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정보 근절법, 누가 써먹을지 너무 뻔해"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개혁특별위원회 허위 조작정보 근절안 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허위 조작 정보를 보도·유포하는 언론사나 유튜버 등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게 하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의 뼈대를 공개하자, 언론단체와 학계에선 당장 우려가 나왔다.

허위조작 정보를 뿌리 뽑자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권력자나 사이비 단체 등의 악성 소송이 더욱 횡행해 권력감시 기능이나 내부 고발 등의 공익적 목적이 크게 훼손될 수 있어서다.

이 법의 주무부처가 될 방송통신미디어위원회(방미통위)는 정확한 법안의 초안이 나와야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내용은?  

민주당이 지난 20일 발표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다. 정보 전달을 업으로 하는 '게재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언론과 유튜버 등이 규제 대상이 될 전망이다. 게재자가 악의적으로 불법 또는 허위조작 정보를 보도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를 배상(배액)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우선 제44조의 10에 '손해배상'이라는 일반 조항을 신설했다. 불법 정보와 허위조작 정보를 고의 또는 과실로 유통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고, 손해액을 입증하기 어려운 손해에 대해선 법원에 판단에 따라 5천만원까지 별도 손해액을 인정하도록 했다.

제44조의 10의 ③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은 이 법안의 최대 특징이다. 정보 전달을 업으로 하는 게재자(정보게재 수, 조회수나 구독자 수가 일정 기준 이상 충족하는 언론사나 유튜버 등)가 악의적으로 불법·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할 경우 최대 5배까지 징벌적 배상을 가능하도록 했다.

징벌적 배액 배상 관련 '악의' 추정 요건은 8가지다. △사실의 근거로 인용한 자료를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도 불구하고 제출하지 않는 경우 △불법·허위조작 정보로 판명돼 형사처벌 또는 손해배상이 이뤄졌던 내용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을 유통한 경우 △사실 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 피해자의 입장이나 의견을 확인하지 않은 경우 △고의와 타인을 해할 의도가 있었음이 인정되는 경우 등이다.

방미통위의 권한도 강화된다.  불법·허위조작 정보를 악의적·반복적으로 유통한 사실이 법원에 의해 확인될 경우 방미통위가 최대 10억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허위 정보를 유통하는 유튜버 등의 '슈퍼챗'은 몰수·추징 처분할 수 있도록 하고, 정보통신망을 통해 유통된 불법·허위조작 정보의 최초 발화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배상책임을 묻도록 했다.

출처=지난 9월 8일 국회에서 개최된 정보통신망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 자료


언론단체·학계, '권력 감시 위축' 불 보듯 뻔해

언론단체나 학계는 허위조작 정보를 뿌리 뽑자는 데는 공감하지만 법안 내용의 자의성과 모호성 등으로 인해 '권력 감시 위축'이 명약관화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위조작 정보의 개념 '허위정보 중 유통될 경우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에서 타인을 해한다는 개념 자체부터 너무 넓어서 자의적으로 남용될 우려가 크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언론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를 해할 목적으로 기사를 썼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나마 현재 민사 소송에선 '해할 목적'으로 판단되는 판례들이 있어 법원이 엄격한 요건으로 재판을 하는데, 특위의 44조의 7 조항이 도입되면 남을 해할 목적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사법 절차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행정 심의 대상이 되면 자의적 판단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언론을 포함한 표현 행위에만 징벌적 손배를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참여연대, 미디어기독연대 등은 공동성명을 통해 "악행은 징벌손배책임을 감수하지 않고 저지르면서도 그 악행을 비판하는 자는 징벌손배책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목표인 비판과 감시가 약화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특위가 마련한 '입틀막 소송 방지' 특칙도 대안으로는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현재도 권력 감시 및 비판 기사에 대해선 입을 틀어막기 위한 소송이 이어진다. 

언론단체 등은 이에 대해 '공인을 배제하는 방안'을 넣어 달라고 했지만, 특위는 "일률적 '공인 배제' 방식은 공인 대상 악의적 허위조작 정보의 심각성과 위헌 시비 등을 고려할 때 명분과 합리성에 의문"이라는 입장을 냈다. 대신 입틀막 소송을 확인하는 종국판결을 구하는 특칙을 마련했다.

언론학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도 우리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 명예훼손 조항이 있는 데다 모두 형사처벌로 얼마든지 비판하는 언론을 괴롭힐 수 있다"면서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중 처벌로 해놓은 것인데 '양날의 칼'일 수 있다. 이 개정안으로 가짜뉴스나 허위조작 정보가 정말로 근절될 거라고 생각하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구제 받을 대상을 생각해보면 누구를 위한 법인지 뻔히 보인다"면서 "정치인과 특수 관계인, 사이비 단체 등이 이 법안을 조직적이고 악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미통위 측은 법안 발의 후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방미통위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초안과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법안이 발의돼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본 뒤 관련 부처와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종합 검토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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