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재판서도 '홍장원 메모' 공방…"지렁이 글씨" vs "본인 작성"

특검 "홍장원 차장이 작성자"…'메모' 가필 포함 총 4가지 버전
尹 "홍장원·지렁이 치면 기사도 나와"
홍장원, "사직 대통령 뜻"이냐 묻자 조태용 "정무직 인사 누가하겠냐"
홍장원, 국정원 CCTV 영상 편파 제공 의혹 제기
"싹 다 잡아들이라 해" 증언 재확인

윤석열 전 대통령(왼쪽)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우두머리 재판에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특검과 윤 전 대통령 측은 체포 명단이 적힌 이른바 '홍장원 메모'의 신빙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13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사건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에서 특검 측은 홍장원 4차 메모에 대한 증거 채택을 요청했다. 홍장원 메모는 12·3 비상계엄 당일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통화하며 홍 전 차장이 직접 작성한 1차 메모와 보좌관이 이를 보고 바르게 쓴 2차 메모, 이튿날 보좌관이 기억에 의존한 3차 메모, 3차 메모에 홍 전 차장이 가필(加筆)한 4차 메모로 나뉜다.

종이 기준으로 메모는 세 번 작성됐지만 가필을 반영하면 총 4가지 버전의 메모가 있는 셈이다. 해당 메모에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등 체포 명단이 적혀 있다.

이날 공판에서 홍 전 차장은 4차 메모에 대해 "보좌관이 정서한 것에 제가 통화 내용을 기억한 것을 추가로 가필한 것"이라며 메모가 조작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전 대통령 측은 "메모 중에 증인이 작성한 부분이 별로 없고, 나머지는 보좌관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 부분은 진정성립을 따로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진정성립은 작성자의 의사가 반영돼 작성된 게 맞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로 윤 전 대통령 측은 실제 메모 대부분을 보좌관이 작성한 만큼 보좌관에 대한 진정성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판부가 보좌관에 대한 증인신문 요청인지 묻자 윤 전 대통령 측은 '증인신문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좌관이 해당 메모를 작성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수사 기관 진술 조서 등을 특검 측에 제시해 달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특검팀은 "재판장 말처럼 이 부분은 보좌관의 대필에 불과하고, 사후적으로 내용을 확인하고 가필까지 해서 완성된 것"이라며 "증인이 작성자로 보기에 상당(타당)하다"고 반박했다.

홍 전 차장은 메모 작성 경위에 대해 구체적인 증언을 덧붙였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후 보안폰으로 전화를 걸어와 '비상계엄 방송을 봤냐'고 물어보신 것 같다. 봤다고 하자 '싹 다 잡아들여서 이번에 싹 다 정리해라'라는 말씀과 '대공수사권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며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했는데, 단순하게 방첩사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인원이나 예산을 무조건 지원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

재판부는 "문서 작성할 때 모든 문서를 다 치지 않고 초안을 지시하고 확인했다 빠진 게 있으면 가필했다는 것 같은데 그러면 본인이 작성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냈다.

윤 전 대통령은 직접 나서 "(홍장원 메모) 초고란 게 보면 지렁이 글씨였다. 아라비아 (글씨), 지렁이처럼 돼 있어서 대학생들이 티(셔츠)도 만들어서 입고 그런 정도였다"며 "그걸로 보좌관을 시켜서 이런 걸 만들었다고 하니, 초고란 것 자체가 이거(이후 작성된 메모)랑 비슷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홍 전 차장이 작성한 1차 메모와 2, 3, 4차 메모가 다른 만큼 검증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날 공판에서 홍 전 차장은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사직을 하라고 요구한 상황에 대해 "조 전 원장이 '홍 차장 이번에 사직해 주셔야겠어요. 정무직들은 다 그렇잖아요'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 생각이냐'고 묻자 조 전 원장이 '그럼 우리 정무직 인사를 누가 하겠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공개한 CCTV와 자신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홍 전 차장은 CCTV 시간이 전자 충격 등으로 시간 편차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의문이 있다는 입장이다. 국정원 마당이 나오는 영상이 공개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들고 "CCTV 공개가 상당히 편집된 상태에서 편파적으로 공개된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갖게 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 측이 홍 전 차장에 대한 반대신문 준비가 되지 않았고 특검 재주신문이 필요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오는 20일 홍 전 차장을 다시 한 번 불러 신문하기로 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다음 달 24일과 29일을 추가 기일로 지정했으며 내년 1월 중순까지 최소 세 차례 정도 재판을 더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재판부의 계획대로 공판이 이뤄질 경우 내년 1월 내 선고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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