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버블론이 증시 상승 랠리에 제동을 걸었지만, 시장은 버블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AI 버블론의 원인인 과잉 투자와 수익 악화 모두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 때문이다.
다만 버블은 경제 상황의 악화를 기점으로 무너지는 만큼,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32% 내린 3953.62로 장을 마쳤다. 지난 3일 기록한 사상 최고점(4221.87) 대비 6.3% 하락해 기술적으로 10% 이상 하락을 의미하는 '조정장' 진입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최근 주식시장 하락의 원인은 AI 버블론이다. 글로벌 IB(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주식시장에서 AI 버블의 고점을 판단할 기준으로 설비투자의 정점, 기업 이익 감소, 기업 부채 증가, 미국 기준금리 인하, 신용 스프레드(국채와 회사채 금리 차이) 확대 등 5가지를 꼽았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주식시장 상황이 1999년 정보기술(IT) 버블의 정점 때보다는 아직 중반에 가깝지만, 몇 가지 지표가 꺾이면 주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에 하나증권 김두언 연구원은 골드만삭스의 기준을 적용해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
먼저 기업의 설비투자는 IT 버블 당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15%에 육박했지만, 현재는 13.8%다. GDP 성장 기여도도 IT 버블 이전에는 2%였지만 현재 1%라서 아직 정점으로 보기는 이르다.
또 기업 이익은 증가하고 있다. S&P500 기업의 평균 순이익은 13.5%로 과거 평균 12.7%에 앞서고 있고, 코스피 기업의 이익 증가 기대도 29.7%로 과거 평균 11%를 웃돌고 있다.
기업의 부채도 IT 버블 이전에는 10%대 이상 증가세였던 반면, 지금은 2%대에 머물고 있다. 이밖에 기준금리는 IT 버블 직전 인하와 인상을 반복하면서 금리 수준이 높았다면, 현재는 인하 기조가 훼손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신용 스프레드는 IT 버블 직전 급격하게 확대했지만, 현재 미국 하이일드(투자등급 BBB- 이하 기업) 스프레드는 3.2%로 과거 위기 때 12%였던 것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김 연구원은 "(버블은) 아직 한참 멀었다"며 "증시는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흔들릴수록 중심을 잡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은행 박석현 연구원의 분석도 이와 비슷하다.
투자지출 규모의 적정성을 살펴볼 수 있는 현금창출능력 대비 투자지출비율(CAPEX/FCF)을 보면, 올해 상반기 S&P500 기업의 비율은 75.5%로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픈AI의 챗GPT가 공개된 직후인 2023년 54.2%에서 21.3%p나 급증했다.
하지만 핵심인 기업의 수익을 보면, 올해 S&P500 기업 순이익 성장률은 11.4%로 예상되며 내년에는 13%로 확대할 전망이다.
박 연구원은 "중요한 포인트는 투자 원천이 될 기업이익 성장이 앞으로도 호조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인데, 전망은 긍정적"이라며 "국내외 기업이익 전망 호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판단을 근거로 조정 국면의 성격은 기술적 측면에 무게를 둔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주식에 43억달러(약 6조 3천억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진 것도 AI 버블 우려를 약화시키는 요소로 꼽힌다.
올해 은퇴를 앞둔 버핏의 사실상 마지막 투자가 AI 산업을 이끄는 '매그니피센트 7(M7)' 중 하나인 구글이라는 점이 투자 심리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AI 버블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인 경제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DB증권 강현기 연구원은 1850년대 미국의 철도 버블과, 1995~2000년 IT 버블을 분석한 결과, 버블은 새로운 산업 성장 스토리에 대한 희망에서 시작해 유동성 증가와 견조한 경제를 통해 형성된다.
반대로 버블 소멸은 일반 경제 약화와 유동성 감소, 신산업 성장 스토리에 대한 현실 인식 순으로 나타났다. 즉 인터넷 산업에 대한 희망에서 출발한 IT 버블은 아시아 외환위기와 미국 제조업 약화를 기점으로 사그라들었다.
강 연구원은 "AI 관련 산업 자체의 점검을 통해서는 AI 버블을 진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과거 IT 버블 당시 인터넷 관련 기업들이 취약점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주가는 상승을 지속했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이어 "과거 IT 버블은 인터넷과 무관한 일반 경제의 악화에서부터 비롯됐다"면서 "요즘 AI 관련 주가의 상승 지속성 역시 보편적인 경제의 강약에 따라 좌우될 여지가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미국이 역대 최장기 셧다운(기능정지)으로 경제지표 발표가 지연된 가운데 12월 FOMC 결과와 경기 평가가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