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진> 제주도민과 함께 기부와 나눔, 그리고 자원 순환의 문화를 만들어온 아름다운가게 제주동문점이 어느덧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제주에서 나눔과 자원순환의 문화를 도민들과 함께해 온 아름다운가게인데요. 서정민 아름다운가게 제주본부장 모시고 얘기 나눠봅니다. 20주년 맞이한 소감이 어떠세요?
◆서정민> 인생에 비유해도 성년식을 치를 나이에 이를만큼 오랜 시간을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활동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시기 동안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데 큰 일조를 담당했다고 생각되어 자부심이 큽니다.
◇박혜진> 2005년 개소 당시만 해도 '재사용, 기부, 순환경제'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제주에서 아름다운가게가 어떻게 자리 잡아갔는지 회고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정민>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기부와 재사용 문화를 꾸준히 확산시켜 왔습니다. 제주도민들을 대상으로 '물품 기부','친환경 소비'등의 캠페인을 전개했구요.
제주은행, 제주도의회, 핀크스골프클럽을 대표로 한 골프장경영협의회, 제주한라병원 등 많은 제주 내 관공서, 기업들과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연대를 강화하면서 지역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아름다운가게는 제주에서도 지속 가능한 나눔과 순환의 거점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박혜진>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판매 수익금 23억 원, 누적 나눔액 7억 원이라는 인상적인 수치가 있습니다. 이 성과를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서정민> 이 성과는 무엇보다 제주도민들의 꾸준한 참여와 공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품 기부와 자원봉사로 함께해주신 도민들, 그리고 나눔과 자원순환의 가치를 공감하며 협력해주신 지역 내 관공서와 기업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아름다운가게 제주의 매장들은 처음부터 '지역이 함께 만드는 가게'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가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성과는 아름다운가게만이 아닌 제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만들어 낸 성과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박혜진> 20년 동안 아름다운가게 제주본부가 제주 지역사회에 남긴 가장 큰 변화나 영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서정민> 아름다운가게 제주본부가 지난 20년 동안 남긴 가장 큰 변화는 '나눔이 일상이 되는 문화'를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품을 기부하고, 자원봉사로 시간을 나누며, 지역 기업과 기관이 함께 순환의 가치를 실천하는 흐름이 제주 곳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 덕분에 나눔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 속에 공동체 문화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고 봅니다. 그 점이 가장 큰 변화이자 의미라도 생각합니다.
◇박혜진> 봉사자인'활동천사'분들의 장기 참여가 특히 눈에 띕니다. 이분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감동적인 순간이 있을까요?
◆서정민> 다양한 계층의 분들과 만나며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활동천사들과 만나는 즐거움 중의 하나인데요.
제주의 특징 중의 하나는 특히 서귀포점의 경우 특별한 제주여행을 계획한 청년들이 제주도민처럼 살아보기 체험을 기획하고 한달 살기 등을 오면서 거기에 봉사활동 계획을 넣어 제주살이를 체험하고 간다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 매장을 통해 제주도민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며 즐거워하던 기억들이 있어요. 무엇보다 수시로 저를 겸손해지게 하는 점은 장기근속 중인 활동천사분들이신데요. 40~50대 나이에 활동을 시작해 이제 60~70대가 되어가는 활동천사분들을 바라볼 때에요.
아름다운가게에서는 자원활동을 '세상을 바꾸는 4시간의 힘'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일주일에 4시간씩 이어진 그 꾸준한 성실함이 바로 세상을 바꿔온 크고 대단한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박혜진> 재사용과 나눔의 문화가 제주에서는 이미 하나의 '생활문화'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 제주 시민들의 인식 변화, 혹은 참여 방식의 변화를 체감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서정민> 초창기에는 '물품 기부','자원 순환'등이 낯선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집 정리나 이사를 준비할 때 아름다운가게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젊은 세대들이 환경적 가치에 공감하며 SNS를 통해 기부 캠페인을 자발적으로 확산시키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자원봉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나눔을 실천합니다.
나 혼자만 하는 행동에서 다같이 함께 참여하고자 하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환경과 이웃을 생각하는 가치가 우리의 기본 사고 속에 자리했다는 점이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박혜진> 아름다운가게는 단순한 바자회가 아니라 순환경제와 환경 보호의 실천 현장이기도 합니다. 본부장님께서 보시기에 이러한 활동이 탄소중립이나 자원순환 측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시나요?
◆서정민> 아름다운가게는 재사용을 통해 물품의 생애를 연장하고 폐기물을 줄이는 순환 경제의 실제 모델입니다. 한 벌의 옷, 한 점의 생활용품이 다시 쓰이는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생산과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크게 줄입니다.
작지만 구체적인 이런 실천들이 모여 지역 차원의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는 ESG 활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혜진> 기증·판매·나눔이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과정에서 제주만의 특색 있는 나눔 사례나 타 지역과 차별화된 운영방식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서정민> 제주는 기본적으로 환경에 진심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지에 비해 환경에 대한 생각이 좀더 직접적이고 생활밀착화 되어있다고 할까요. 그래서 다시 쓰는 재사용, 환경을 살리는 일에 대한 공감대가 더욱 높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한달 살기 등이 있는 휴양관광지이다보니 입도하는 분들도, 출도하는 분들도 아름다운가게를 이용하는 빈도가 높아서 특이한 물품의 기부와 구매를 자주 접하게 되곤 합니다.
다만 활동천사 모집에는 육지에 비해 큰 어려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 매장은 상시 자원봉사가 가능한 매장이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박혜진> 아름다운가게 제주가 20주년을 맞이한 만큼 앞으로의 20년은 어떤 아름다운 가게 제주가 되길 바라시는지도 말씀해 주시죠.
◆서정민> 아름다운가게가 약 15년 전에는 정서소외아동 지원이라는 당시에는 다소 낯설었던 테마로 소외계층 가정 아동들의 정서를 지원했는데요. 이것이 많은 관심을 끌게 되어 저희는 이후 청소년자립지원사업을 펼쳤고 다시 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를 찾아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업을 꾸준히 펼쳐나가고 싶습니다.
◇박혜진> 향후 갖고 계신 계획도 알려주시죠.
◆서정민> 아름다운가게가 활동을 시작했던 2002년에는 다른 사람이 쓰던 물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서가 만연한 사회였습니다. 또한 기부를 한다는 것은 특정 계층 또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처럼 여겨지던 때였는데요.
23년이 지난 지금은 중고마켓이 활성화 되어 있고 생활 속 기부가 자연스러워졌다는 점에서 그 시초가 되었던 아름다운가게의 역할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되팔아 소소한 이득을 얻는 것도 즐거움이 되겠지만 다른 이웃을 위해 물품을 기부하고 판매된 수익금으로 또 다른 이웃에게 살아갈 희망과 온기를 전할 수 있는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은 함께 살아갈만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차가운 세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온기를 전하며 살아가는 훈훈한 세상을 전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