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에 발맞춰 우라늄 농축·사용 후 연료봉 재처리 기술을 확보하려면 '핵무장론'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과의 관련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이미 원자력 잠수함에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공식화한 바 있다.
국립외교원 전봉근 명예교수(한국핵정책학회 회장)는 6일 국민의힘 유용원·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의원실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에너지 안보를 위한 농축·재처리 필요성과 확보전략' 토론회에서 "미국이 1970년대 중반부터 농축·재처리 기술의 이전(확산)을 반대한 이유는 해당 기술의 핵무기화 가능성 때문"이라며 의견을 밝혔다.
전 명예교수는 "한국의 높은 핵무장 지지율과 남북 간 군사적 대치 상황은 미국이 한국의 농축·재처리를 지속적으로 반대하는 정치·전략적 근거가 돼 왔다"며 "협상 환경 개선을 위해선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며, 정치권·언론·NGO·학계와 지속적 대화를 통해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의 농축·재처리 필요성을 정당화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유는 우라늄을 이용한 원자로의 특성 때문이다. 원자로를 가동시키는 우라늄 자체는 농축도가 낮아도 사용이 가능하지만, 가동시킨 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이 나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은 우리나라의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모두에 강력한 제한을 걸고 있다. 그러므로 이른바 '핵 잠재력 보유'를 하자며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물질을 얻기 위해 농축·재처리를 추진하면 안 된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전 교수는 특히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일본의 경우, 기술이 조기에 도입되기도 했지만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영향으로 '비핵 3원칙'을 견지하고 국민들의 핵무장 지지도가 낮았다고 강조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이병철 교수도 "우리가 농축을 이야기하려면 에너지 안보와 글로벌 기후변화, 탄소중립 추세 등을 강조해야 한다"며 "자칫 '자주국방' 만을 강조하다 보면 미국에 있는 핵 비확산론자들에게 커다란 반대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도 "현재 2만여톤에 달하는 사용 후 핵연료 누적 발생량과 2030년경 일부 원전 저장시설 포화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농축·재처리 권한 확보는 에너지 안보 강화 차원을 넘어선다"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최소화하고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산업·환경점 이점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례가 오히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역으로 당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같은 시각 진보당이 국회에서 개최한 '핵추진잠수함 과연 필요한가' 긴급 좌담회에서 해군 중령 출신인 북한대학원대 김동엽 교수는 "우리가 원하는 '핵 주권'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강력한 협상 카드를 제공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자력 잠수함 보유는 우리가 이를 자체 건조해 북한·중국 잠수함을 추적하면 미국에도 좋으니 핵연료만 공급해 달라는 이야기를 내세워, 핵연료주기 협상(농축·재처리 권한)을 테이블에 올려 보려는 시도"라면서도 원잠 건조에 의회 승인과 차기 정권의 변심 가능성 등을 비롯해 수많은 기술적·법적·정치적 장벽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으로부터 약속된 경제적 이익을 모두 챙긴 뒤, '승인해 주려 했는데 △의회 △NPT(핵비확산조약)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반대해 어쩔 수 없다'며 사업을 무산시킬 수 있는 핑계와 퇴로가 확보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관심사는 우리의 원자력 잠수함 보유보다는 '미국 조선업 부활'을 위해, 한화의 자본을 활용한 필리 조선소 현대화 그 자체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