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혐오를 먹고사는 정치

이념, 지역, 세대…혐오로 점철된 현대정치사
혐중 시위에 올라탄 국민의힘

윤창원 기자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혐오로 점철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 대립이 첨예하던 때 이른바 '빨갱이'나 '꼴통보수'라는 표현은 단순한 진보-보수의 차원을 넘어 혐오와 분열의 상징으로 쓰였다. 망국적 지역갈등도 정치권이 조장한 혐오정치의 부산물이며 지역주의는 기득권 정치까지 잉태했다.

근래 들어서는 '이대남', '이대녀' 등 갈라치기 심리에 정치세력이 편승하는 선거전략도 등장했다. 정치권이 조장하는 혐오와 차별은 세대별·성별 다양성과 유동성을 무시한 채 유권자들을 집단으로 낙인찍는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윤석열은 대장동 수사를 계기로 반 이재명 정서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선거구도를 단순화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거듭된 실정과 권력형 비리로 국민적 불신이 임계치에 다다르자 내란사태를 일으켜 몰락을 재촉했다.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내겠다.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 지난해 12월 3일 밤을 뒤흔든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문은 극단적 혐오의 언어로 가득했다. 12월 12일 대국민담화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중국산 태양광 패널이 전국의 삼림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혐중을 선동했다.
 

'혐중'을 영점조준한 국민의힘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요즘 국민의힘이 쏟아붓는 화력은 '혐중'에 영점조준이 되어 있다. 최근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더니 17일엔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도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공개 요구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무비자로 입국한 중국인 3명이 귀금속을 훔쳤다가 공항에서 체포된 사건 등을 예로 들며 무비자 입국 제도를 비판했고, 김은혜 원내 정책수석부대표는 지난 9년간 중국인이 타간 건강보험료가 5조원이라고 주장하며 상호주의를 내세웠다.
 
곰곰이 따져보면 가벼이 볼 사안이 결코 아니다. 외국인에 의한 절도는 무비자 입국이 아니더라도 흔히 발생했던 사건이다. 중국인 3대 쇼핑 방지법은 내용과는 별개로 특정국가만을 콕집어 당론으로 추진하는 것이어서 평등에 문제가 있고 중국의 보복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중국인 무비자 단체관광객들 입국. 연합뉴스

정부가 관광을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한시적으로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자 명동과 대림동 등에서 중국인과 중국인 관광객을 향한 극우세력의 근거없는 분노 표출이 격화되고 있다고 한다. 극우세력의 이른바 '윤 어게인' 시위는 특검 수사를 통해 윤석열의 내란 혐의가 점차 뚜렷해지자 최근 혐중시위로 방향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 지도부가 대놓고 반중 정서를 조장하는 건 공당으로서 지극히 부적절하다. 이런 태도가 국익차원에서 자해행위임을 모를 리 없다고 본다면 정치세력 결집을 노린 혐오정치의 새로운 버전임에 틀림없다. 당내에서도 '정치적 반짝 효과를 노렸겠지만 대중국 무역업체를 생각하면 위험천만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이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노골적 혐중 집회와 외국인 혐오 발언이 이어진다면 이는 외교적 결례일 뿐더러 국익에도 해롭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해외에서 겪은 설움을 기억한다면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외국인 혐오를 정치에 이용하는 건 반인륜적이고 반역사적이다.
 

누가 혐오의 정치를 원하는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 단체가 19일 오후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반중 집회를 벌이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명동거리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공자는 죽을 때까지 행해야 할 덕목을 제자가 묻자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답하지 않았나.
 
혐오로 정치적 이득을 보겠다는 장난은 이제 통할 수 없는 시대다. 실력이나 국정철학 없이 지역갈등, 세대갈등, 네거티브에 기댄 집권은 불행한 결말을 맞았던 최근의 사례가 입증한다.
 
혐오의 정치가 추구하는 건 진영의 정치이고, 진영으로 묶이면 개개의 사람이 사라지므로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질 것이다. 누가 혐오의 정치를 원하는 지 국민들이 끊임없이 감시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에 공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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