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년동안 사진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해 온 작가의 신작들을 선보이는 자리다.
'윌더'는 '길을 잃다'는 의미로 이번 전시에 새로 선보인 연작의 제목이다.
작가는 전시를 준비하며 지난해와 올해초 제주도의 숲을 산책했고, 그 과정에서 느낀 감정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궁극적으로 사진은 겁을 주거나 반발하거나 심지어 낙인을 찍을 때
전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색하고 생각할 때 전복적인 것입니다."
-롤랑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가 수시로 떠 올렸다고 하는 이 문장은 풍경과 거기에 깃든 생명들에게 향한 작가의 시선을 잘 대변한다.
이번 전시는 우연적인 존재들과의 조우(遭遇) 가운데 관객이 스스로 길을 잃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도록 구성됐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과연 사진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진다.
"'윌더' 같은 경우는 주름 상자가 달린 카메라로 포커스가 맞는 범위 같은 거를 정교하게 조절하면서 촬영을 했거든요. 그래서 어떤 예를 들어 저런 물웅덩이 이미지 같은 경우는 맨 앞부터 제일 맨 뒤에까지 포커스가 다 맞아 있어요. 그리고 어떤 숲의 이미지 같은 경우도 멀리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건 포커스가 맞았는데 중간에 서 있는 나무는 포커스가 안 맞고 막 이런 것들이 이제 막 좀 섞여 있거든요. 그래서 숲의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기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한 1년 정도가 걸렸죠. "
흐렸다, 맑았다, 비왔다, 눈왔다를 반복하는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보며, 내가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나니까 오히려 자유로워졌다는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저도 되게 많이 바뀐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번 전시가, 그리고 이 제주도에서의 작업이 저한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좀 전환점이 되는 작업이었고 또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지고 계속 갈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작업이기도 했어요."
'윌더' 시리즈는 2m 높이로 인화한 뒤 하나의 이미지를 잘라 두 개의 패널에 나눠 붙이고, 패널 간 1㎝ 간격을 둬 관람객이 그 사이에서 길을 잃는 듯한 체험을 하도록 했다.
이미지를 분할하면서도 하나의 완성된 작업으로 연결하는 이 형식은, 몰입과 단절이 공존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우연히 찍게 된 영상과 그에 맞춘 즉흥 연주는 이질적인 평행을 이루며, 자연이라는 어원에 깃든 자유로운 세계의 한 단면을 잠시나마 경험하게 한다. 먼 바다를 보며 머리를 비워내기 딱 좋은 영상이다.
화려한 파란색의 깃털을 가진 새의 뒷모습. 이제는 늙어 윤기없고 숭숭 빠진 그 모습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동선상의 가장 마지막에 전시된, 딱 뒤돌아봤을 때 마주치는 작품은 알파카의 귀여운 얼굴이다.
"겨울에 제주도에 다시 가서 좀 마무리를 지으려고요. 그러니까 이제 조금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겠어요. 이번에 가서 한 두 달 정도 있으면서 좀 충분히 더 좋은 이미지를 좀 만들고 나면은 그 다음에는 좀 다른 곳을 가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