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양심을 시험하는' 중간고사…비대면 시험의 딜레마

챗GPT 생성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보급과 함께 대학가 비대면 시험의 공정성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연세대, 고려대, 서울대 등 주요 대학에서는 AI를 활용한 부정행위 의혹이 연이어 제기되는 가운데 온라인 시험의 구조적 허점과 평가 공정성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SNS와 대학 커뮤니티에서도 "비대면 시험은 컨닝이 쉽고 불공정하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결국 중요한 건 학생의 양심"이라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직하게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커지고, 대학 내 AI 활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 부재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정직하면 손해…양심만으론 부족한 구조"

연합뉴스

AI컨닝이 비일비재해지면서 대학생들 사이에선 "정직하게 보면 손해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비대면 시험에서는 감독 체계가 허술하거나 사후 규제가 느슨한 경우, 성실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성신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 모(24)씨는 "코로나 학번이라 온라인 시험을 주로 경험했는데, 동기 중 한 명이 'AI로 컨닝해서 A학점 받았다, 너희는 왜 안 했냐'며 당당하게 말해 다들 불쾌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정직하게 시험을 보면 바보가 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대학 졸업생 박윤형(24)씨도 "교수님이 얼굴과 손을 비추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지침을 어기는 학생들이 많았다. 오디오가 안 들리는 척하며 컨닝한 사례도 여러 번 봤다. 결국 교수님도 어쩌지 못했다"며 "정직하게 지침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불리해지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최근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취업 준비 중인 김 모(24)씨는 본인의 채용 시험 경험을 언급했다. 그는 "'모니토' 앱을 이용한 온라인 시험을 봤는데, 휴대폰으로 전신을 촬영하고 노트북은 실시간 화면 공유가 이뤄져 사실상 부정행위가 불가능한 구조였다"며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그만큼 시험의 공정성은 명확하게 보장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도 이런 시스템처럼 기술을 활용한 공정한 감독 체계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AI시대, 명확한 기준 부재가 더 큰 문제"

학생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제기된 또 다른 문제는 "AI 사용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수업별로, 교수별로 AI 활용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보니 혼선이 잦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 구조라는 것이다.

서울 소재 여대 재학생 배 모(23)씨는 '인공지능과 지식재산권' 수업의 중간고사를 비대면으로 응시했다. "AI 사용 금지 공지는 없었고, 자율 응시 형식이라 Gemini, ChatGPT, Perplexity 등 여러 생성형 AI를 활용해 정보 검색과 문장 구성을 검토하며 답안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성적 발표 후 교수는 "AI 사용이 의심되는 답안이 다수 발견돼, 기말고사부터는 적발 시 0점 처리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배 씨는 "AI 관련 과목이었는데도 사전에 아무런 공지 없이 사후에 경고가 나온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국외대에 재학 중인 이 모(25) 씨도 "논문이나 과제에서도 AI 사용이 보편화된 상황"이라며 "요즘은 표절보다 AI 사용 여부를 더 민감하게 보는 교수님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정직함은 점수로 보상받지 않기 때문에, 다들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AI를 사용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AI는 전제…문제 설계와 윤리교육이 해법"

교수들 역시 AI 시대에 맞는 평가 체계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서울 소재 사이버대 교수는 "AI 활용이 전제된 시대"라며, "단순 검색이나 AI 응답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사례 기반 문제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기술 변화 속도를 규정이 따라잡긴 어렵다. 결국 교수의 수업 설계와 평가가 공정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한국외대 교수도 "학생들이 AI를 쓸 수 있다는 전제를 기본값으로 두고, 과목별 특성에 맞게 평가방식과 공지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계적 답안은 말투·구성에서 드러나 실제 경험과 사고가 담긴 답안과 구별 가능하다"며, "교수 역시 명확한 가이드라인 제공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학생이 AI를 단순 편의도구로 여기지 않도록 AI 리터러시와 윤리교육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들은 "AI 사용 판단을 학생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학교차원의 명확한 기준과 교수별 판단권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AI가 일상화된 대학 현장에서, 시험의 공정성과 학습 윤리를 지키기 위한 제도적 설계가 더는 미뤄질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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