금이 거의 10배가량 상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홍종호> 2022년 8월에 전년 동월 대비 10배 올랐어요.

◇ 염광희>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관심은 독일이라, 독일만 집중해서 보니까 충격이 큰 것처럼 보이는데요. 유럽연합 전체로 놓고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저희 집 전기요금이 40% 올랐었거든요.

◆ 홍종호> 그 당시에요?

◇ 염광희> 네. 물론 정부의 각종 보조금 때문에 충격 폭이 아주 적기는 했습니다만 전력회사에서 보내준 영수증에는 40%가 오른 걸로 나왔습니다.

◆ 홍종호> 그 얘기를 직접 하시니까 되게 실감 나네요. 생각보다 많이 안 올랐네요.

◇ 염광희>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40% 충격은 크죠.

◆ 홍종호> 물론 크긴 크죠. 그런데 당시에 국제 가스 가격이 10배가 오르고 그랬으니까요.

CBS 경제연구실 캡처

◇ 염광희> 맞습니다. 왜 그러냐면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그나마 많았기 때문입니다. 천연가스 발전소 가동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거죠. 유럽의 다른 국가를 보면 독일은 인상 폭이 거의 최소 수준인 국가입니다. 재생에너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개시됐는데 유럽연합이 발 빠르게 움직여서 2022년 5월에 리파워EU(REPowerEU)라고 하는 정책 패키지를 내놓았는데요. 한 줄로 요약하면 재생에너지와 같이 내부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 시설을 빨리 보급해서 2037년까지 러시아 등 다른 나라로부터 오는 화석 가스 사용을 제로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 홍종호> 그 당시에 천연가스 가격이 엄청나게 폭등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독일 내의 전력 수급에 큰 빨간불이 켜졌으니 다시 원전을 늘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식의 얘기들은 별로 없었습니까?

◇ 염광희> 야당의 정치인 중 혹자는 자극적인 메시지로 시민들께 어필하기 위해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었는데요. 정말 독일에서 오랫동안 책임 있는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꺼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체르노빌 사고를 직접 경험했던 국민이 있잖아요. 만약에 원전을 짓겠다고 얘기를 하면 그다음 질문이 어디에다 지을 건데, 이거든요. 어느 누구도 답을 할 수가 없는 거죠.

◆ 홍종호> 그 말을 하는 순간 그 표는 다 없어지는 거군요.

◇ 염광희> 그렇습니다.

◆ 홍종호> 그래요. 독일에서 AI 관련 논의는 많이 합니까?

◇ 염광희> 예.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독일의 전기요금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유럽에서 제일 비싸다, 두 번째로 비싸다 이렇게 얘기가 되고 있는데요. 그 영향 때문인지 독일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온다는 전망은 아주 적습니다. 저희 연구소에서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위한 전력 수요를 분석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독일에 AI 데이터센터가 들어와 봐야 최대 60TWh(테라와트시)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어서 AI가 독일의 에너지 시스템에 주는 충격은 한국에서 열풍처럼 얘기 나오는 거에 비하면 적습니다.

◆ 홍종호> 박사님이 보시기에는 수요와 공급 측면에 변화가 있더라도 독일 내에서 다시 원전밖에 없다는 식의 얘기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하시는군요.

◇ 염광희> 네. 그리고 유럽에서 신규 원전은 소위 말하는 LCOE(균등화발전비용, Levelized Cost of Electricity), 즉 발전 단가가 가장 비싼 에너지원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안전 규정이 강화되면서 이런 것들을 다 충족하는 원전을 새롭게 짓는 것보다는 재생에너지가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 된 겁니다.

◆ 홍종호> 그럼요. 발전 단가가 제일 싸죠.

◇ 염광희> 그렇습니다.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 것이 시간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경제적인 옵션입니다.

CBS 경제연구실 캡처

◆ 홍종호> 원전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데요. 군드레밍겐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탑이 얼마 전에 철거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여기에 대한 현지 반응이나 앞으로 부지는 어떻게 사용되는 건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 염광희> 네. 바이에른 지역에 남아있던, 마지막으로 폐쇄한 원전인데요. 폐쇄 과정의 일환으로 방사능 오염이 가장 적은 냉각탑부터 해체하는 거죠. 원전이라는 것은 매우 많은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원전 주변으로는 송배전망이 촘촘하게 잘 구축돼 있어요. 이 발전소는 전기 생산을 전혀 못 하는 겁니다. 그러니 정책적으로 원전을 폐쇄하기로 하면서 철거된 냉각탑 자리에 독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배터리 저장 시설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미 송배전망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에 배터리 저장 장치를 굉장히 규모 있게 설치해도 송배전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는 거죠.

◆ 홍종호> 그러면 그 주변에 재생에너지가 많이 들어서 있습니까?

◇ 염광희> 바이에른은 상대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많이 보급 안 되어 있는데요. 군드레밍겐 발전소만 보면 원전이 폐쇄된 장소에 미래 에너지 전환의 저장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 저장 시설이 들어서는 것이므로 독일의 에너지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 홍종호> 맞습니다. 제가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기사인데요. 박사님 집에서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쓴다는 거예요.

◇ 염광희> 네. 맞습니다.

◆ 홍종호> 아까 2022년도에 전기 요금이 40%가 올랐다는 것도 굉장히 실감 났는데 이게 어떻게 되는 겁니까? 지금 독일 전체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이 약 60% 정도인데 100%를 쓰는 거는 비싸게 주고 쓰시는 거예요?

◇ 염광희> 독일은 우리나라랑 전력 판매 시장이 좀 다른데요. 우리는 한전 독점이고 한전이 단일 요금제로 고객들에게 전력을 판매하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우리가 선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죠. 그런데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하자면요.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무선 통신 핸드폰 회사와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처럼 일반 시민 또는 기업들이 전력 판매 회사를 선택할 수 있고 회사의 여러 요금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 홍종호> 가정용도 요금제가 다양합니까?

◇ 염광희>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의 가격 비교 사이트처럼 독일에서도 전력 요금 비교 사이트가 여러 개 있거든요. 거기 들어가서 자기 집 우편번호와 몇 명이 살고 대충 얼마를 쓴다는 것을 써넣으면 전기를 공급해 주는 회사의 목록이 수십 개가 뜹니다.

◆ 홍종호> 그중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거군요.

CBS 경제연구실 캡처

◇ 염광희> 그런데 요새는 독일 시민들이 재생에너지 친환경성에 관심을 많이 두기 때문에 요금제 옆에 전력 믹스가 어떤지도 표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재생에너지 100% 전력, 재생에너지 50% 전력, 42% 전력 이런 것들이 검색 결과 창에 나오는 거죠. 그러면 소비자가 선택해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는 제가 베를린에 살고 있으니, 제가 쓰는 전기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죠. 하지만 전력 판매 회사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가상으로 얼마를 썼으니 그 대금을 100% 재생에너지 판매하는 회사에 지불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그 회사는 소비자한테 판매한 양만큼을 자체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생산하거나 다른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전기를 사 오는 것입니다.

◆ 홍종호> 그래요. 100% 재생에너지를 쓰면 전력 품질에 아무 문제 없나요?

◇ 염광희> 예. 그렇습니다. 일단 100% 재생에너지 전기를 쓴다고 해서 전력 품질에는 아무 문제 없고요. 이미 재생에너지든 화력 발전소 전기든 간에 다 동일한 주파수, 동일한 전압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품질에는 아무 문제 없어요.

◆ 홍종호> 만약에 정전되고 그러면 큰일 나죠.

◇ 염광희> 그렇죠. 저희가 100% 재생에너지를 쓴다고 해서 재생에너지 발전소에서 저희 집까지 단독 전선을 연결하는 건 아니고 기존에 있는 전선을 그대로 쓰는 것이고요. 제가 2016년에 집에서 약 1,200~1,300km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판매하는 재생에너지 회사의 전기를 썼는데요.

◆ 홍종호> 비싼 요금을 각오하고 한번 해보셨어요?

◇ 염광희> 그런데 아니었어요. 예전에 원전을 운영했던 바텐팔이라고 하는 스웨덴 기업이 있는데요. 베를린시의 가장 큰 대표적인 전력 회사예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회사보다 오히려 전기 요금이 더 저렴했습니다.

◆ 홍종호> 그렇게 멀리에서 오는데요?

◇ 염광희> 네. 말씀드렸던 것처럼 결국 전기는 저희 동네에 있는 전기를 쓰는 건데 제가 100% 재생에너지를 쓴다고 계약을 맺는 거죠. 그래서 이동 거리는 전혀 관련이 없어요.

◆ 홍종호> 하나의 인증서를 사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 염광희> 그렇습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RE100 캠페인이 없어요.

◆ 홍종호> 너무 쉬워서 안 해요?

◇ 염광희> 왜냐하면 BMW나 폭스바겐이 RE100 선언을 하면요. 100% 재생에너지 전력을 판매하는 회사들이 엄청나게 많거든요. 거기랑 계약만 맺으면 그냥 100% 쓸 수 있는 거죠.

◆ 홍종호> 그렇습니다.

◇ 염광희> 그래서 소비자의 선택권 측면을 보면 우리나라도 한전 독점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오히려 요금제를 다양화하면 RE100 문제를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홍종호> 박사님 말씀하실 때 요금제와 판매 회사도 다양하고 그중에서 고르는 거라고 하셨는데요. 이게 청취자들께는 너무 생경한 겁니다. 우리는 한전이 한 달에 한 번씩 관리비, 요금을 딱 내놓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까요. 그러면 민영화가 아닌가, 결국 자기들 이윤을 만들어 내려고 요금을 다 올리겠다는 거 아닌가, 국민이 이런 식의 반응을 하세요. 독일에 살아보시면서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염광희> 민영화는 아닐 거고요. 시장 개방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한전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독일의 전력 회사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보면요. 그러니까 100% 재생에너지 또는 에너지 효율을 겸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을 유도하면서 전력 판매를 하는 서비스 측면에서 보면요. 우리나라 한전의 독점 구조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나라들의 발전 양상을 못 따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홍종호> 한국은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거나 전력 시장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오는 일이 없어요.

◇ 염광희> 좀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노력 안 해도 한전 말고는 대안이 없으니까요.

◆ 홍종호> 5,100만 명이 한전만 바라보고 있는 거 아닙니까?

◇ 염광희>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전 내부에 혁신적인 동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시장의 일부를 개방해서 약간의 경쟁을 해야 한전 내부의 혁신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다음에 RE100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으니, 삼성전자와 같이 RE100을 달성하고자 하는 회사를 위해서라도 한전이 요금제를 다양화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 홍종호> 그러니까 독점 체제가 개방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전 내부에서의 변화와 혁신은 꼭 필요하다는 거군요.

◇ 염광희> 그렇습니다. 100% 재생에너지 요금제를 내놓는 것만으로도 일단 소비자의 선택권이 늘어나고요. 재생에너지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으면 그만큼 재생에너지가 확대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거니까요.

◆ 홍종호> 아주 생생한 이야기여서 참 재밌는데요. 독일의 전력 수급 시장 환경과 한국의 시장 환경이 많이 다르잖아요. 두 나라를 모두 경험해 보신 만큼 아까 말씀하신 시장 개방이라든지 우리나라가 독일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이나, 전기라는 서비스를 바라보는 한국 국민의 시각, 인식 등에 있어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 주시죠.

◇ 염광희> 네. 일단은 국가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조금 더 가속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자료를 찾다가 지난해 한전의 발전 단가표를 봤는데요. 국제 석탄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우리나라 석탄 발전소가 kWh(킬로와트시)당 거의 130원 정도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재생에너지보다 더 비싼 전력원인 거거든요. 지금은 우리나라의 전력 시장 자체가 좀 왜곡되었죠. 특히 발전 부문에서 한전 자회사들이 경영하면서 시장에서 재생에너지가 더 비싸게 보이는 가격 왜곡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국제적으로 오르는 석탄 가격을 고려해 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석탄보다 재생에너지가 더 싸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미래의 1차 에너지, 즉 석유, 석탄, 화석 연료 가격의 불확실성을 고려한다면요. 그리고 안보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가능한 한 빨리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고요. 특히 그와 관련해서 전기 요금이 늘 화두인데 사회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독일이 인구도 우리나라에 비해서 3천만 명 이상 많고 면적은 4배나 큰데 국가 전체에서 소비하는 전력은 우리나라가 더 많습니다.

◆ 홍종호> 참 놀라운 일이네요.

◇ 염광희> 전력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경제 활동에서 쌀이나 공기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가격 얘기를 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원가 이하의 전력을 너무 비효율적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 정부에서 어떻게 전력 요금 현실화를 진행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현재의 값싼 원가 이하의 전력이 우리나라의 에너지와 온실가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홍종호> 예. 박사님께서 독일 현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또 지금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연구원으로 계시기 때문에 더 실감 나는 얘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염광희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의 선임 연구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염광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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