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숨통 조이는 '밀폐 공간'…2명 중 1명은 질식사

[더 매뉴얼:전북 산업재해 톺아보기③]
제지 공장·돼지 농가서 매년 발생하는 '밀폐공간 질식사'
주된 사고 원인은 '작업 전 유해가스 점검 미비 및 안전 장비 미착용'
떨어짐 등 다른 사고보다 40배 높은 사망률…사고 발생 시 2명 중 1명 사망
높은 치명률에도 고용노동부 재해 유형엔 별도 항목 없어…전문가 "분류 필요"

지난해 12월 2일 완주군 소양면 돈사 사고 사진. 전북소방본부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텔레핸들러에 끼인 심장…폐쇄회로서 전해진 위험 요인
②사전 교육도 없이 투입…전주리싸이클링타운 폭발 사고
③찰나의 순간 숨통 조이는 '밀폐 공간'…2명 중 1명은 질식사
(계속)

#2025년 5월 4일 오전 9시 44분쯤 전북 전주시 덕진구 C제지 공장 백수탱크 맨홀에서 기계정비와 청소작업을 하던 5명의 작업자가 유독가스에 질식해 2명이 숨지고 3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2025년 9월 12일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한 돼지 축사 맨홀에 붙어있는 찌꺼지를 제거 하던 근로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지난해 12월 2일 전북 완주군의 한 돈사에선 액체상태의 비료를 폐수처리장으로 옮기는 청소 작업을 하던 근로자와 네팔 국적의 근로자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 모두 밀폐된 공간에 갇혀 '황화수소'에 노출됐다.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제지 공장과 농장이 많은 전북에선 해마다 발생하고, 재해자 2명 중 1명이 사망하는 치명률이 높은 재해다. 이러한 현실에도 고용노동부 재해 유형엔 별도 항목으로 분류되지 않아 '보이지 않는' 재해 중 하나다.  

제지공장 맨홀·축사 분뇨 탱크 청소 하던 노동자들…전북서 매년 발생

지난 5월 4일 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C제지 사고 현장. 전북소방본부 제공

지난 5월 4일 C제지 노동자 A(50대)씨는 공장 맨홀로 향했다. 종이를 만들고 생긴 찌꺼기가 쌓인 맨홀을 청소하고 다음날 작업을 위해 기계를 정비하기 위해서다.
 
깊이 3m의 맨홀을 청소하던 A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건 오전 9시 44분쯤. A씨가 쓰러지자 그를 구하려고 B(40대)씨 등 2명이 맨홀 내부로 들어갔다. 이어 이들도 의식을 잃고 맨홀 안에서 쓰러졌다.
 
맨홀 바깥엔 안에 들어간 동료를 구조하기 위해 대기하던 2명의 동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맨홀에서 뿜어져나오는 유독 가스를 마셔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결국 A씨와 B씨는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고, 끝내 숨졌다. 함께 맨홀에 들어갔던 C(50대)씨는 의식을 잃었고, 맨홀 밖의 2명의 동료들도 병원으로 이송됐다.
 
겨우 4개월이 지난 지난달 12일.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한 돼지 축사에선 D(65)세는 돼지 축사 맨홀 분뇨 이송 파이프에 걸린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한 작업 중 숨졌다. 찌꺼기를 제거하고 맨홀에 설치된 임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다 어지러움을 느낀 D씨는 그대로 쓰러졌고, 아직까지도 의식이 없는 채로 중태에 빠져 있다.

사망률 43배 '밀폐공간 질식사'…2명 중 1명은 사망

2014~2025년 밀폐공간 질식사고 사망률

밀폐공간은 맨홀과 정화조, 터널, 수직갱, 탱크 내부 등 산소결핍 및 유해가스로 인한 질식의 위험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사방이 꽉 막혀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도 포함된다.

전문가들은 '산소 흐름이 원활하기 않은 곳'을 통틀어 '밀폐 공간'이라 일컫는다. 이런 장소들은 환기가 불충분하고 출입구가 제한된 특성 때문에 산소 결핍이나 유해가스 축적이 쉽게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발생 건수 대비 사망률이 높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24년까지 298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해 이중 126명이 사망했다(42.3%). 이는 같은 기간 '떨어짐'이나 '무너짐' 등 다른 사고성 재해의 사망률(1%내외)보다 약 40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밀폐공간 질식사망·사고는 제지 공장 단지가 몰려있고, 시외 지역을 중심으로 농장이 많이 있는 전북 지역에서도 매년 끊임없이 발생했다.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장은 "밀폐공간 질식사는 사고가 발생하면 2명 중 1명은 사망하는 치명률이 매우 높은 재해"라며 "전북은 제지공장 등이 밀집해 있고 축산농가가 많은 지역 특성상 밀폐장소에서의 질식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라고 말했다.

치명률 높지만 별도 항목 없어…"분류 필요"

9월 12일 김제 가스중독 사고 현장. 돼지와 사람 캡처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 중대한 사고이지만, 고용노동부는 23개의 재해 유형 중 '밀폐공간 질식사고'를 별도 항목으로 두지 않고 있다. '화학물질누출·접촉' 항목으로 분류한 채 다른 유형의 재해와 묶인 수치로 제시되고 있다.
 
손 소장은 이를 두고 "다른 재해에 비해 빈도수가 적고 일상적인 작업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정화조와 맨홀 등의 작업 장소는 노동자들이 상주하지 않고 청소나 사전 작업 등 비정기적인 필요성에 의해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사고 발생시 세이프티 알람을 보내기도 하지만 아직 부족함이 많다"며 "전체 사고와 비교해보면 맨홀과 정화조 등에서 작업하는 빈도가 낮고, 사망자 수도 적기 때문에 별도의 항목으로 분류하고 있지 않지만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큰 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별도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밀폐공간 질식사고는 화학 물질 위험과 연관될 뿐이지 취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도 항목으로 분류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명률이 높은 재해임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위치에 있어 다른 항목과 함께 분류되면 보이지 않는 통계가 되기에 집중 관리가 필요한 항목으로 별도 분류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