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사모펀드 론스타와의 국제투자분쟁(ISDS)에서 '완승'한 가운데, 론스타 측이 추가 법적 대응 검토를 시사했다. 정부는 론스타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방침이다. 법조계에선 론스타가 2차 중재 제기를 하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론스타는 ICSID 취소위원회의 결정에 "실망스럽다"며 "사건을 새로운 중재판정부에 다시 한번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ICSID 취소 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불복해 또 다른 법적 절차를 밟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ISDS는 규정상 단심 중재절차다. 판정 내용에 불복해 항소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다만 판정이 ICSID 협약이 규정하는 5가지의 취소사유에 해당하는 경우 취소 신청이 가능하다.
ICSID 협약 제52조에는 △중재판정부 구성 흠결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유월(가진 권한을 초과해 행사하는 것) △중재인의 부패 △절차 규칙의 심각한 위반 △이유불비(판결 이유가 없거나 혹은 부족하거나 불명확한 것)를 판정 취소사유로 한정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앞서 우리 정부는 '절차 규칙 위반'과 '권한유월', '이유불비'를 이유로 취소 신청을 제기했고, 취소위원회가 절차 규칙 위반을 인정하면서 원 중재판정부의 판정을 뒤집는데 성공했다.
현 상황에서 론스타 측이 사용할 수 있는 불복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먼저 원 중재판정부의 판정에 대해 2차 중재 제기를 하는 방안이다. 이는 '항소'가 아닌 '2차 소송'에 가깝다.
2022년 8월 원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에 론스타가 청구한 손해배상금 중 4.6%에 해당하는 2억 1650만달러만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인정된 배상금으로 보면 우리 정부가 95.4% 승소했고 4.6%만 패소한 것이다.
이후 진행된 취소 신청이 한국 정부의 승소로 마무리되면서 원 중재판정부의 판정 중 한국 정부가 승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판력'이 발생하게 됐다. 기판력이란 확정판결에서 판단된 내용과 쟁점을 다시 다툴 수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론스타가 원 중재판정부 판정 전체에 2차 중재를 제기하더라도 한국 정부는 승소가 확정된 95.4%에 대해 조기 각하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론스타는 이번과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의 소송 비용 모두를 대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은 "론스타 입장에서 원 중재절차에서 진행됐던 청구 범위를 포괄한 2차 중재 제기는 절대 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은 하나의 방안은 취소 신청이 나온 부분에 한정해 2차 중재 제기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판정 대상은 한국 정부가 취소 소송을 통해 승소한 4.6%로 제한된다. 론스타가 이 방법을 택한다면 기존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중재판정부가 구성된다.
다만 이미 배상금의 대부분인 95.4%는 패소가 확정됐고, 막대한 시간과 비용 등을 감안하면 론스타가 2차 중재 제기를 하더라도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홍식 국장은 "이런 식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중재판정은 당사자에게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생각"이라며 "론스타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설명했다.
론스타와의 소송전은 한국 정부의 완승으로 귀결됐지만 정부는 아직 6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 10건 중 5건은 아직 최종 결정이 나오지 않았다. 론스타와 메이슨의 경우 본류 사건은 끝났지만 후속 조치가 남아있어 진행 중인 사건으로 분류된다.
이중 가장 큰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기한 건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압력을 행사해 약 7억 7천만 달러(약 1조 1천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ISDS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23년 6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인정해 한국 정부에 약 5358만달러(현재 환율로 약 787억원)와 지연이자 등 손해배상을 결정했다.
정부는 같은 해 7월 PCA의 재판 관할권을 문제 삼아 중재지인 영국 고등법원에 중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지난해 8월 정부의 취소소송이 영국 중재법상 재판 적격이 아니라며 각하했지만, 항소법원은 지난 7월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