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호러로 만든 '웨폰'은 왜 무서울까[최영주의 영화관]

외화 '웨폰'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호러 영화가 재밌는 이유는 그것이 현실과의 접점을 가지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진짜 공포는 때로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다가오게 된다. 잭 크레거 감독의 '웨폰'이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볼 때도 무섭지만, 보고 난 후 현실에서 곱씹을 때 그 공포가 더욱 강력하게 다가온다.
 
평범한 수요일, 어느 마을 학교의 같은 반 학생 17명이 등교하지 않는다. 그날 새벽 2시 17분, 잠에서 깬 아이들이 어둠 속으로 달려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아이는 입을 다물고, 사라진 아이들을 찾으려는 이들은 악몽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데뷔작 '바바리안'으로 아리 에스터, 조던 필 등과 함께 호러 거장의 계보를 이어갈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잭 크레거 감독이 이번엔 집단 아동 실종이라는 소재의 미스터리 호러 '웨폰'으로 돌아왔다.
 
보통의 영화에서 아이들의 실종이 핵심이라면, '웨폰'은 실종 이후의 감정인 '상실'이 중심에 놓여 있는 영화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자신의 아이, 친구, 부모, 학생, 이웃이 사라졌을 때 남겨진 사람들이 가지는 여러 가지 감정과 모습들, 즉 상실의 심연이 '웨폰'의 뼈대다.
 
외화 '웨폰'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그렇기에 영화는 아이들이 사라진 이후부터 시작한다. 영화 속 한 학급에서 단 한 명의 학생을 제외한 17명의 학생이 새벽 2시 17분, 집을 나선 뒤 사라진다. 사라진 아이들의 공통점은 시곗바늘이 2시와 17분을 가리키는 듯이 팔을 벌리고 뛰어나갔다는 점이다.
 
마치 비행기처럼, 혹은 폭격기처럼 보이는 자세는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린 사진 '전쟁의 공포', 일명 '네이팜탄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까지 갔을 때 '웨폰'은 공포이자 슬픔을 상징하는 단어가 된다.
 
17명의 아이가 갑작스럽게 증발하면서 부모는 깊은 상실의 고통 속에 머무르고, 담임인 저스틴(줄리아 가너) 역시 고통받는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조금 다르게 상실을 다룬다. '상실'은 단순히 고통과 슬픔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영화에는 고통과 아픔을 아는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는 모습도 나온다.

집단 아동 실종이라는 전무후무한 사건 앞에 저스틴은 실종 학생 학부모의 비난과 의심이 대상이 된다. 길을 잃은 분노는 저스틴을 향한 여러 형태의 폭력으로 드러난다.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라는 누명을 쓴 채 제대로 슬퍼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다.
 
외화 '웨폰'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실종 학생의 학부모인 아처(조슈 브롤린)는 저스틴을 의심한다. 한 학급 아이들의 실종에 저스틴이 배후일 거라는 생각을 놓지 못한다. 아들이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는 희망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마음은 분노가 되고 엉뚱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이 역시 상실의 여러 모습 중 하나다.
 
그러나 '웨폰'은 누군가를 힐난하거나 비난하려 하기보다는 누군가를 물리적·정신적으로 잃는다는 것이 개인과 집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감정들이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상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웨폰'은 '관점'을 다루며 상실 후의 겪는 복잡한 내·외면의 여러 문제를 향해 다양하게 접근해 나간다. 이를 위해 주요 인물들의 시점을 나눠 보여준다. 공통의 사건임에도 어떻게 다르게 바라보고 다른 것을 느끼는지 말이다.
 
독특한 지점은 사람을 잃은 것에 관해 이야기는 작품이 중독자들의 시선으로 실종 사건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중독은 어떤 매개체에 의존하고, 그 매개체가 없으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만든다. 때때로 자유의지를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는 '기생충'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웨폰'에서 스치듯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기생충'이다. 일부 기생충이 숙주의 몸을 차지하고 움직이게 한다는 설명이 저스틴의 입과 TV를 통해 나온다. 영화에는 술 또는 마약 중독이든 주술이든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다양한 방식이 등장한다.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거나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없는 여러 사람의 모습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상실'이다.
 
외화 '웨폰'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상실한 사람과 중독자들의 시선이 공통적으로 향하는 곳에 있는 건 알렉스(캐리 크리스토퍼)스다. 알렉스는 상실과 중독, 자유의지 등 영화를 이루는 모든 주요한 키워드와 연결된 인물이다. 주술에 중독돼 자유의지를 잃으며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게 된 부모, 그로 인해 보호받아야 할 어린아이가 보호하게 되는 모습은 '웨폰'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다.

결국 누군가의 상실은 어떻게 분노, 고통, 아픔, 폭력을 낳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다른 이들을 오염시키고 물들이고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드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각각의 다른 것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돼 있다. 결과적으로는 영화의 가장 큰 키워드인 '상실' 아래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와 시선이 얽히고설키며 '웨폰'으로 완성된 것이다.
 
상실은 하나의 '웨폰', 즉 무기이다. 무기는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슬프게 하는 것들, 누군가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말들, 누군가를 중독되게 만드는 모든 것들, 자유의지를 잃게 하는 것들, 보호받아야 할 아이를 보호자로 만드는 것들, 폭력이 폭력을 낳고 상실이 또 다른 상실을 만드는 악순환,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웨폰'이다.
 
이를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식으로 공포와 유머를 섞어 보여주는 엔딩은 관객들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자 마지막 공포일 것이다. 상실과 상실이 낳은 것들을 관객들은 과연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볼지 묻는 것이니 말이다.
 
외화 '웨폰' 스틸컷.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하나의 사건, 여러 시선과 다른 이야기와 감정들이 뒤엉키는 속에서도 영화를 하나의 메시지로 향하게 만드는 건 배우들의 명연기와 앙상블이다. 줄리아 가너, 조슈 브롤린을 비롯해 알렉스 역의 캐리 크리스토퍼까지 누구 하나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이며 메이브룩의 기묘한 실종 사건으로 빠져들게 한다.
 
'바바리안'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잭 크레거 감독이 두 번째로 선보인 장편 '웨폰'은 음울하고 스산하면서도 초현실적이고, 때로는 어두운 유머까지 갖추며 사람들을 무섭게 만든다.
 
호러 영화가 매니악하면서도 인기 있는 장르인 이유는 현실과의 접점 때문일 것이다. 현실의 공포는 영화적인 방식을 통해 호러로 재탄생한다. 그런 점에서 잭 크래거는 영화관 안에서도, 그리고 영화관을 나와 마주한 현실에서도 충분히 무서운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128분 상영, 10월 1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외화 '웨폰'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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