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년 만의 사상 최악으로 치달았던 강릉 가뭄이 때 아닌 폭우로 해갈된 지 한 달, '수자원 리스크' 해소를 위한 범정부와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기상학자들은 이상 기후로 자연 재난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뉴 노멀(New Normal)'의 시대를 맞아, 기상 예측을 기반으로 한 대응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물 절약 생활화 해야" 발 벗고 나선 주민들
강릉 초당동에 사는 정모(57)씨는 가뭄 이후 물 절약을 위해 변기 속에 벽돌을 넣었다. 제한급수를 겪으며 물의 소중함을 실감한 뒤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을 시작했다.
그는 화장실 한 켠에 있었던 양치 컵도 매일 사용하고, 설거지통도 사용해 절수 실천에 나서면서 보람도 느끼고있다.
정씨는 "가뭄을 겪으면서 물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됐고,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저라도 작은 실천을 해보자는 마음에 시작하게 됐다"며 "물을 아끼면 수도요금도 적게 나오니 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임당동의 한 음식점은 가뭄 당시 손님에게 정수 대신 500㎖ 생수를 제공하며 절수 캠페인에 동참했다.
가뭄이 끝난 지금도 변기 탱크에 벽돌을 넣어 수도 사용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고, 계량기 사용량도 가뭄 당시 수준의 50%를 유지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역 상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생수 제공, 절수 장치 유지 등 '물 절약 문화'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고성민 강릉시청년소상공인연합회장은 "물 부족은 강릉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기후 재난"이라며 "절수 문화가 생활화되면 또 다른 위기에도 더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강릉 없도록" 기후 대응 전방위 움직임
가뭄 사태를 계기로 범정부 차원의 수자원 대책도 속도를 내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8일 '국민생활안전 긴급대응 연구' 과제로 해수담수화 기술개발 사업을 선정했다. 단일 수자원 의존도가 높아 피해가 커졌던 강릉 사례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체 수자원 확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해수담수화 기술개발·실증 사업은 강릉시의 제안에 따라 추진됐으며, 정부는 해수담수화 파일럿 플랜트(시험용 설비)를 설계·실증하고 경제성 분석을 통해 가뭄 해결의 새로운 가능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상수도 노후화 문제 해결에도 속도가 붙었다.
강릉시는 지난달 25일 환경부 국·도비 보조사업인 '노후 상수도관 정비사업'에 선정돼 2031년까지 두산동, 노암동, 포남동 일대 노후관 37.4㎞를 교체한다. 총 사업비는 384억 원이다.
환경부 2023년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강릉의 상수도 누수율은 23.4%로, 전국 평균(9.9%)의 세 배 수준이다. 강원 전체 누수율도 21.7%에 달한다.
강릉시는 화장실 양변기 1회 사용량을 기존 12리터에서 3.5리터로 줄이는 '절수 시설' 보급 예산도 내년까지 두 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이상 기후에 대응하기 위한 국회와 지자체, 지방의회 차원의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강원 영동지역 가뭄·물부족 사태 해결 특별위원회'를 출범한 더불어민주당은 반복되는 가뭄 피해와 지역 상수도 인프라 부족 문제를 분석하고 내년도 정부예산안에 장·단기 수자원 확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강원도의회 역시 지난 22일 '강원특별자치도 물 관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고질적인 물 부족 해소를 위한 지역 맞춤형 정책을 준비 중이다. 특위는 다음 달 18일 강릉과학산업진흥원에서 전문가·유관기관이 참여하는 '2025 동해안지역 지속가능한 물 관리 혁신 심포지엄'을 연다.
동해안 6개 시·군 단체장으로 구성된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안권 상생발전협의회도 국가 차원의 통합 물 관리와 중장기 대책 마련, 국비 지원을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섰다.
"기후 예측은 돈, 물은 경제" 사회적 합의 선행돼야
전문가들은 이번 강릉 가뭄 사태를 '기후 변화'의 경고이자 예고편이라며 기후 불확실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노력이 더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지훈 세종대 환경융합공학과 교수는 "보통 여름이면 폭우와 홍수를 걱정했지만 이제는 폭염이 강해지면 한여름에도 가뭄이 올 수 있는 위험을 함께 대비해야 하는 '뉴 노멀' 시대가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이번 가뭄은 교과서 속 위험이 아닌 사회, 경제에 대한 직접적 충격이었다"며 "물 관리와 기후 관리는 결국 국가 경제 관리"라고 강조했다.
"기후 예측엔 불확실성이 포함돼 있지만 그조차 정보로 활용해야 한다"며 "사고 후 대응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가 어느 수준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얼마의 비용을 감수할 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희정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도 "기후변화 시대의 물 안보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상생 효과를 내야 한다"며 "지역·산업별 이해관계를 넘어선 범국가적 관점에서의 기후 변화와 물 순환을 연구할 국책연구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또한 이러한 물 안보 정책은 지역이나 산업 등 모든 이해관계를 아우르는 큰 틀을 그리는 작업이 돼야 하는 만큼 대통령 직속부서 신설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