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편안한 감정이 들었단다. 배우 전소니는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를 통해 처음 경험한 낯선 감정을 털어놨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솔직하게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했어요."
전소니가 연기한 조은수는 오랜 기간 어머니가 겪어온 가정폭력을 외면해 왔으면서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친구에게 그의 남편 살인을 제안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사실 저는 조은수가 이해됐다"며 "은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저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경험을 처음했다"고 말했다.
이어 "멍하니 앉아 은수가 이랬겠지, 저랬겠지 수첩에 적는데 그게 왜 중요한지 갑자기 알겠더라"며 "어떤 인물을 이해하려다 나를 이해하게 된 경험이 너무 신기했다"고 강조했다.
전소니는 극 중 조은수를 표현하기 위해 가정폭력 관련 다양한 자료를 참고했다고 전했다.
그는 "자세히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먼 일은 아니어서 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고 또 주변에 피해자들이 있어서 이정림 감독님, 이유미와 함께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책도 읽으며 공부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조은수의 감정선에 대해 "엄마를 구하지 못한 과거가 은수에게 큰 후회로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언젠가 엄마를 데리고 나온다는 마음으로 일에 욕심을 가지지만, 엄마가 처한 현실을 다시 마주했을 때 바로 행동에 나서지 못한 죄책감이 조희수(이유미)의 상황과 겹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승조, 평소 나긋하게 말해, 침? 사람이 어떻게 화가 났으면…"
전소니는 작품이 영상화되기 전부터 원작 소설인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를 읽어봤다고 밝혔다.
그는 "친구가 재미있다고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사람의 얼굴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었다"며 "영화화 소식을 접하자 오디션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연락이 와 되게 신기했다. 이건 해야겠다고 싶어서 바로 결심했다"고 웃었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밝고 대화가 많았다고도 했다. 전소니는 "작품 들어가기 전부터 이유미와 얘기를 했는데 마침 둘 다 같은 타입이어서 (현장이) 즐겁고 밝았다"며 "유미는 희수와 정말 달라 웃음도 많고 비타민 같았다"고 전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장승조와 이무생에 대해서는 "장승조 선배님은 평소 다정하게 '밥 먹었어~'라는 말투를 쓰시더라. 스윗하시고 귀여우셨다"며 "이무생 선배님은 실제로도 (극 중) 진소백 같은 사장님이셨다. 연기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극 중 노진영(이호정)이 조은수에게 침을 뱉는 장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대본에 적혀 있었는데 '사람이 어떻게 화가 나면 침을 뱉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상상이 안 돼 좀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이호정 배우가 너무 잘하는 거예요. 한 번에 했죠.(웃음)"
이어 "호정 배우가 계속 가깝게 다가오는 재미도 있었다. 경찰서 조사실에서도 멱살을 잡고 코앞까지 오는데 희열도 생겼다"며 "이번에 많이 못 붙어서 서로 볼 때마다 아쉽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다시, 다시 다시'하며 촬영…생존자분들 하루에 좋은 영향 주기를"
특별히 공들인 장면도 있었다. 4회에서 노진표(장승조)와 조희수, 조은수가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2분 40초가량 롱테이크로 촬영됐다.
전소니는 "모든 동선이 정확히 맞아야 했다. 장승조 선배님도 나중에 힘들어하셔서 헥헥하실 정도였다"며 "그날 셋 다 잘 하고 싶어서 '다시 한 번만, 다시, 다시'라고 하며 촬영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회에서 조은수가 서핑을 타는 짦은 신 역시 어려운 촬영 과정이었다. 이정림 감독은 앞선 인터뷰에서 이 장면이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해방감을 상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베트남 파도가 엄청 셌다. 첫 번째 대역분이 오셨는데 못하고, 두 번째 대역분도 못 하셨다. 세 번째 대역분이 오고 나서야 찍게 된 것"이라며 "한 장면이었지만 파도도 그렇고 날씨도 좋지 않아 정말 힘들게 찍었다"고 전했다.
또, 어린 조은수가 어른 조은수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에 대해서는 "은수가 희수뿐 아니라 어린 은수까지 구한 거로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장면을 써서 좋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전소니는 극 중 조희수를 도우려는 아랫집 이웃 김선영(이진희)을 좋아하는 이유도 전했다.
"말 한두 마디만으로 사람이 뭔가를 행동하고 움직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희수에게 용기가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어 "생존자 분들도 누군가에게 모든 걸 다 해결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닐 것"이라며 "(작은 마음이) 그들의 하루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끼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총 8부작으로 구성된 '당신이 죽였다'는 공개 3일 만에 한국을 비롯해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22개국 톱10에 진입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