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쪼들리고 살림이 어려워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어요" "형은 그냥 열심히 일하러 갔던 것뿐인데 어이없는 사고에 휘말렸고 그게 가장 안타까워요" 울산화력발전소 붕괴사고에 희생된 전 모씨 유족들의 반응이었다.
중대재해법을 만들고 아무리 산재예방을 강조해도 새정부 들어 대통령이 나서 산재사업장에 대한 질타를 쏟아내도 그때 뿐, 전국의 산업현장에서 제2 제3의 전씨는 끝없이 생겨나고 있다.
울산에서 7명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그 주검을 채 수습도 하기전에 인천에서 근로자가 지게차에 치여 숨지고 포항제철소에서는 끼임사고로, 서울 재개발 철거현장의 깔림사고, 화성물류센터 추락사고로 현장의 노동자들이 끝없이 죽어 나갔다.
모두가 안타까운 사고다. 세상을 등진 당사자에게는 가장 큰 불행이지만 남겨진 유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고 졸지에 보호막을 잃은 가족들의 생계는 막막하기 그지없다.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노동자 대부분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혹은 먹고 살기 위해 산업현장으로 향하는 생계형이다.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가장으로서 자식으로서 부여된 가족 부양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힘쓰고 애쓸 뿐인데 일터가 사고로부터 무방비상태라면 국민 누군들 믿고 일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3명 이상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 5%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여당의 입법안이 커다란 기대를 모은다. 지금까지 나온 산재 예방을 위한 조치 가운데 가장 획기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산재예방 태스크포스팀장)은 17일 "11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사항 17건 중 7건을 우선처리할 법안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5%과징금 부과 조항이 포함됐음은 물론이다.
대통령이 노동현장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여당이 제도개선에 팔을 걷고 나선 바로 지금이 현장의 사망산업재해를 뿌리뽑을 골든타임이다.
여당이 준비중인 대책이 입법에 이르면, 가령 연간 1조원의 영업이익을 만들어내는 기업에서 3명이상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예상되는 과징금 액수는 500억원이다. 현행 중대재해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의 벌금액은 10억원 이하, 과태료는 위반 행위에 따라 500만원~7천만원의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역대 최고액 벌금은 20억원과 비교해 벌칙이 천문학적으로 강화되는 것이다. 그 만큼 산재예방의 실효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는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벌금을 내고 말지..'라는 안이한 인식이 가능했지만, 벌금부과액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게 되면 고액벌금이 기업에 금전적 부담이 되고 자연히 사고를 막기 위한 선(先)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산업현장의 재해를 완전히 뿌리뽑기 어렵다. 민주당 산재예방 T/F 관계자는 "산재 사망사고 현장조사를 다녀보면 (사고)대부분이 후진국형이다. 현장의 안전의식을 문화화하지 않으면 (근절이)안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산업현장은 여전히 생산효율성이나 공사기간 준수 등 효율성이 우선인 경우가 허다하고 현장 노동자의 생명이나 안전은 차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현장의 문화가 이러니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따지는 것이 사용자 과실인 지, 노동자 과실인 지를 따지는게 일상이다.
정부가 법인대표 처벌에 이어 벌금, 과징금을 징벌적으로 늘려나가는 데 대해서도 볼멘소리를 터트리는 걸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안전을 모두의 문제로 생각하기 보다는 잘못한 일부의 실수나 과실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과거 중대재해법 입법 때 현장 노동자가 잘못해 발생한 일에 대해 왜 대표가 처벌받아야 하느냐는 하소연이 대표적이었다.
그로부터 또 시간이 흘렀지만 오늘 한국의 산업현장은 여전히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남탓하기에 익숙해진 현장문화에서 구조적으로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의식이나 생명의 소중함이 먼저라는 생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로는 제도의 개혁이 의식의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 산업현장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사고에 백약이 무효라면 '5% 과징금' 도입을 통해서라도 고질적인 사고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일하는 국민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는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