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정치적 기소" 묻자 끄덕…의원직 유지 선고엔 "판결 존중"(종합)

6년 만의 '패트 충돌' 선고…법원 앞 지지자로 아수라장
나경원·황교안 등 전원 1심 벌금형…현직 6명 의원직 유지
지지자들 "나경원" 연호…"사퇴" 외친 유튜버들과 대치
재판부 "국회의원이 불법 동원…죄책 결코 가볍지 않아"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에 연루된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과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 등 관계자 전원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현직 국민의힘 의원 6명이 모두 의원직 박탈을 면하게 됐다.

사건 발생 6년 7개월 만에 이뤄진 법원의 첫 선고에 20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은 지지자와 유튜버들로 뒤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이날 오후 1시 55분쯤 나 의원이 법원 서문에 도착하자 약 30명의 지지자가 "나경원"을 연호하며 뒤따라 이동했다. 현장에는 지지자들을 비롯해 나 의원을 비판하는 진보 성향 유튜버들이 "나경원 화이팅", "나경원 사퇴" 등 상반된 구호를 외치며 대치했다. 양측이 과열되면서 서로 어깨를 밀치는 등 몸싸움으로 번질 뻔한 상황도 빚어졌다.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선고가 열린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앞에서 나 의원 등 국민의힘 지지자들과 진보 성향 유튜버들이 대치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포토라인 앞에 선 나 의원은 "이 사건은 2019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을 통과시키면서 시작된 것"이라며 "오늘의 재판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민주당의 의회 폭주를 막아서느냐 마느냐의 재판"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이재명 정권의 전체주의적인 국가 운영, 그리고 국가 해체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을 저희 야당에게 주문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나 의원은 검찰 기소가 정치적 기소였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들어갔다.

뒤이어 오후 2시쯤 도착한 황 대표는 출석에 앞서 "제 바람이 결국 국민의 뜻이고 또 대한민국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진보 성향 유튜버들은 황 대표 주변을 에워싸며 입장 과정 전체를 중계했고, 한 유튜버는 황 전 총리를 향해 "황교안은 내란선동범! 서서 재판받아라"고 외치기도 했다.

20일 오후 남부지법 입구 앞에서 시민단체가 "나경원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이날 선고를 앞두고 남부지법 정문 앞에서는 오후 1시부터 나 의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분위기가 과열됐다. 동작관악촛불행동 등 시민단체 열댓명은 '나경원은 유죄다. 즉각 사퇴하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선고가 미뤄진 만큼 법원이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2019년 4월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 의원 및 관계자들이 이를 막기 위해 국회에 물리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이들은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을 의원실에 감금하고, 의안과 사무실과 정치개혁특위, 사법개혁특위 회의장을 점거해 법안 접수와 회의 개최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자유와혁신 황교안 대표(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1900만원을 선고 받은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장찬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 및 관계자 26명 전원에 대해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했다.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 의원에게 벌금 총 2400만 원을, 당시 당대표였던 황 대표에게는 벌금 총 2천만 원을 각각 선고했다. 현재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송언석 의원은 벌금 총 1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현직 의원인 이만희·김정재·윤한홍·이철규 의원에게는 각각 벌금 850만원·1150만원·750만원·55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피고인들이 주장했던 저항권 행사, 위법성 조각 사유 등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회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마련한 국회의 의사결정방식을 그 구성원인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위반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어 "헌법과 법률을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동료 의원들의 입법활동을 저지하고 국회 운영을 방해한 것"이라며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고 비난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쟁점법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부당성을 공론화하려는 정치적 동기로 범행에 나아간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피고인들이 행사한 유형력의 정도가 비교적 중하지 않고 대체로 간접적인 형태로 진행됐다"고 양형 참작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국회 구성원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법안을 제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성숙한 의정문화를 갖추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 관련 1심 선고 공판에서 벌금 2,400만원을 선고 받은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나 의원이 법원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지지자들은 나 의원을 둘러싸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나 의원은 "정치적 사건을 5년 동안이나 사법재판으로 가져온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 이 사건은 법정에 가져올 사건이 아니었다"면서도 "징역형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법원이 민주당의 독재를 막을 최소한의 저지선은 인정했다고 본다"며 "그런 점에서 오늘 판결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나 의원은 항소 여부와 관련해선 "지도부와 상의한 후 결정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황 대표는 선고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법이 무너졌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고 짧게 대답한 뒤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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