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71)가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작가는 절망 속에서도 인간 존재를 응시하는 묵시록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현지 시간) "묵시록적 공포의 한가운데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운 강렬하고도 선구적인 작품 세계를 기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카프카에서 토마스 베른하르트으로 이어지는 중부 유럽 전통의 위대한 서사 작가로, 부조리와 기괴한(grotesque) 과잉이 특징"이라며 "그러나 그는 그에 머물지 않고, 동양적 요소를 받아들여 보다 사색적이고 세밀하게 조율된 어조를 작품에 반영하기도 한다"고 평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스웨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노벨상 수상자로서의 첫 번째 날"이라며 "매우 기쁘고 평온하면서도 긴장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1954년 루마니아 국경 인근 헝가리 줄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크러스너호르커이는 대학에서 법학과 헝가리 문학을 전공했다. 작가는 유럽 전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몽골 등에 머무르며 작품을 썼다.
그는 1985년 발표한 데뷔 장편소설 '사탄탱고'가 성공을 거두며 현대문학의 주목받는 작가로 올라섰다. 헝가리 남동부의 붕괴한 집단농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묵시록적 분위기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헝가리 영화감독인 터르 벨러가 1995년 영화화하기도 했으며, 상영 시간이 7시간 반에 달한다.
이후 장편소설 '저항의 멜랑콜리'(1989), '서왕모의 강림'(2008),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 '맨해튼 프로젝트'(2018), '궁전을 위한 기초작업'(2018), '언제나 호메로스'(2019), 중단편소설집 '라스트 울프'(2009), '세계는 계속된다'(2013) 등을 발표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소설은 종말론적인 세계관과 어두운 색채를 담고 있다. 이같은 특징에 그는 '모비 딕'의 허먼 멜빌, '죽은 혼'의 니콜라이 고골 등 이전 세대의 거장들에 비견된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거장"이라고 평했다.
그는 다수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헝가리에서 1998년 산도르 마라이 문학상을 거머쥔 데 이어 2004년에는 자국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코슈트상을 받았다.
독일의 베스텐리스테 문학상, 브뤼케 베를린 문학상, 스위스의 슈피허 문학상, 미국 내셔널 북 어워드 번역문학상 등을 받으며 국제적으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특히 2015년에는 '사탄탱고'로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으며.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맨부커상 수상자 선정 당시 심사위원단은 크러스너호르커이를 "탁월한 강렬함과 음역을 갖춘 예지력 있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도 '사탄 탱고'를 비롯해 총 6권이 번역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