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의 전설이 까마득한 후배에게 전해준 조언은 단순했지만 진리였다. 비단 한화 김서현뿐만 아니라 LG 유영찬까지 깊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었다.
두 팀은 29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2025 신한 SOL 뱅크 KBO 리그' 한국 시리즈(KS) 3차전을 펼쳤다. LG가 앞서 홈인 잠실에서 열린 1, 2차전을 모두 이긴 가운데 한화가 안방에서 치르는 첫 KS였다.
이날 경기 시구와 시포자는 꼭 26년 전인 1999년 10월 29일 KS에서 한화의 정상 등극을 확정한 우승 배터리였다. 당시 KS 최우수 선수(MVP)에 오른 구대성 중국 장쑤성 코치(56)가 시구자로, 당시 포수였던 조경택 두산 2군 코치가 시포자로 나섰다.
한화의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시구였다. 당시 둘은 롯데와 KS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하며 포옹했다. 구 코치는 5경기 모두 등판해 1승 1패 3세이브로 KS MVP에 올랐다. 구 코치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올해 한화 투수진이 무척 좋아졌고, 타자들도 KS에서 타격감이 좋은데 LG와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했고, 조 코치도 "더그아웃에서 즐기면 우승 반지가 손에 오고, 잡으려고 하면 도망갈 것"이라고 응원했다.
특히 구 코치는 가을 야구에서 시련을 겪고 있는 한화 마무리 김서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서현은 정규 리그 막판 SSG와 원정에서 끝내기 홈런을 맞았고, 삼성과 플레이오프(PO) 1, 3차전에서도 거푸 홈런을 맞고 한화를 어려운 지경에 빠뜨렸다.
구 코치는 "처음 (가을 야구) 시작이니까 부담감이 크지 않을까 싶다"면서 "그러나 그걸 떨치는 건 본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조언해준다면 '잡으려 하지 말고 무조건 집어넣어라'는 것"이라면서 "삼진을 잡으려고 안 맞으려 하기보다 (스트라이크 존에) 집어넣으면 타자들이 알아서 치고 야수들이 잡아준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역 시절 구 코치는 1993년부터 2010년까지 569경기 67승 71패 214세이브 18홀드 평균자책점(ERA) 2.85를 기록하며 '대성 불패'로 불렸다. 일본 오릭스와 미국 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에서도 활약했다. 국제 대회에서도 일본 킬러로 시드니올림픽 동메달을 이끌었다.
충고는 단순했지만 실천이 어려웠던 걸까. 이날 김서현은 8회초 1사 1, 3루에 등판해 오스틴 딘을 상대로 2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아 유리한 카운트를 이끌었다. 하지만 4구째 시속 154km 속구가 오스틴의 머리 뒤로 날아가는 폭투가 되면서 실점했다. 1-2이던 점수가 1-3로 벌어지면서 김서현의 악몽은 계속되는 듯했다. 그나마 김서현은 오스틴, 김현수를 외야 뜬공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마쳤다.
뒤이어 마운드에 오른 LG 마무리 유영찬도 불운 속에 뼈아픈 시련을 겪었다. 8회말 1사 1, 2루에서 송승기를 구원해 등판한 유영찬은 문현빈에게 바깥쪽 낮게 포크볼을 잘 던져 빗맞은 타구를 유도해냈다. 그러나 깊숙하게 수비하던 좌익수 김현수의 슬라이딩에도 타구가 잡히지 않아 1타점 적시타가 됐다. 그래도 유영찬은 4번 타자 노시환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2사 1, 2루에서 유영찬은 채은성을 상대하면서 제구가 흔들렸다. 슬라이더 4개 중 3개가 바깥쪽으로 빠졌고, 1개는 높아 스트레이트 볼넷이 됐다. 2사 만루에 몰린 유영찬은 대타로 나선 좌타자 황영묵에게도 1구 포크볼이 낮았고, 한복판 직구 이후 3개의 직구는 힘이 들어간 듯 높아지면서 통한의 밀어내기 동점으로 연결됐다.
유영찬과 LG에게는 설상가상으로 심우준에게 몸쪽으로 잘 붙인 시속 151km 직구가 적시타로 연결됐다. 방망이가 부러지면서 먹힌 타구가 느리게 3루수 키를 살짝 넘는 2타점 2루타가 됐다. 유영찬은 강판했고, 후속 김영우가 최재훈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면서 유영찬의 자책점이 4개로 늘었다.
채은성, 황영묵을 상대하면서 흔들린 유영찬의 제구가 사실상 이날의 승부처였다. 경기 후 LG 염경엽 감독은 "유영찬이 막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나빴으니 아쉽다"고 입맛을 다시면서도 면서도 "유영찬의 멘털이 흔들렸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감쌌다.
반면 김서현은 9회를 그래도 잘 막으면서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문보경에게 우전 안타, 박동원을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냈지만 문성주를 병살타로 잡아내며 1⅔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승리가 확정되자 김서현은 더그아웃에서 진한 눈물을 쏟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김서현은 "SSG와 경기부터 자신감이 떨어져 많이 힘들었는데 오랜만에 팀 승리를 지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구 코치 조언에 대해서는 "경기 전에는 준비를 하느라 구대성 선배님을 만나지 못했지만 나중에 뵙도록 하겠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한미일 야구를 호령했던 '대성 불패'의 조언. 마무리 투수의 진리와도 같은 충고를 어느 팀 클로저가 잘 실천해내느냐가 이번 KS의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