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까지 살던 옛집은 김포공항 근처 빌라촌이다.
비행기가 하도 낮게 날아 비행기 배꼽 주름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라는 우스개 소리도 듣는 동네다.
그렇게 비행기가 집을 스치듯 날아갈 때면 대화가 불가능했다.
소음에 더해 진동도 심해서 공중파 TV 화면은 출렁거렸고 나무 창문도 덜덜 떨어댔다.
인천공항이 없던 시절이니 수많은 비행기가 이렇게 소음과 진동을 뿌리며 김포공항을 드나들었다.
그래도 별 불편없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그나마 밤에는 비행기가 끊기면서 편안하게 잠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그 옛집에 주말 며칠을 머물렀다.
비행기는 제 배꼽을 보이며 여전히 낮게 날고 있었지만 '강적'은 따로 있었다.
배달 오토바이들이다.
묵직한 비행기 소음과 달리 2행정 엔진 오토바이의 주파수 높은 소음은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댔다.
배달 오토바이 소음은 밤낮도 없었다.
토요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지나간 배달 오토바이는 57대로, 거의 1분에 한 대 꼴로 창문을 스치듯 내달렸다.
잠자리에 들 자정 무렵에도 한 시간을 헤아리니 3분에 한 대 꼴이었다.
배달 오토바이의 소음은 주말 새벽 3시를 넘어서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골목과 골목이 서로 연걸된 빌라촌의 특성상 배달 오토바이의 왕래가 아파트보다 훨씬 빈번하고 그만큼 소음에 많이 노출되는 듯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국내 배달앱 결제자는 2351만명으로, 국민 절반에 육박한다. 월 결제액도 2조원을 넘어서 앤데믹 이후 위축세에서 벗어나 다시 성장하고 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배달앱 이용자의 68% 정도가 일주일에 한번 이상 배달앱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제 어디서든 신속 배달'을 내세운 국내 배달앱 시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K-배달' 'K딜리버리' 등으로 부르며 치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내 배달앱 산업이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1회용 배달 용기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는 소음 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배달앱 플랫폼 회사들과 소상공인, 배달 기사, 배달앱 이용자들은 수익과 비용 챙기기에 급급한게 현실이다. 중개수수료와 배달비, 할인 프로모션 비용, 음식 이중 가격 등 배달앱 이해관계자를 둘러싼 논란은 온통 수익과 비용에 관한 것뿐이다.
1회용 플라스틱과 소음 공해 등 사회적으로 전가되는 문제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오랜만에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지인은 중국이 너무 조용해졌다고 전했다. 예전에는 시끄럽게 골목길을 누비던 오토바이들이 모두 전기 오토바이로 바뀌어 중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해졌다고 놀라워했다.
K-배달이 (비용은 물론) 친환경을 앞세운 'C-배달'에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