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격노가 채상병 수사외압·보복으로…동기는 여전히 '미궁'[영상]

尹 격노가 시발점…이종섭 수사결과 바꾸기 나서
기록 회수 지시 불응하자 박정훈 보복 기소
대통령 수사 권한은 '선언적' 차원…구체적 개입 안돼
직권남용 '고의성' 입증 관건인데…격노 동기 못 밝혀

모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에서 시작됐다.
 
전날(21일) 순직해병 특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해 12명을 기소하며 정리한 사실관계는 이 한 줄에서부터 출발한다. 윤 전 대통령의 '버럭'하는 질책이 아니었다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은 기존에 보고받은 수사내용의 결론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채상병 순직 경위를 수사한 박정훈 대령(해병대 수사단장)이 졸지에 체포·구속영장 청구 대상이 되고, 항명죄로 기소당해 재판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해병특검이 출범 후 142일간 수사를 통해 밝힌 사건의 전말은 아래와 같다. 외압이 어떤 경로로 행사됐는지 촘촘히 규명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이 '왜' 격노해 외압 행사에 이르렀는지는 특검에서도 밝히지 못한 채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尹 격노에 순식간에 수사 결과 바꾼 국방부

순직해병 특검이 21일 '해병대 수사단 수사외압 등 사건 수사 결과' 발표에서 제시한 범죄 혐의 구조도 재구성. 노컷뉴스
사건은 2023년 7월 19일 벌어졌다. 경북 예천 수해 현장에서 채상병은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 없이 허리 깊이의 수중에서 수색을 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해병대 수사단을 이끌던 박 대령은 채상병 순직 당일부터 열흘간 관련자 80여명을 조사해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판단해 보고했다. 수사 내용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하고 임 전 사단장은 분리 파견 인사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과 이종호 전 해군참모총장, 이종섭 전 장관은 모두 이견 없이 결재했다.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하루 뒤인 7월 31일 오전. 윤 전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에서 임기훈 당시 국방비서관이 해당 사안을 보고하면서 일이 틀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격노하면서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 또, 곧바로 집무실에 있던 '02-800-7070' 전화를 이용해 이 전 장관에게 전화했고 "군에서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말단 하급자부터 고위 지휘관까지 줄줄이 엮어서 처벌하면 어떻게 되느냐, 내가 누차 여러 번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소리쳤다.
 
질책을 들은 이 전 장관은 부리나케 움직였다. 윤 전 대통령과 전화를 마치고 14초 만에 김계환 전 사령관에게 전화했다. 예정된 언론브리핑과 국회 설명을 취소하고 경찰로의 사건 이첩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전화를 마치고 1분 43초 후에 김 전 사령관에게 또 전화했다. 분리 파견 인사가 예정됐던 임 전 사령관을 정상 근무하도록 지시했다. 분리파견 전자문서는 결재된 지 1시간 40분만에 취소 공문으로 다시 기안됐다.
 
같은 날 오후 1시 30분, 이 전 장관은 긴급 현안 회의를 주재했다.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은 이 자리에서 정해진 지시사항을 박 대령에게 옮겼다. "사건 인계서에서 혐의자, 혐의내용, 죄명을 빼라", "'수사'가 아닌 '조사'로 용어를 바꾸라"는 것 등이다.
 
김계환 전 사령관도 박 대령에게 "대통령이 격노하면서 바로 국방부 장관 연결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른바 'VIP 격노'를 박 대령이 인지한 시점이다. 그러나 박 대령은 한 시간 후 이 사건 결과를 바꿨을 때 생길 문제점을 정리해 보고하며 완강히 거부했다.
 
다음 날에도 수사 결과를 바꾸려는 압박은 계속됐다. 유 전 법무관리관과 박진희 전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은 김 전 사령관과 박 대령에게 구체적 지시를 하달했다. '확실한 혐의자만 수사의뢰' '직접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한정'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검토' 등이다.
 
그럼에도 8월 2일 오전 박 대령은 경찰로 기록 이첩을 시도했다. 처음 김 전 사령관은 이첩을 승인했지만, 이내 중단을 명했고 이 전 장관과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에게 이런 사정을 보고했다. 이 전 장관은 이를 조태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에게, 조 전 실장이 윤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대통령은 기록 회수를 지시했다.
 
압박과 회유에도 박 대령이 전혀 움직이지 않은 상황. 윤 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언성을 높였다. 해외 출장 중이던 이 전 장관을 대신해 신 전 차관에게 연락해 "내가 전화를 한 게 언젠데 이제 와 전화를 하느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여태 사태파악이나 대응조치를 처리하지 않고 있느냐"고 질책했다.
 
신 전 차관은 유 전 법무관리관과 김동혁 전 국방부 검찰단장에게 기록회수와 박 대령에 대한 선(先) 보직해임, 항명죄 수사를 지시했다. 지시 이후 30여분 만에 김 전 사령관은 박 대령을 보직해임했고, 2시간 후엔 박 대령에 대한 항명죄 수사가 개시됐다.

이후 박 대령은 항명죄 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국방부 검찰단은 항소했지만, 해병특검이 출범 후 공소유지 등 권한을 넘겨 받게 되면서 박 대령의 조속한 신분 회복을 위해 항소를 취하했다.
 

대통령 수사개입 '한계' 제시했지만…'왜 그랬느냐' 미궁


사법부의 재판권과 달리 검찰, 경찰 등의 수사는 행정에 속하는 사무다.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부여된 권한이기에 대통령이 어느 정도 수사에 개입하거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 않느냐는 오해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특검은 "대통령은 정부의 수반으로서 각 부의 장관을 통해 수사 기관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으나, 그 권한은 '엄정 수사, 공정 수사, 신속 수사' 등 법치주의와 적법절차 원칙에 따른 수사권 발동을 촉구하는 의미의 일반적·선언적 차원에 한정된다"고 강조했다.
 
특정 사건에 대한 개별적·구체적 지시는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자의적인 수사와 법집행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어 허용되지 않고 위법한 지시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채상병 사망 사건'이라는 특정 사건에서 '임성근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을 피혐의자에서 제외하라'는 개별적·구체적 지시를 하고, 이 전 장관 등이 순차적으로 수명하고 하달한 것은 직권을 남용해 군사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직무 수행의 독립성을 침해한 사안이라는 게 특검의 결론이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이 왜 갑자기 격노하며 무리하게 수사에 개입했는지를 밝힐 이른바 '구명로비 의혹'은 이번 수사 결과에 담기지 않았다. 일각에선 임 전 사단장이 김건희씨에게 구명을 요청했고, 이에 윤 전 대통령이 나서지 않았겠느냐고 의심했지만 실체를 밝히지 못했다.
 
특검은 구명로비가 '멋쟁해병' 단체대화방 인물들이나 개신교계 인사들을 통해서 이뤄졌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해왔다. 일부 단서가 잡히기도 했지만, 단체대화방 참여자들이나 개신교계 인사들 모두 진술을 거부하고 참고인 조사에 재차 불응하면서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해병특검 정민영 특별검사보는 "대통령이 사건에 개입한 것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임성근 구하기 때문인지는 수사를 해오고 있지만 공소장에 그 내용이 드러나지는 않는다"면서도 "다만 특검 출범 초기부터 다른 목적이었더라도 대통령이 개별 수사에 개입한 것 자체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특검은 구명로비 의혹 관련 조사는 다음 주 특검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10전 9패 해병특검, 공소유지 가능할까 '주목'


특검은 이번 수사외압 사태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직무를 수행한 수사단에게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직권남용 및 보복 범행을 저지른 사건"이라며 "중대한 권력형 범죄"라고 규정했다.
 
그만큼 중대한 범죄임에도 이날 재판에 넘긴 12명의 피고인 모두 구속하지 못했다.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 10건 중 발부된 건 임 전 사단장에 대한 한 건뿐이다.
 
해병특검 수사기간이 오는 28일 종료돼 6일 남은 상황에서 윤 전 대통령의 수사개입 동기를 풀 마지막 퍼즐인 '구명로비 의혹'을 규명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법원은 직권남용 혐의에 유죄를 선고할 때 '고의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만큼, 외압 행사의 목적 부분을 공란으로 비워두는 건 공소유지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12명의 피고인들은 △수사외압 관련 직권남용을 필두로 △박 대령에 대한 표적수사(직권남용, 감금, 공무상 비밀누설) △이같은 진실을 가리기 위한 위증(모해위증,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가장 기본이 되는 수사외압 관련 혐의가 법원에서 배척될 경우 이어지는 혐의들도 줄줄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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