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예산안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고성은 물론 "범죄자", "꺼져라" 등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원색적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시정연설 직전 이뤄진 특검의 추경호 의원 구속영장 청구가 국민의힘을 크게 자극했기 때문이다.
코스피 지수가 4200까지 치솟는 등 신고가를 기록했고,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많아 여론전 지형이 국민의힘에게 좋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상황. 진퇴양난의 상황이지만 국민의힘 내부는 그 어느 때보다 분노를 매개로 결속되는 분위기다.
침묵시위 준비했지만…그 어느 때보다 격앙
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국민의힘은 애초 검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침묵시위'로 이 대통령에게 항의의 뜻을 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국회 본청에 들어서자 마자 현장은 고성과 야유로 뒤덮였다. "재판 받으세요", "범죄자 왔다" 등의 고성이 터져 나왔고, "꺼져라"라는 원색적 비난까지 더해지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격앙됐다.
국민의힘 반발을 키운 결정적 계기는 이 대통령 시정 연설 직전인 지난 3일 내란특검의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였다. 추 의원은 불법 비상계엄을 해제하려는 국회 표결을 방해한 의혹을 받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국민의힘을 내란정당으로 몰아 없애겠다는 것으로 이제는 전쟁"이라고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불참했고 대신 같은 시간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고,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작년 12월 3일 밤 국민의힘 107명 의원 누구도 의원총회 공지 문자메시지로 표결을 포기하거나 방해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것을 국민 앞에 증언한다"고 밝혔다.
불리한 여론 지형…그럼에도 강공 택했다
다만 국민의힘 분노와 달리 여론 환경은 야당에 불리한 상황이란 것이 지배적 평가다.코스피 지수가 4200까지 치솟으며 좋은 흐름을 보이고 있고, APEC 역시 성공적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한미 관세협상 타결, 핵추진 잠수함 승인 등 경제·안보 성과가 이어지자 국민의힘 내에서조차 호평이 나왔다. 엔비디아 GPU 26만 장 확보도 깜짝 성과였다.
여론전 지형이 좋지 않지만, 전직 지도부를 정조준한 특검 수사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강공을 선택했다.
당 내부적으로는 추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다시 국회에서 펼쳐질 자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에 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당내 의원들도 결집하는 분위기다. 평소 당 지도부를 향한 쓴소리도 서슴지 않던 한 재선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늘은 오히려 항의 목소리를 좀 더 내야 했다"며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게 영장을 청구하는 건 너무 정략적이고 무리한 결정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수도권 지역의 또 다른 의원도 "특검의 무리한 수사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황에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갈 수 없었다"며 "소수 야당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였을 때도 대통령 시정연설에 불참으로 맞섰던 전례를 떠올리면, 우리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도 "시정연설을 앞두고 굳이 영장을 청구한 건 일부러 야당 자극을 유도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든다"며 "정부여당이 겉으로는 '야당 존중'을 말하면서 속으로는 조곤조곤 괴롭히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한동안 '야당 탄압' 여론 형성에 집중할 계획이다.
가까운 시일 내 가장 큰 변수는 단연 추 의원 구속 여부다. 권성동 의원에 이어 추 의원이 구속될 경우 국민의힘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추 의원의 혐의가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인 만큼 '내란 정당'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반대로 영장이 기각될 경우 국민의힘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 있다. 국민의힘은 '무리한 정치보복 수사'라며 반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당 관계자는 "APEC과 관세협상, 핵잠수함 등으로 민주당이 득점을 쌓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국민의힘을 해산시키겠다는 시도는 오히려 중도층의 피로감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