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0% 성장절벽'까지 우려됐던 한국 경제가 내년에는 1.8% 성장하며 완만히 개선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11일 발표한 '2025년 하반기 KDI 경제전망'에서 내년 한국 경제에 대해 "수출이 둔화하겠으나, 내수가 회복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는 0.9%, 내년에는 1.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8월 KDI가 올해 0.8%, 내년 1.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던 것보다 각각 0.1%p, 0.2%p씩 상향 조정한 결과다.
이처럼 상향조정한 배경에 대해 KDI 정규철 거시·금융정책연구부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반도체 경기가 훨씬 좋았던 것이 주된 상향 배경"이라며 "마찬가지로 반도체 경기가 내년에도 더 좋을 것으로 보이고, 정부 예산안이 더 확장적으로 편성되면서 내년도 성장률 상향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 경제 성장률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1.0%, 내년 2.2%를 전망한 것보다는 낮고, 한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과는 똑같은 전망치다. 한국은행은 올해 0.9%, 내년 1.8% 성장을 예상한 바 있다.
올해 3분기 1.2% 성장하면서 4분기에 -0.1% 이상 성장하면 올해 연간 기준 1.0% 성장이 가능해, 정부와 한은은 1.0%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구두발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KDI가 0.9% 성장을 전망한 배경에 대해 정 부장은 "(4분기에는) -0.1%보다는 4분기가 (3분기보다) 더 낮다고 본다"며 "가장 큰 이유는 3분기에 아주 큰 폭으로 성장했고, 소비쿠폰 등 정부의 재정 지원이 집중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 부분이 일부 조정되는 정도이고, 4분기에 소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하더라도 경기가 나빠진다고 해석하기는 어렵고, 경기가 완만하게 개선되는 와중에 일부 등락하는 정도로 해석하고 있다"며 "0.9%와 1.0%는 아주 작은 차이로, 0.1%p 단위로 발표하다 보니 반올림이 어디로 가느냐 차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작은 차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KDI 보고서를 살펴보면, KDI는 현재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비록 건설업이 부진하며 건설투자가 위축됐지만,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개선되는 가운데 소비도 개선되면서 내수 부진이 완화되고 있다고 묘사했다. 특히 미국의 관세인상으로 통상 여건은 악화됐지만, AI 붐으로 대만 등을 상대로 한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면서 수출이 완만한 증가세를 지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에도 한국 경제는 수출은 다소 둔화되지만, 내수 회복세에 힘입어 반등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됐다. KDI는 시장금리 하락세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등으로 민간소비가 올해(1.3%)보다 높은 1.6% 증가할 것으로 봤다.
그간 내수 시장의 발목을 잡았던 건설투자 역시 올해 9.1%나 급락했던 것과 달리 2.2% 반등에 성공하며 부진이 일부 완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소비자물가는 내수가 회복되지만 국제유가는 하락해 올해(2.1%)와 비슷한 2.0% 상승하는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변동성이 큰 식료품 및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내수 회복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며 올해(1.9%)보다 높은 2.2%를 성장할 것으로 봤다.
다만 한국 경제의 기둥인 수출은 올해 초 관세 장벽을 피해 수출을 서둘렀던 '선제적 수출효과'는 축소되고, 미국 관세인상의 부정적 영향이 본격적으로 퍼지면서 올해(4.1%)보다 낮은 1.3%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부문은 "미약한 흐름"에 그치더라도, 반도체 관련 투자 수요가 급증한 덕분에 설비투자는 올해(2.5%)에 이어 2.0%의 완만한 증가세는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수 회복세로 고용 여건도 완만히 개선되지만, '저출생 고령화' 인구구조 변화로 취업자 수는 올해(17만 명)보다 줄어든 15만 명 증가한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대해 KDI는 △내년 세계경제 성장세가 완만히 둔화되고 △유가는 수요가 둔화되는 가운데 공급이 크게 늘며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70달러였던 올해보다 10% 하락한 63달러 내외를 기록하고 △실질실효환율로 평가한 원화가치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제하고 내린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통상 관련 불확실성이 높은 수준이 지속되고 있어 상협정 세부사항, 미국 내 법적 이슈 등에 따라 수출 전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경기 개선 흐름에 더해 지난 9월 말부터 계속된 환율 상승 영향이 더해지면 물가안정목표인 2% 선을 상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를 향해 KDI는 경기 회복 속도에 맞추어 확장적 정책기조를 점차 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는 유지하되, 큰 폭의 재정 적자 흐름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저출생·고령화 등으로 세수 기반이 약화되고, 복지지출이 늘어날 점을 감안해 재정부담 문제를 줄일 수 있는 유연한 조세·재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출생 기조를 감안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규모를 내국세 수입 대신 학령인구에 연동되도록 개편하거나, 기초연금을 취약 노령층에 집중 지원하고, 노인연령을 상향 조정하자는 제안도 곁들였다.
정 부장은 "내년 적자 폭이 GDP 대비 4%로, 아주 확장적 정책 기조가 계속되는 것으로 해석했다"며 "내년에 경기 부진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확장적 정책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 이후로는 -4%의 적자는 좀 많은 편"이라고 주장했다.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경기 부진 완화와 물가 안정세를 감안해 현재의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등, 기존 기조와 유사하게 운용할 것을 권했다.
또 글로벌 무역 갈등, 미국과의 투자협정 체결에 따른 자금조달 불확실성 등으로 환율과 주가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으니 주요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시 제때 안정화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단기적 대출수요 관리보다 금융기관의 자율적 신용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거시건정성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짚었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6.27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될 수 있으므로, 차주의 실질적 상환능력에 기반해 대출이 운용되도록 전세자금대출과 정책자금에 대한 DSR 규제 예외 조항을 축소하면서 가계부채 관련 건전성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