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영방송 BB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도하면서 그가 연설 중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내부 고발자 보고서가 공개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BBC 편집 지침 및 기준위원회(EGSC) 위원을 지낸 마이클 프레스콧이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했다며 3일(현지시간) 그 내용을 공개했다.
보고서는 BBC가 작년 10월 28일 방영된 '트럼프: 두번째 기회?'라는 제목의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미 의회 폭동 발생일인 2021년 1월 6일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의도적으로 편집, 재배치해 내용을 오도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의회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다. 저는 그곳에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싸울 것이다. 우리는 지옥처럼 싸운다. 지옥처럼 싸우지 않는다면 더이상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연설 중 세 부분을 하나의 문장처럼 보이도록 짜깁기한 결과라는 것이 보고서의 지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실제 발언은 "우리는 의회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라는 발언 이후 "우리는 싸울 것"이라는 발언이 나오기까지 54분의 시차가 난다.
문제의 다큐멘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후 의회에서 남성들이 행진하는 영상을 배치, 마치 그의 발언이 폭동을 촉발한 것처럼 연출됐다는 지적도 받는다.
이 보고서는 3년간 EGSC의 독립 외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6월 물러난 프레스콧이 작성한 것이다. 그는 EGSC와 경영진에도 이 문제를 알렸지만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BBC 뉴스 담당자는 5월 EGSC 회의에서 시청자들을 오도하려는 시도는 전혀 없었다며, 연설을 짧게 편집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정치권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나이절 허들스턴 그림자내각 문화장관은 "BBC의 브랜드와 평판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우려스러운 폭로"라고 말했고, 보수당은 해당 프로그램 방송 허가 과정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요구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는 엑스(X·옛 트위터)에 "이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영국 공영 방송이 영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에 대해 명백한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 있다"고 적었다.
이번 일로 인해 BBC의 신뢰도에 타격이 예상된다. 또 이미 껄끄러운 BBC와 미 백악관 간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영국 정부의 BBC 자금 지원 협상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