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라는 연옥 속 '8번 출구'를 찾는다는 것이란[최영주의 영화관]

외화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외화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8번 출구]
일련번호 : EXIT-8-20251022
등급 : PG-13
설명 : 끝없이 반복되는 지하도 괴담으로, '8번 출구'를 찾지 못하면 영원히 갇히게 된다는 내용. 2023년 출시된 1인칭 3D 워킹 시뮬레이션 게임이 원작으로, 영화는 원작보다 많은 의미와 질문을 던짐.

'8번 출구'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1.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
2.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
3.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
4. 8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
 
지금까지 발견된 이상 현상으로는 ■■ ■■소리, 움직이는 ■■■, 흘러■■■ ■, ■■미 등이 있다.


외화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전 세계 다운로드 190만 회를 돌파한 인기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8번 출구'(감독 카와무라 겐키)는 무한루프의 지하도에 갇혀 8번 출구를 찾아 '헤매는 남자'(니노미야 카즈나리)가 반복되는 통로 속 이상 현상을 찾아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주인공이 놓인 상황을 보여준 후, 게임이 그러한 것처럼 1인칭 핸드헬드 시점 숏으로 시작해 마치 관객들이 주인공 헤매는 남자와 함께 게임 속에 들어온 것처럼 만든다. 주인공의 시점에 동화해 괴담 속 지하도로 진입한 관객들은 시점이 바뀐 후에도 몰입해 주인공과 함께 지하도 속 이상 현상을 찾아가게 된다. 바로 '8번 출구'가 추구하는 포인트다.
 
영화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영화의 제목처럼 '8번 출구'를 찾아서 지하도를 빠져나가야 한다. 규칙을 어기면 숫자 '8'처럼 무한(∞)하게 지하도를 반복해야 한다. 규칙은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 '8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 등 네 가지가 전부다.
 
그러나 이 단순한 '8번 출구'의 무한루프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상황과 감정을 파고드는, 다시 말해 인간의 약한 마음을 건드리는 이상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영화의 주요한 키워드는 '죄책감'이다. 그리고 헤매는 남자의 죄책감을 건드는 건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등장하는 '아기'다.
 
영화 시작, 지하철을 탄 헤매는 남자는 우는 아기를 향해 분노하는 남자를 보고도 모른 척한다. 헤매는 남자뿐 아니라 지하철에 탄 모든 사람이 상황을 외면한다. 여기에 헤어지기로 한 여자 친구의 임신 소식까지 듣게 된 헤매는 남자는 아기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헤매는 남자에게는 아기와 관련한 죄책감을 안은 채 지하도를 헤맨다.
 
외화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지하도 속 이상 현상은 개인과 사회의 상처와 죄책감,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형태를 하고 있다. 헤매는 남자에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임신한 여자 친구와 전화 통화하게 되고, 각각의 신체 부위를 단 쥐들이 어둠 속에서 달려 나오고, 어디선가 피가 뚝뚝 흘러내린다. 마치 '낙태'를 떠올리게끔 말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속죄할 기회와 현실을 마주할 용기를 제공하는 존재는 '어린아이'이다. 사실상 헤매는 남자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이자 최후의 과제인 것이다. 아이를 외면할 것인가 아닌가,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의 위험을 모른척 할 것인가 도울 것인가 등 이상 현상과 별개로 어린아이는 헤매는 남자에게 시험을 제공한다.
 
동시에 이는 시험이자 구원이 된다. 그리고 구원을 통해 시험을 통과한 헤매는 남자가 가장 먼저 하는 건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망설임 없이 병원으로 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우는 아기를 안은 여성을 다그치는 남성에게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단순한 게임에 더해진 흥미로운 구조는 마치 단테의 '신곡'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속에서 지하도를 무한 반복하는 여성은 지하도가 마치 '지옥'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7번 출구까지 반복되는 무한 지하도와 이상 현상, 8번 출구를 찾아야만 나갈 수 있는 구조는 '신곡' 속 연옥을 닮았다.
 
헤매는 남자는 지하도 안에서 출구를 찾을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죄책감을 마주한다. 그러면서 죄책감에 둘러싸여 무한하게 반복되는 지하도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이에 대해 속죄하고 8번 출구를 통해 나갈 것인가는 헤매는 남자에게 달렸다. 헤매는 남자가 8번 출구를 찾았다면 그건 그가 용기를 냈고, 속죄할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일 테다.
 
이처럼 영화에서 또 다른 중요한 키워드는 '선택'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4가지 규칙은 일종의 '선택'의 문제다. 그렇기에 헤매는 남자는 지하도를 반복하며 계속 선택을 강요받고, 갈림길 속에서 선택해야 한다.
 
외화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인생은 B(Birth·탄생) D(Death·죽음) C(Choice·선택)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기와 출구는 탄생이고, 낙태 혹은 지하도에 갇히는 건 일종의 죽음이다. 그사이 무수한 선택은 탄생과 죽음, 시작과 끝을 가르고, 그것이 삶이다. 그런 지점에서 '8번 출구'는 선택에 대한 영화이고, 이것은 곧 삶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했지만, '8번 출구'에는 일본 사회라는 집단의 상처 혹은 트라우마를 건드는 듯한 장면도 보인다. 마치 쓰나미처럼 지하도로 밀려오는 흙탕물, 재앙이 지나간 자리 남겨진 삶의 흔적들은 지금까지도 일본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동일본 대지진을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상처로 남은 대재앙을 잊지 않고 있으며, 대재앙 앞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묻는 것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내용 말고도 '8번 출구'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뒀다. 인물들의 행동과 말, 선택과 이상 현상을 관찰하고 어떤 의미를 찾아낼 것인가 그리고 이를 통해 '8번 출구'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다. 그것이 '8번 출구'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영화적인 재미이자 선물이다. 엔딩까지도 전형적인 괴담처럼 마무리하며 장르와 주제를 놓치지 않는다.
 
외화 '8번 출구' 스틸컷. NEW 제공

이 단조로워 보이는 구조의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니노미야 카즈나리는 헤매는 남자로 나와 죄책감과 후회, 괴로움과 선택을 오가며 세심한 연기를 선보였다. 여기에 똑같은 웃는 얼굴, 똑같은 걸음걸이로 등장하는 걷는 남자를 연기한 코치 야마토는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얼굴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8번 출구'를 찾을 때까지 무한 반복한다는 단순한 게임에 무한한 의미를 담아낸 건 카와무라 겐키 감독의 역량이다. 단순함 속에 복잡함을 더하고, 복잡함 속에서 단순한 의미를 발견하는 재미를 더하며 원작 게임을 보다 풍부한 형태의 '영화'로 완성했다.
 
95분 상영, 10월 22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외화 '8번 출구' 포스터.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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