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체포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경찰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이 전 위원장 측이 청구한 체포적부심을 법원이 인용하면서다. 이 전 위원장은 체포 직후부터 "직권 남용에 가까운 범죄 행위"라며 경찰 수사를 맹공했다. 경찰은 야권의 조력을 등에 업은 이 전 위원장을 상대로 혐의를 규명해 수사력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
김동현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영장당직)가 4일 "헌법상 핵심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이유로 하는 인신구금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 전 위원장의 체포적부심을 받아들였다. 김 판사는 이미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조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고 사실 관계에 대한 다툼이 없어 추가 조사 필요성도 크지 않다는 인용 근거도 덧붙였다.
심사 과정에서 경찰이 체포영장을 3번이나 신청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전 위원장 변호인인 임무영 변호사는 "경찰이 발부받은 체포영장은 세 번째 신청한 것이다. 앞의 두 번은 검찰이 기각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 전 위원장에 대한 경찰 강제수사가 애초 다소 무리한 측면이 있던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다만 법원은 경찰의 체포 자체에 대한 적법성은 인정했다. 김 판사는 "수사 필요성이 전면 부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면서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가 다가오고 있어 수사기관으로서 피의자를 신속히 소환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인저할 수 있고,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경찰은 이 전 위원장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발언 등을 해 올해 4월 재보궐선거와 6월 대통령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를 수사하고 있다.
경찰의 이 전 위원장 수사가 검찰청 폐지 등을 이유로 첨예하게 맞서던 여야 정치권과 법조계의 갈등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경찰은 방송통신위원회 폐지로 면직된 지 하루 만에 이 전 위원장을 자택에서 체포했고 결국 그는 석방됐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이 정치적 체급을 키운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일각에선 나온다.
체포된 지 50시간 만에 풀려난 이 전 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을 나오면서 "경찰의 폭력적 행태를 접하니 일반 시민들은 어떨까 생각이 든다"며 "경찰이 수사권과 함께 기소권까지 갖게 된다면 어떤 피해가 갈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국가공무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지난해 9~10월 직무정지 상태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 4곳에 출연해 "보수 여전사 참 감사한 말씀", "민주당이나 좌파 집단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 등 여권을 겨냥해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 문제가 됐다.
또 올해 3~4월 자신의 SNS에서 민주당을 비판하고,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서도 같은 취지 발언을 반복한 혐의도 적용된 상태다.
이 전 위원장의 체포와 석방이 추석 정국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경찰의 혐의 입증 책임 또한 무거워졌다. 당장 야당인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미친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이 이번 추석 민심"이라면서 "불법적인 영장 발부와 체포, 감금에 이은 위법 수사에 대해 끝까지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