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마약도구 된 전자담배…국과수 의뢰 압수품 10% 육박

국내 마약유통조직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실제로 올라온 내용. 800명 이상이 모인 이 방에서는 컵커피를 이용해 마약을 싸게 흡입하는 방법이 공유되는가 하면, 특정 전자담배 제품을 투약 기기로 적극 권장하는 글도 올라왔다. 민주당 장종태 의원실 제공
#1. 국내 마약판매상이 운영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공유된 내용
① 편의점에서 '○○○○룰스'를 산다.
② 용기 뚜껑 아래 A부분을 뚫고 안의 커피를 다 흘려보낸다.
③ 이쑤시개를 이용해 A부분에 구멍을 여러 번 내준다.
④ A에 빨대를 꽂고, 빨대와 은박지 틈이 최대한 밀폐되게 테이프로 감싼다.
⑤ '떨'(마약을 뜻하는 은어)을 갈아서 올려놓고 태워서 흡연한다.

#2.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
"워낙 기상천외한 방법이 많아서요. 컵커피도 그리 놀라운 얘기는 아니에요. 말하자면 그 짓을 안 해도 되게끔, (투약이) 편하게 나온 게 전자담배인 거죠."

2030세대의 신종마약 남용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미성년자를 향한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전자담배가 주요 투약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 당국은 특히 10대가 전자담배로 합성대마 등을 소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당국이 현장에서 확보해 행정안전부 산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정을 맡긴 마약류 중 '전자담배 형태'가 차지하는 비중은 연간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과수에서 실제 감정을 진행한 압수품 중 전자담배 항목(전자담배 및 충진용 액체)의 비율이 개별 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4일 CBS노컷뉴스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실을 통해 국과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과수가 감정한 마약류 압수품은 지난 2020년 2만 3500여 종에서 2021년 2만 7875종, 2022년 3만 976종, 2023년 4만 8172종, 2024년 5만 4046종으로 매해 느는 추세다.
 

전년도 대비 증감률을 보면 △2021년 18.4%↑ △2022년 11.1%↑ △2023년 55.5%↑ △2024년 12.2%↑ 등 계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들어 경찰 등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마약류 압수품은 1~6월 기준 3만 6307종에 이른다. 하반기 미집계분(分)이 추가되면, 지난해를 훌쩍 웃돌 전망이다.
 
CBS노컷뉴스는 국과수 전체 마약 감정종수(연 12만여 종)의 절반에 가까운 압수품 중에서 전자담배 관련 종류수 및 비율을 따져봤다.
 
2022년 각각 1천 종을 밑돌았던 전자담배와 액체(941종·895종, 도합 1836종)는 2023년 전자담배 2252종·액체 1447종(도합 3699종)으로 급증했다. 이후로도 2024년 전자담배 2061종·액체 3085종(도합 5146종)으로 늘었다. 올해는 6월 말 기준 전자담배 850종·액체 1412종 등 2262종이 국과수를 거쳤다.

이를 연도별 마약류 압수품 대비 비율로 계산하면 2022년 5.93%→2023년 7.68%→2024년 9.52%에 달한다. 올해는 상반기 기준으로만 6.23%다.
 

물론 액체류의 경우, 경구·주사로 투약되기도 한다. 다만 이번 통계는 전자담배를 경유한 마약류 성분 중 액체성 압수품 위주로 취합한 결과다. 국과수가 접수한 마약류를 건수가 아닌 종(種) 단위로 집계하는 이유는 단일 사건에서도 다종·중복 투약을 하는 사례가 일반화됐기 때문이다.
 
국과수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가령 소변 검사를 할 때 '대마도, 필로폰도 양성 여부를 검사해 달라'는 등의 의뢰가 있으면 1건에 대해서도 서너 종의 실험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전자담배에서도 여러 가지가 검출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통계 내기가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액상형 전자담배가 '잇템'(꼭 있어야 하거나 갖고 싶어 하는 아이템)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관련기사: [단독]청소년에 '香며든' 전담…OTT 흡연 노출률은 94%). 현행법상 '연초의 잎'이 아닌 부분이나 합성니코틴을 활용한 제품은 '담배'에 포함되지 않는다. 담배사업법 개정이 목전이지만, 아직은 제재 밖이다.

무심코 손 댄 전자담배는 자칫 연초와 약물 중독을 부를 수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전자담배를 쓰는 청소년은 일반담배 흡연자가 될 확률이 3.5배 높다. 해외 선례를 보면, 마약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일 지경이다.
 
올 7월 홍콩에서는 17세 청소년이 '우주 오일'로 불리는 메토미데이트를 전자담배로 흡입하다가 숨진 일이 있었다. 미국도 전자담배로 대마를 흡입한 고등학생 비율이 급증했다는 통계(2017~2020) 외 액상형 전자담배가 폐 손상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국과수는 '마약류 감정 백서(2024)'에서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전자담배의 잠재적 유해성과 니코틴 중독 위험에 경고를 보내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판매 금지(※전면금지한 국가는 34개국)부터 광고 규제까지 다양한 조치를 시행 중"이라고 짚었다. 전자담배가 신종약물 투약의 고리로 각광받는 상황을 두고, 공중보건 관점의 '통합적 접근'과 불법약물 남용 방지를 위한 법집행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대전 서구갑)이 21일 식약처를 대상으로 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향(加香) 제품으로 제조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들어보이고 있다. 의원실 제공

장종태 의원은 "전자담배 기기에 마약을 넣어 투약하는 신종 투약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전자담배 기기로 마약을 흡입할 경우,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적발이 어렵다"고 우려를 표했다. 텔레그램 등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구매가 손쉬운 점 또한 청소년의 중독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외 사례를 참고해 마약 접근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온라인 유통망에 대한 집중 단속과 함께 관계부처의 철저한 예방교육·관리감독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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