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비관세' 조정…한국이 미국에 넘긴 건 무엇인가

농식품 'US 데스크' 신설로 검역 소통 강화
디지털 규제서 "美 기업 차별 금지" 명문화
생명공학 심사 기준 개선·데이터 이동 완화 포함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관세·안보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최종 합의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공개한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농업·식품, 디지털·온라인 플랫폼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 측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비관세 조정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이번 합의는 관세 인하뿐 아니라, 검역 지연·승인 절차·디지털 규제 등 미국 기업이 한국에서 마주해온 비관세 장벽을 손봐 시장 접근성을 넓히는 데에도 초점이 맞춰졌다.
 

농식품, 추가 개방 없지만 절차·승인 구조 바뀐다

 
지난 14일 발표된 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산 농산품 전담 창구인 'US 데스크' 설치에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미국 신청 건의 지연을 해소하며 미국산 원예작물 관련 요청을 전담하는 US 데스크를 설치한다"고 명시됐다.
 
이 조치는 단순 민원창구가 아니라, 미국이 수년간 지적해온 △검역 협상 지연 △승인 절차 장기화 △생명공학 작물(GMO) 승인 지연 등을 조정·해소하기 위한 전담 창구다.
 
한국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8월 한미 통상협상에서도 미국 측 검역 절차 지연 문제 제기에 대응해 소통 강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 소통을 강화할 창구로 US 데스크를 둔다.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는 상징적 형태"라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송 장관은 같은 자리에서 "검역 협상 8단계 절차는 국제 룰이라 생략할 수 없다"고 강조해 제도 변경이나 절차 축소가 아니라 '소통 기반 개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거듭 밝혔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쌀·쇠고기 추가 시장 개방은 합의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美 디지털·온라인플랫폼 기업 차별 금지, 첫 명문화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미 관세협상 팩트시트 및 MOU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합뉴스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는 한국이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를 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문서로 명문화됐다. 합의문에는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조항은 한국이 추진해온 △망 사용료 법제화(넷플릭스·구글 등 CP 부담 논쟁) △온라인플랫폼 공정화법(대형 플랫폼 규제)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협상 과정에서 "고정밀 지도나 온플법 같은 특정 조항을 두고도 상당히 오랜 기간 협상이 있었다. 결국 '동등한 기준(equal treatment)'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또한 "우리 측 디지털 법·정책이 미국 기업을 국내 기업과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국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위치정보 △재보험 △개인정보 등의 국경 간 데이터 이동을 원활하게 허용하는 데도 합의했다.
 
또 "WTO 전자적 전송물(software·게임·영상 등)에 대한 관세 부과 금지(모라토리엄)를 영구 유지하는 데 함께 지지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여 본부장은 "모라토리엄 유지로 K콘텐츠 수출 등 디지털 비즈니스의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GMO 심사 기준·절차 더 분명해진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가장 꾸준히 제기된 문제 중 하나가 GMO의 위해성 심사 절차 복잡성과 중복 자료 요구였다고 설명했다.
 
여 본부장은 "심사자료 기준을 명확히 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절차 개선을 추진한다. 미국이 신청해 심사 중인 품목도 과학적 기준에 따라 처리해 나가겠다"면서도 "이는 기존 한미 FTA 위생조건 등 '이미 합의된 의무'를 재확인하는 수준이며, 새로운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체다치즈·살라미 등 특정 명칭 사용을 미국 수출자가 한국 시장에서 현행대로 사용할 수 있음을 재확인했다"며 "이는 관세 철폐 등 추가 개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한미 합의는 시장 개방 없는 농식품 절차 개선, 디지털 분야의 미국 기업 차별 금지, 데이터 이동 규제 완화와 같은 조치가 중심이다. 결과적으로 실질적 절차·기준 조정이 미국 측 요구를 폭넓게 반영한 합의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경제학 전문 교수는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 시장 진입 과정에서 비관세 장벽이 높다고 평가해왔다. 까다로운 검역, 전수조사, 제한적 허가 방식 등이 이에 포함된다"면서 "이번 합의에는 아무래도 미국 측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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