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 싣는 순서 |
|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⑦ 기후위기 대응, 급식에서 시작하다 ⑧ 버려질 뻔한 병뚜껑, '플라스틱 대장간'에서 변신하다 ⑨ "노플라스틱 육아, 가능해?" 환경 덕후 엄마의 실천법 ⑩ "손은 아프지만, 지구는 웃는다" 종이팩을 살리는 카페들 ⑪ '지금 바로 여기'…작은 극장에서 시작된 기후 연대 ⑫ 텀블러 500개, 쓰레기는 바나나 껍질뿐 ⑬ 기후위기 시대의 여행법…"멈출 수 없다면, 느리게 천천히" ⑭ "꽃을 보니까, 지켜주고 싶어졌어요"…기후위기 시대,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고 있다 ⑮ "가져와요 플라스틱 지켜가요 우리바다"…바다를 살리는 시민들 ⑯ 차 없이도 괜찮은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⑰ 김밥을 말며 아이들이 배운 건? '생태감수성' ⑱ "기후위기, 동물도 아픕니다"… 동물권 다룬 기후영화제 열린다 ⑲ 영화 <플로우> 본 아이들…"기후위기, 혼자선 못 이겨요" ⑳ "골칫덩어리 전선 뭉치들, 버리지 말고 가져오세요" ㉑ 차 대신 버스, 민혜씨의 선택 ㉒ 케이크도 락앤락에… "예쁜 포장, 사실은 더 불편해요" (계속) |
전남 순천의 한 해장국집.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테이블 위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놓여 있었다. 손님이 직접 들고 온 작은 냄비였다.
"혹시 남으면 담아가려고요."
기자를 향해 수줍게 웃은 이는 순천에 사는 이도현(31)씨. 배달 대신 포장을 택할 때마다 '자기 그릇'을 챙기는 것이 그의 오래된 습관이다.
이씨가 냄비를 들고 다니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이다. 감자탕 포장을 위해 배달용기를 씻어 버리는 과정이 늘 번거로웠다고 한다.
"포장 비닐 뜯고, 랩 벗기고, 빨간 국물 묻은 용기 씻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귀찮았어요." 그는 "차라리 냄비를 들고 가서 포장해 오는 게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매일 배달용기가 산처럼 쌓이던 원룸촌의 공용 쓰레기장은 그에게 또 다른 문제의식을 남겼다. "저 많은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갈까"라는 질문 속에서 그는 '덜 버리는 생활'을 조금씩 선택해가기 시작했다.
그의 실천은 특정한 계기보다 몸에 밴 습관에 가깝다. 욕실에는 샴푸바와 설거지바가 놓여 있고, 외출 시 들고 다니는 건 생수병이 아니라 작은 텀블러다.
생리대는 일회용 대신 생리컵이나 무(無)어플리케이터 탐폰을 사용한다. 주방에는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직접 뜬 삼베 수세미가 걸려 있다. "어차피 다 버려질 것들이라면, 조금이라도 오래 쓰고 덜 버리는 게 낫죠."
과대포장을 피하면서 택배 사용량도 자연스레 줄었다. 회나 수산물을 살 때는 스티로폼 접시를 받지 않기 위해 쿨러백을 들고 직접 가게를 찾는다. 휴대전화는 8년째 사용 중이다. "아직 돌아가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어요."
특히 케이크와 젤라토 아이스크림까지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그는 케이크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에 갈 때면 작은 락앤락 통을 가방에 넣어 챙긴다. 포장을 도와주겠다는 직원의 말이 들려오면 그는 조심스레 통을 꺼내 내민다.
"예쁜 포장이 오히려 불편해요. 결국 뜯어서 버릴 쓰레기잖아요."
처음엔 신기해하던 친구들도 그의 포장 방식을 보고 "괜찮다, 나도 해볼래"라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기후위기를 특별한 사건으로 자각한 건 아니라는 그는, 2023년 도시텃밭에서 키우던 고추 7주가 연이은 장마에 모두 썩어버린 일을 떠올렸다. "농사 망쳐보니까 기후위기를 실감했어요." 이후 냉난방 사용을 더 줄였고, 주변 사람들과 기후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자연스레 늘었다.
실천 과정이 늘 순탄한 건 아니다. 냄비를 내밀면 의아한 표정이 돌아오고, 분리수거를 해도 "어차피 쓰레기차가 다 섞어간다"는 말을 들을 때면 허탈해진다. 그럼에도 그는 "그렇다고 안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까지 실천을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이씨는 "지구에 조금 덜 민폐를 끼치고 싶어서요"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버린 쓰레기와 남긴 흔적들이 결국 돌고 돌아 우리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지구와의 공존 없이는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아직 30대이지만 "후대는 더 힘들어질 것 같다"는 걱정도 그의 실천을 지탱하는 이유였다.
이씨는 개인 실천만큼 중요한 것이 '시장에 보내는 신호'라고 강조한다. "과대포장하는 업체를 덜 이용하면 업체도 바뀌잖아요. 소비가 바뀌어야 기업도 바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포장재를 과하게 쓰는 업체는 피하고, 종이포장이나 리필 시스템을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 소비 기준을 선택한다. 작은 선택이 모이면 지역의 기준도, 기업의 방식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쁜 포장도, 편리한 것들도 결국 다 버릴 쓰레기예요.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우리가 만드는 쓰레기는 정말 많이 줄어요. 지구에 덜 민폐를 끼치고 싶어서, 저부터 계속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