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경찰서로 현금다발 보낸 간 큰 피의자…결과는 '구속'

택시 기사에게 "경찰서로 상자 전달해달라"
상자엔 현금 600만 원…이후에도 400만 원 더 보내
기존 무고 혐의에 '뇌물공여' 추가…구속 송치

한 70대 피의자가 부산 사하경찰서에 보낸 현금 600만 원. 부산 사하경찰서 제공

부산에서 자신을 수사하는 경찰관에게 현금이 가득 든 상자를 보낸 간 큰 피의자가 구속됐다. 수사를 무마하려는 목적이었지만, 기존 혐의에 더해 뇌물을 건넨 혐의까지 추가로 적용받게 됐다.

지난 9월 8일 부산 사하경찰서 민원실에 한 택시 기사가 택배 상자를 들고 들어섰다. 이 기사는 다짜고짜 상자를 전달해야 한다며 수사과 소속 A 경사를 찾았다. 연락을 받고 나온 A 경사는 상자를 건네고 떠나려던 기사를 사무실로 불렀다.
 
기사는 상자를 대신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상자를 함께 열어본 A 경사와 택시 기사는 화들짝 놀랐다. 상자에는 1만 원권 현금다발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액수는 무려 600만 원에 달했다.
 
A 경사는 택시 기사에게 상자를 건넨 인물에 대해 더 물었다. 기사는 "경남 창원에서 한 손님이 탑승은 하지 않은 채 상자를 전달해 달라고 했다"고 답하며 생김새를 묘사했다. 설명을 들은 A 경사는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택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해 보니, A 경사가 짐작한 대로 자신이 수사하는 사건 피의자인 B(70대·남)씨가 찍혀 있었다.
 
B씨는 무고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던 피의자였다. 지난 5월 그는 지인 2명에게 빌려준 수천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사기 혐의로 이들을 고소했다. 그러나 B씨가 증거로 제출한 차용증이 위조된 사실을 밝혀낸 경찰은 B씨를 무고 혐의로 입건한 상태였다. '현금 상자'가 도착한 날은 B씨가 경찰서에 출석하기로 한 날이었다.
 
A 경사는 택배 상자에 든 현금을 압수 조치하고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 A 경사는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해 택시 기사에게 상자를 받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면서 상자를 같이 열어봤다"며 "내용물을 본 순간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걸 보내나 싶었다"고 말했다.

70대 남성이 자신의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에게 두 번째로 보낸 과일과 현금 모습. 부산 사하경찰서 제공

B씨의 기행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음 출석요구일인 지난달 2일, 그는 이번에도 출석하는 대신 같은 방법으로 과일 상자와 함께 현금 400만 원이 든 봉투를 경찰서로 보냈다.
 
첨부한 편지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출석하지 못한다'는 내용과 함께, 추가로 뇌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후 민원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담당 수사관이 현금과 과일을 잘 받았는지 확인해달라"는 상식에서 벗어난 요청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B씨가 수사 무마를 위해 담당 수사관에게 뇌물을 건네려 한 것으로 보고, 기존 무고에 더해 뇌물공여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다. B씨는 계속해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경찰은 영장을 받아 그를 체포했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18일 무고와 뇌물공여 혐의로 B씨를 구속 송치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수사관과) 친분이 생겨 추석 명절을 앞두고 인사치레로 보냈을 뿐이다. 이게 왜 죄가 되느냐"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하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에게 소액이라도 현금 등을 건네는 행위 자체가 뇌물공여에 해당한다.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죄행위"라며 "경찰은 어떤 경우에도 뇌물을 받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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