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 완화 요구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주 위원장은 금산분리가 우리 경제의 오랜 합의이자 규제 체제임을 강조하며, 기업들이 규제 완화를 요구하기보다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주 위원장은 지난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산분리 원칙은 지금 우리 경제 뿐만 아니라 미국 등도 수십 년 된 규제 체제"라며 "어떻게 (한국에서는) 30년 된, 다른 서구는 100년 된 주제를 지금 이 몇 개 회사의 민원 때문에 바꿀 수가 없는 것"이라며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공장을 짓는데 다른 대안이 있으면 왜 다른 대안을 활용하지 않느냐"며 "너무 무모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상호 소유를 금지하는 금산분리는 지난 1995년 은행법에 은산분리(은행자본과 산업자본 분리)가 규정되면서 도입됐다. 30년이 된 제도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달 초 이 대통령이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자리에서 "안전장치가 마련된 범위 내에서 현행 금산분리 규제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뒤 규제 완화 논의에 불이 붙었다.
최근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AI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과감히 투자하려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연이어 강조하고, 구윤철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이 "꼭 필요하다면 관계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화답하면서 투자 규제 완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주무부처인 공정위원장이 강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이다.
주 위원장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몇 회사의 민원 때문에 금산 분리 원칙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한 것도 SK하이닉스를 염두해 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SK그룹에 대한 '원포인트' 또는 '맞춤형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주 위원장은 그러면서 대기업들이 투자 전문 회사를 지향하기보다 제조업 등 본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가장 중요시해야 되는 것은 주력 기업들이 자기 본업에 충실한 것"이라며 "괜히 기업들이 투자 회사를 만들어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씨처럼 여기저기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현행 공정거래법과 규제 체제가 기업 성장을 저해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주 위원장은 "지금 SK하이닉스라든지 삼성 반도체 이 모든 기업들이 현재 규제 체제 속에서 기술 성장을 거듭했다"며 "국민 지지의 힘으로 만들어낸 현행 공정거래법이라든지 다양한 경제적 강자에 대한 견제력을 키워왔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주 위원장은 기업들이 규제 탓을 하기보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설 것을 주문하며 "대기업들이 주력 기업들이 자꾸만 규제(에 대해) 판단하지 말고, 지금 있는 규제 하에서도 투자를 안 하고 있는 게 문제"라며 "그것(투자)을 열심히 좀 하고 지금 자신의 본업에 충실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주 위원장은 이날 온라인플랫폼규제와 배달앱 수수료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플랫폼 독과점 규제와 관련해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적시성 있게 실효적 조치가 가능하도록 지금 나름대로 제도 개선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라며 "충분히 수렴안으로 구체화해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Joint Fact Sheet)에 온라인 플랫폼 규제 관련 문구가 포함되면서, 국내에서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입법이 사실상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에도 반박했다.
그는 "이 합의에 의해서 디지털 분야 법 정책 추진 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선언한 것 뿐"이라며 "국적에 따른 차별 없이 입법 및 법 집행을 원칙으로 일관되게 대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배달앱 수수료 문제에 대해서는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보다는 개별적인 특별법 형식을 통한 규제 가능성을 언급했다. 주 위원장은 "온플법보다는 지금 우리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배달 앱 관련한 수수료에 한정된 특별법 형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이미 발의된 안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입법 과정에서 공정위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국회와 협의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