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국가 중 베트남과 라오스에 이어 인도네시아가 북한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수기오노 외무상 등 인도네시아 대표단이 지난 10일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노동당 창립 80주년 기념행사에 참가한 것이다.
북한은 이번 노동당 창립 80주년 행사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아세안 국가들에 대해서도 각별하게 배려를 했다.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경우 9일 경축대회와 10일 열병식에서 모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바로 왼쪽 좌석에 자리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에 앞서는 의전 상의 배려가 주어진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당 창립 기념행사를 계기로 10일 현재 4개국의 최고위급 지도자와 회담 또는 접견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과 회담을 시작으로 9일 또 럼 베트남 서기장과의 정상회담, 같은 날 리창 중국 총리 접견, 10일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접견하는 등 활발한 대면 외교를 이어갔다.
이들 4개국 외에도 니카라과, 멕시코, 적도기니, 브라질, 이란,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등 총 11개국이 이번 기념행사를 계기로 북한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 이들 국가 대표들도 선별적으로 접견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초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참가해 다자외교 무대에 처음 데뷔하더니 한 달 뒤에는 다자외교 무대를 북한 평양에 만들어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고립'과 '은둔'의 이미지를 벗고 국제무대에 다시 등장한 데는 핵 보유를 토대로 한 안보적 자신감과 함께 미중 대립의 격화 등 국제정세의 변화도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러 넘어 아세안까지 끌어들여 핵 열병식 참관시켜
중국 총리의 북한 방문은 16년만이고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방북은 18년만이다. 라오스 국가주석의 방북 역시 14년만이고 인도네시아 외교부장관의 북한 방문은 12년만이다.
이 같은 역대 급의 방문 재개가 가능했던 것은 미중의 대결로 만들어지는 외교 공간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파고든 결과로 해석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아세안 국가들까지 평양으로 불러들여 "최강의 핵전략무기체계"라고 하는 '화성 20형' ICBM 등 각종 첨단 무기를 선보인 열병식을 참관하도록 한 것 자체가 북한 외교의 성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경축대회 연설에서 북한의 "국제적 권위는 날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자평한 것도 이런 성과와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앞으로 이처럼 핵 무력을 유지·강화하면서도 미국과 일정하게 거리가 있는 국가들을 적극 공략해 정상국가 이미지를 확대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열병식 연설에서 지속적인 핵 국방력 강화 방침을 강조하며 "부정의와 패권을 반대하고 정의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진보적 인류의 공동투쟁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이른바 "부정의와 패권"의 미국 및 동맹 세력과 "진보적 인류"의 반미 진영 사이의 공동투쟁을 상정해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등에 업고 다극화 진영을 상대로 핵 보유를 묵인하도록 하는 외교를 이어나갈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미중정상회담과 관계없이 APEC에 갈 것"
관심은 김 위원장이 지난 달 중국 전승절 천안문 망루 외교와 이번 평양 열병식 외교에서 다진 외교적·안보적 자신감을 토대로 앞으로 북미 대화로까지 나가느냐 여부이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하면서도 직접적인 비난이나 압박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런 수위조절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김 위원장을 향해 지속적인 유화 메시지를 발신해온 데다 이달 말 경주 APEC을 계기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외교적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달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친분을 확인하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대화 가능성에 여지를 두기도 했다.
이에 따라 경주 APEC이 점점 다가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김 위원장에게 메시지를 보낼지, 보낸다면 어떤 메시지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반발해 중국에 대해 100% 관세 추가 부과 방침을 밝히며 APEC 계기 미중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내비치면서도 "그것(미중정상회담)과 상관없이 그곳에 갈 것"이라고 밝히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