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스럽고 사랑스러운 전지적 견(犬)시점 호러 '굿 보이'[최영주의 영화관]

외화 '굿 보이' 스틸컷. 찬란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 전지적 '반려인' 시점 주의
 
미국 작가 조시 빌링스는 "개는 자기 자신보다 당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지구상 유일한 존재"라고 했다.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 두려움에 떨지언정, 개는 인간을 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구하기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전지적 견(犬)시점 영화 '굿 보이'는 호러 장르를 통해 개의 절대적인 사랑을 발견하게 한다.
 
'굿 보이'(감독 벤 레온버그)는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숲속 외딴집에서 인간 친구 토드(셰인 젠슨)를 지키려는 강아지 인디(인디)의 견생일대의 사투를 그린 공포 영화로, 주인공이 사람이 아닌 '개' 인디다.
 
벤 레온버그 감독은 주인공을 사람이 아닌 개로 설정하고, 영화를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주연견(犬)의 시점으로 따라가면서 독특한 호러를 완성했다. 그렇기에 '굿 보이'에서 중요한 건 인간이 아니고, 인간의 시선도 아니다. 카메라는 항상 인디의 시선에 맞춰 낮게 위치해 있다.
 
어딘지 모르게 불길함이 깃든 집, 사람이 죽었고, 누구도 오래 살지 못해 흉가나 다름없는 집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초자연적인 상황 한가운데 놓인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그동안 많이 봐온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 주인공을 인간이 아닌 '개'로 설정하면 익숙한 공포는 색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외화 '굿 보이' 스틸컷. 찬란 제공

개는 사람보다 100만 배 이상 뛰어난 후각으로 수천 가지의 냄새를 식별할 수 있고, 사람이 들을 수 없는 고주파와 저주파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다. 영화는 개의 뛰어난 감각이 보이지 않는 존재조차 감지할 수 있다는 상상력에서 시작했다. 실제로 반려인이라면, 개가 아무것도 없는데 갑자기 허공을 보고 짖는 등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수많은 공포 영화 속에서 개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감지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경고해왔다. 지난 9월 3일 개봉한 '컨저링: 마지막 의식'에서도 스멀 일가가 키우는 개는 유일하게 악령의 존재를 눈치채고 가족들에게 경고한다.
 
'굿 보이'에서도 인디는 인간 친구이자 가족인 토드에게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다. 인디는 그 존재가 두려워 토드에게 경고하지만, 토드는 인디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할아버지의 집으로 온 토드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한다. 건강이 나빠지면서 토드는 인디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인디는 목줄에 매인 채 집 밖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오로지 토드의 안위를 걱정할 뿐이다.
 
외화 '굿 보이' 스틸컷. 찬란 제공

영화는 인디가 공포스러운 무언가를 보고, 경고하고, 어떤 환상을 경험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최대한 간결한 방식으로 끌고 가서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이를 상쇄하는 것 역시도 개 인디다.
 
영화의 결말 역시 '개의 시점'으로 다룬 영화답다. 미스터리한 영화는 명확하게 매듭을 짓지 않고 끝난다. 검은 존재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토드의 할아버지부터 토드까지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지하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소되는 건 없다. 이런 결말로 끝나는 영화가 제법 있지만, '굿 보이'가 이런 결말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개의 시점'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의 시점으로 진행되기에 인간 시점보다는 이야기 전개나 설명이 부족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굿 보이'에서 주요하게 봐야 할 것 중 하나는 TV이고, TV는 어느 정도 설명적인 부분, 다시 말해 인간의 시점을 대체한다.
 
TV에서는 토드의 할아버지부터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준 개의 역사, 보이지 않는 존재가 인간을 위협하는 장면 등 다양한 영상이 나온다. 영상이 나오지 않을 때 역시 브라운관에 어떤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영화 속 이야기와 연결돼 있다.
 
'굿 보이'가 호러임을 명확히 알려주는 장치는 음습하고 불길한 영상과 사운드 디자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굿 보이'에서 가장 큰 공포를 자아내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디의 존재다.
 
외화 '굿 보이' 스틸컷. 찬란 제공

사실 반려인이나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굿 보이'의 최대 공포는 인디가 다치거나 죽지 않을까 하는 걱정일 것이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거나 위험한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장면마다 인디의 안위를 걱정하며 불안하고 공포에 떨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발 인디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인디 죽지 않게 해주세요"라며 기도하거나 "인디! 안돼!"를 마음으로 계속 외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인디에게 완벽하게 몰입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굿 보이'는 근래 가장 두려움을 느끼며 본 호러 영화다.
 
이런 두려움과 공포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다가오는 감정은 '사랑'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을 아무런 조건 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랑해 주고 지켜주는 존재는 인간의 역사에서 늘 함께해 온 '개'일 것이다.
 
영화 속 인디의 시선은 언제나 토드를 향해 있다. 그가 애정을 쏟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인디는 항상 토드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지켜주고자 한다. 마지막까지도 인디는 절대적인 공포 앞에서도 토드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토드의 말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주와도 같은 무한한 사랑을 지닌 갈색 털의 존재 앞에 인간으로서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외화 '굿 보이' 스틸컷. 찬란 제공

이런 과몰입이 가능한 건 바로 인디 역을 연기한 인디 덕분이다. '굿 보이'를 본 관객이라면 최고의 배우이자 최고의 스타가 탄생했다는 의견에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굿 보이'의 주연견(犬) 인디 역의 인디는 최우수 개 연기상 수상견답게 완벽한 연기를 선보인다.
 
눈빛 연기, 눈썹 연기, 꼬리 연기, 뛰는 연기, 울음소리 연기, 동공 연기 등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이 열연을 펼쳤다. 말 그대로 연기에 있어서 천재만재 견(犬)배우다. 반려인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나서는 노바 스코샤 덕 톨링 리트리버 인디를 보는 순간, 빠져들 수밖에 없다. 부디 '굿 보이'가 인디의 데뷔작이자 마지막 작품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벤 레온버그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을 자신의 반려견 인디와 함께했다. '굿 보이'는 감독이 사랑하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진정성이 묻어난다. 전형적인 호러 구조에서 한 가지 독특한 설정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 낸 벤 레온버그 감독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과연 평범하고 익숙한 것들을 어떻게 비틀어낼지, 어떤 다른 것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73분 상영, 10월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외화 '굿 보이' 포스터. 찬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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