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바다, 강이 있는 부산. 시민들의 일상을 보다 다채롭게 채워주는 부산의 자연환경은 뜻하지 않은 결과물을 낳았다. 광안대교를 비롯해 도심 곳곳에 생겨난 해상 교량과 터널 등 유료도로다. 바다와 강을 가로지르고 산을 관통하는 도로 공사의 특성상 예산 등을 이유로 민간자본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부산시의 설명이다.
유료도로 1등 도시라는 불명예가 덧씌워지자, 시는 최근 들어 출퇴근 시간 통행료 지원이라는 자구책을 꺼내 들었다. 특정 시간 통행료를 시 예산으로 보전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생활형 정책이라는 평가가 있는 반면 승용차 중심의 교통 정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직접 예산을 투입하는 선심성 정책이라는 시선도 있다.
출퇴근길에 유료도로 8번…8200원을 도로에 뿌린다
부산 해운대구 그린시티(신시가지)에 사는 직장인 A씨는 매일 아침 마음을 다잡고 출근길에 오른다. 강서구 명지동에 있는 직장까지 승용차를 타고 가려면 유료도로를 4번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A씨는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 등 두 곳의 해상교량을 지난 뒤 천마터널을 거쳐 다시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을숙도대교를 건너고 나서야 회사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거리로는 35km가량이다.
광안대교의 출퇴근 시간 할인(50%)과 이후 적용된 유료도로 연속 통행 할인(각 200원)을 감안해도 A씨는 이날 출근길에만 4100원이 넘는 도로 이용료를 냈다.
퇴근도 해야 하니 하루 8200원을 도로 통행료로 쓰는 것인데, 유료도로 1위 도시라는 수식어가 A씨의 지갑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셈이다.
산·강·바다가 낳은 결과물 유료도로…전국 도시 중 최다 '불명예'
실제, 부산에는 전국 도시들 중 가장 많은 7개의 유료도로가 있다. 광안대교와 부산항대교, 거가대로 등 3개의 해상교량에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을숙도대교가 더해진다. 또, 수정산터널과 천마터널, 산성터널 등 3개의 터널이 있다.그나마 백양터널이 민간사업자의 관리 운영권이 끝나면서 진통 끝에 올해 1월부터 통행료를 무료화하면서 유료도로 숫자를 하나 줄였다. 수정산터널과 광안대교도 각각 2026년과 2028년 무료화 전환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만덕~센텀대심도(2026년)와 승학터널(2030년), 신백양터널(2031년), 반송터널(2032년), 사상~해운대고속도로(2033년) 등 유료도로 건설이 추진 또는 검토되고 있어 유료도로 1위 도시라는 타이틀을 떼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부산시 민순기 도시공간계획국장은 "지역 여건상 대부분 터널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공사비가 많이 들어간다"며 "부득이하게 민자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부산시, 출퇴근 시간 통행료 지원 정책 본격화
상황이 이렇자, 부산시는 출퇴근 시간 통행료 지원이라는 자구책을 꺼내 들었다. 출퇴근 시간에 한 해 유료도로 통행료를 무료화하고, 시가 도로를 운영하는 민간업체에 통행료를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시는 먼저, 오는 11월부터 을숙도대교와 산성터널의 출퇴근 시간 통행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통행료 면제 시간은 토·일·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다.
시는 두 개 도로의 통행료 면제에 따라 연간 125억 원~130억 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박형준 시장은 "시 재정이 넉넉하다면 재정사업으로 터널과 교량을 건설했겠지만, 막대한 건설비가 소요되는 사업들이어서 불가피하게 민간자본을 유치했다"며 "시 재정에 부담이 발생하더라도 시민의 부담을 덜어 드리고자 출퇴근 시간 유료도로 통행료 면제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시는 을숙도대교와 산성터널의 출퇴근 시간 통행료 면제 효과를 분석한 뒤 거가대로를 제외한 나머지 유료도로에 대해서도 2년 이내에 순차적으로 정책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그에 따른 시 재정 부담은 연간 300억 원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는 이와 함께 내년 6월부터 남해고속도로 제2지선 가락요금소에서 서부산나들목(IC) 구간의 출퇴근 시간 통행료 지원에 나선다. 지원 정책이 시행되면 한국도로공사 지원금과 더해져 부산시민은 출퇴근 시간대 이 구간을 사실상 무료로 지날 수 있게 된다.
탄소중립 역행하는 승용차 중심 교통정책…"지방선거 준비하나?" 시선도
부산시의 유료도로 건설 계획과 출퇴근 시간 통행료 지원에 대해 지역 시민단체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대중교통 활성화를 통한 탄소중립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에 승용차 중심의 교통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 지적의 핵심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 통행료 면제는 승용차 이용을 독려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처장은 "대중교통을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펼쳐나가야지, 다시 승용차 중심으로 회귀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유료도로를 건설하는 것부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유료도로 출퇴근 통행료 면제 정책이 내년 지방선거에 앞선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여기에는 예상 효과 등에 대한 검토의 흔적 없이 정책이 다소 갑작스럽게 발표됐다는 점이 근거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