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승인'한 사실을 확인하며 미국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콕 집어 발표했다. 일방적인 것 같아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이며, 한국에 대한 양보 와중에도 '미국 우선주의'를 챙기는 특유의 집요함이다.
이는 우리의 핵추진잠수함 개발이 겨우 물꼬를 텄을 뿐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말해준다. 여차하면 핵추진잠수함 건조 과정에서 미국 의존도만 커지고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결과가 될 수 있다. 후속협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필리 조선소 낙점은 한미 공동건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이 조선소는 지난해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이 지분 100%를 인수했다. 어떤 식으로든 양국의 협력이 불가피한 셈이다.
다만 여기에는 일장일단이 있기에 다각도로 이해득실을 따져야 한다. 미국 내 건조는 미국의 앞선 기술과 오랜 노하우를 습득할 기회가 된다는 장점이 크다. 미국은 군함 건조 시 외국 인력을 배제하는 등 군사기술에 매우 민감하지만 지금은 마냥 그럴 형편이 아니다.
단점은 낙후한 필리 조선소에 막대한 사전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사업 기간도 늘어나는 점이다. 필리 조선소는 잠수함 자체를 건조한 실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한화 측은 어차피 필리 조선소에 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지만 이는 핵추진잠수함 건조는 감안하지 않은 상태였다. 자칫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잠수함 건조는 물론 향후 운용까지 미국에 발 묶일 가능성이다. 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하더라도 한국 내에 핵연료 취급·훈련·인프라는 반드시 갖춰야 한다"며 중복 투자의 부담을 지적했다. 그렇지 않으면 유지·보수를 위해 매번 미국까지 오가는 엄청난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국내 건조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들이 사라진다. 한화오션과 HD현대 등 우리 기업들은 재래식이긴 하지만 세계 최정상급의 3천t급 이상 잠수함 건조 능력을 갖고 있다. 소형 원자로(SMR) 기술도 상당히 발전했기 때문에 미국이 핵연료 지급만 보장한다면 기술적 제약도 크지 않다.
미국이 오케이 신호를 보낸 이상 더 눈치 볼 게 없기 때문에 국책사업으로 지정해서 대대적으로 추진할 준비가 돼있다. 여기에다 미국에는 없는 전문 인력 등을 포함한 조선 생태계가 이미 완성돼있다. 미국의 기술제휴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독자적으로도 약 10년 내 건조가 가능하리란 전망이다.
군 당국은 2030년 중반 이후 5천t급 핵추진잠수함 4척 이상 확보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30일 국정감사에서 우리의 조선 능력으로 볼 때 더 단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버지니아급(8천t) 핵잠수함은 건조 비용이 약 5조원인 반면 국내 건조 시에는 그보다 체급은 조금 작지만 반값 이하에 건조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 무엇보다도 기술주권 확보와 전략적 자율성 강화가 독자 개발·건조의 최대 장점이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초기 기술적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감안하더라도 국내 건조의 이점이 커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건조를 계속해서 강력 요구할 경우 현실적으로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양국 이익을 세밀하게 조율하는 후속협상까지 성공하기 전에는 방심할 수 없는 것이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대외협력실장은 "지금은 (핵추진잠수함 허용이라는) 정책적 결정만 내려졌을 뿐 제도, 법률, 기술적 극복 과제는 남아있다"며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개입해서 조선업과 해군력 재건 등 자국 이익을 최대한 챙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