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프면 상담을 받는 게 당연한 문화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 안전노사팀 이지훤 소방위는 지난 7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방관들이 아픔을 숨기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지훤 소방위는 소방 공무원의 신체검진과 심리상담, 트라우마 치료 지원 등 건강관리 전반을 총괄하는 업무 전반을 담당한다. 특수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고, 진단 결과 이상 소견이 발견될 경우 정밀검사 비용도 실비로 지원한다.
또한 참사 트라우마나 수면 장애 등 심리적 문제를 겪는 소방공무원에게 '찾아가는 상담실' 등 심리 상담을 지원하거나 휴식을 돕는 지원 사업을 개발해 제공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소방관들의 건강 실태를 지켜봐온 그는 "소방관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지는 상당히 오래됐다"고 강조했다.
이 소방위는 "소방 대원들의 70% 이상이 건강에 이상을 가지고 있다"며 "일반인과 달리 벤젠과 납 등 유해 인자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소방대원들은 대부분 이상지질혈증과 고혈압, 당뇨병과 난청 등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4년 기준 소방공무원 특수건강진단 결과 전체 소방대원의 25.6%인 1284명의 소방대원이 이상지질혈증 진단을 받았다. 이어 고혈압 904명(18%), 당뇨병 626명(12.5%), 요추간판탈출증 617명(12.3%), 난청 487명(9.7%)을 진단받은 소방 대원들이 많았다.
이지훤 소방위는 "소방공무원의 평균 수명은 74세로 다른 직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며 "소방 대원들이 걸리는 질병은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에 도의회와 협의해 퇴직 공무원도 퇴직 후 10년 간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만드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체적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의 상처다. 이지훤 소방위에 따르면 전체 소방대원의 59%에 해당하는 1936명의 소방 대원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마음 건강에 이상을 가지고 있다.
"난파선에 물이 차듯 차오르게 되는 것이죠."
이지훤 소방위는 소방관들의 상태를 난파선으로 비유했다. 온몸이 부서진 채 밀려드는 파도를 그대로 맞으며 가라앉는 배처럼 소방관들의 마음 건강이 위태로운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수면장애나 이로 인한 문제성 음주, PTSD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소방 대원들이 이미 많이 있지만 남성적인 강인함을 요구하는 소방 조직의 특성 속에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 것을 어려워하는 대원들을 포함하면 더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훤 소방위는 인터뷰 내내 소방 대원들이 상담을 받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자살 위험에 처해 있던 대원이 있었다. 심각했지만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용기를 회복하고 삶의 의지를 되찾았다"며 "감기에 걸리면 아무렇지 않게 병원을 찾듯, 어려움을 느낀다면 망설이지 말고 우리를 찾아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어려움을 가진 이들이 상담실을 찾을 수 있게 해 회복의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 나와 같은 보건 업무를 담당하는 대원의 역할인 것 같다"며 "찾아가는 상담실 등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 대원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돕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시민들에게도 현장의 소방대원을 향한 격려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소방 공무원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을 가장 큰 사명으로 여기며 생활한다"며 "뜨거운 불길과 위험한 현장에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이유는 국민의 신뢰와 응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그런 소방관들에게도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상처가 있다. 국민들이 소방관들의 아픔에도 따뜻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며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한 마디가 소방관에게 힘이 되니, 응원을 해 달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