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홍진기 "연지영, 맹 숙수의 성장 꿈꾸게 해 준 존재"[EN:터뷰]

지난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배우 홍진기. 글로리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연지영(임윤아)은 기존 수라간 사람들로부터 '낙하산' 취급을 받는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오로지 왕 이헌(이채민)의 총애를 받아 대령숙수가 됐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각자 인주대왕대비(서이숙)와 숙원 강목주(강한나)의 사람인 두 선임 숙수 엄봉식(김광규)과 맹만수(홍진기)의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도 있다.

하지만 날마다 수라를 올리며, 요리사에게는 신체 전부와도 다름없는 팔을 건 살벌한 경합을 거치고 나서, 나라의 명운까지 달린 명나라 사신단과의 경합을 함께하며 수라간 사람들은 한 몸처럼 끈끈한 공동체가 된다. 시청자들은 이들에게 '팀 수라간'이라는 애칭을 지어주기도 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tvN 토일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맹만수 역을 맡아 '팀 수라간' 멤버로 활약한 배우 홍진기와 인터뷰했다.  

눈엣가시 같았던 연지영을 상사로 받아들인 시점으로 홍진기는 '팔을 걸고 연 첫 경합'이 나온 4화를 꼽았다. 그는 "지영의 음식은 (제가) 요리사로서 오를 수 없는 경지에 있었다. 그러니 이미 지영을 해할 생각은 없다고 저는 (캐릭터를) 잡고 있었고, 다행히 그에 부합하게 서사를 풀어주셨다. 이게 드러나기 전에는 오히려 더 나빠보이게 하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홍진기는 전작도 사극이었기에 직전에 맡았던 배역 끝동이가 떠오르지 않길 바랐다고 말했다. 글로리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경합에서 이긴 한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명의 팔을 잘라야 한다고 주장했던 '폭군' 이헌을 향해, 연지영은 "숙수의 팔을 자른다는 건 죽이는 것과 같은 거다. 우리는 더 좋은 요리를 위해서 경합한 것뿐인데 그게 왜 죽을죄가 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외친다. 이에 인주대왕대비(서이숙)도 왕실에 충과 효를 다하라는 의미로 엄 숙수, 맹 숙수에게 당분간 연지영의 음식을 배우도록 하자고 이헌을 설득한다.

홍진기는 "공식적인 요리 경합에서 (저는) 지기도 했지만, 그렇게 경쟁했던 상대를 보듬어주는 인성에서 맹 숙수도 마음속으로 지영을 생각하게 된 거 같다. 나의 상사로서 받아들였던 거 같고, 그 이후로 아마 원 팀이 되어갔던 거 같다. 그때 하필 비상을 받는 바람에 맹 숙수는 좀 혼란스럽긴 했겠지만"이라며 웃었다.

"맹 숙수라는 캐릭터가 사실 어떻게 보면 완성형 캐릭터잖아요. 더 이상 성장할 서사가 많이 없는… 왜냐하면 직위도 그렇고 엄 숙수님과 거의 라이벌 관계에 있던 수라간 숙수니까요. 맹 숙수가 다시 한번 (본인) 성장 서사를 꿈꿀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지영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막 호전적으로 못되게 굴고 나쁘게 굴었던 것도, 맹 숙수는 되게 요리사로서 궁중도덕, 예법 이런 걸 중요시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는 캐릭터여서 그렇고요. 그땐 숙수들이 다 남자였대요. 놋그릇이나 쟁반 하나만 들어봐도 알듯이 물건이 너무 무겁고 그러다 보니까 남자들이 주로 담당했고요. 새로 들어온 사람이, 더군다나 그 시절에 여성이 들어오니까 맹 숙수로서는 그게 납득이 안 되고, 요리를 맛보기 전이니까 당연히 나보다 아랫사람일 거라고 섣부르게 판단했던 것 같아요. 무시하고 깔봤지만 (지영의 요리) 맛을 보고 나서 더 충격을 받은 거죠."


극 중 명나라 사신단과의 요리 경합은 3차에 이를 만큼 비중 있게 다뤄졌다. 홍진기 인스타그램

또한 홍진기는 "워낙 좋은 말을 제대로 못 해서 그렇지 요리에 있어서만큼은 배울 땐 배우는 인물이다. (지영이) 요리할 때 보면 알게 모르게 노트를 들고 있었다. 맹 숙수도 요리에 있어서만큼은 배울 땐 배운다,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다는 게 보였으면 했다. 그런 게 원 팀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지 않았을까"라고 바라봤다.

'팀 수라간' 멤버 중에는 이전에도 함께 작품을 한 경우가 많이 있다. 엄봉식 역 김광규와 민개덕 역 김현목과는 드라마 '홍천기', 심막진 역 주광현과는 영화 '봉오동 전투', 서길금 역 윤서아와는 드라마 '옥씨부인전'에서 각각 호흡을 맞췄다.

홍진기는 "저는 되게 친근했다. 오디션 볼 때도 배우들을 (여러 조합으로) 섞어서 봤는데, 어떤 배우들과 했을 때 느낌이 제일 괜찮았냐고 했을 때 현목이 형, 광현이 형이랑 할 때 편했다고 했고, (나중에) 캐스팅된 걸 보고 너무 잘됐다고 했다"라며 "현장이 빡세다 보니까 배우분들도 스태프분들도 엄청 끈끈해졌다"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서 현장에서 얘기 나누는 게 재밌었다. 광규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셨고, 가위바위보해서 밥 사고 커피 사고, 지역 맛집 찾아다니고 그랬다. 또 윤아 누나도 솔직히 주인공이라 (일정이) 빡빡한데도 저희랑 같이 어울렸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선배님들이 그렇게 해 주시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라 그만큼 에너지를 써야 하는 거더라. 그 덕분에 우리도 연기가 더 편하게 나오고 아이디어 회의도 더 편하게 되고,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라고 설명했다.

'폭군의 셰프' 12회에서는 수라간 식구들이 위험에 빠진 이헌을 구하기 위해 전투에 나서는 모습도 나왔다. 홍진기 인스타그램

명나라 사신단의 아비수 역 문승유, 당백룡 역 조재윤과는 같은 작품을 해 봤고, 우곤 역 김형묵, 공문례 역 박인수와는 처음 만났다는 홍진기는 "중국말들을 진짜 진짜 잘하시더라. 깜짝 놀랐다. 그게 현장에서 (대사가) 계속 추가됐는데, 그분들 정말 기계처럼 한 손에는 노트, 한 손에는 녹음본 들고 어딜 가나 열정이 대단했다. 대사가 장난 아니다. 엄청 많은데 역시 선배님들다웠다"라고 감탄했다.

우곤 옆에서 통역을 맡은 배우 곽진 일화도 들려줬다. 곽진은 뛰어난 중국어와 얄미움을 겸비한 캐릭터로 명나라 경합 때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한 바 있다. 홍진기는 "캐릭터 설정을 하느라 허리를 좀 더 숙인 자세로 갔는데, 그 설정으로 끝까지 가다 보니까 허리가 너무 아프셨다고 한 게 기억난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배우도 있었는데 임윤아도 그 중 하나였다. 홍진기는 "(임윤아) 누나는 대충 다 알더라. 옛날 말이라서 다 알아듣진 못해도 대사 끝나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춰서 한다. 보통 (외국어를) 못 알아들을 때 대사 끝나면 배우들끼리 콧구멍 한 번 벌렁 하는 것 같은 사인이 암묵적으로 있다. 근데 누나는 바로바로 하니까, 이런 걸 보면서 배우는 할 줄 아는 게 많으면 참 좋겠다 싶더라"라고 말했다.

극 중 맹 숙수의 목숨을 쥐락펴락했던 강목주 역 강한나도 '폭군의 셰프'로 처음 만났다. 홍진기는 "선배님도 동글동글 귀엽고 못돼 보이는 인상이 아닌데, 이미지대로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반대되는 연기를 했을 때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선배님 보면서 배웠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맹만수 역 홍진기, 서길금 역 윤서아. tvN 제공

그러면서 "(덕분에) '나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했고, 이미지에 굴하지 않고 악한 역할 맡으셨는데 고민 없으셨는지, 캐릭터를 살려내는 비결이 궁금하기도 했다. 연기하시는 걸 보고 싹 사라졌지만. '아, 진짜 잘하신다. 나도 저렇게 돼야겠다' 했다"라고 부연했다.

매회 새로운 요리를 내놓는 드라마였고, 규모가 큰 경합도 몇 번 있어서 '요리 장면 촬영'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요리하다 보면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라고 한숨을 쉰 홍진기는 "솥뚜껑을 왼손으로 열었는지 오른손으로 열었는지, 돌아볼 때 어느 쪽으로 봤는지 등 '연결'에 관한 거였다"라고 말했다.

"제가 도마를 닦을 때 옆에 사람들, 하물며 명나라 상대방은 뭘 하고 있는지가 다 맞아야 하는 거였어요. 대본에는 '맹 숙수가 요리를 한다'라고 제 시점만 나와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또다시 처음으로 세팅해야 하고, 스태프분들이 분담해서 챙겨주셨어요. 동화 보면 자는 동안 구두 만들어 주는 요정들이 있잖아요? 저희 스태프분들이 그랬어요."
 
배우 홍진기. 글로리어스엔터테인먼트 제공

길금과의 로맨스 여부도 물었다. 시청자 사이에서는 '팀 수라간'의 사제 관계인 맹 숙수와 길금, 비밀스러운 광대 공길(이주안)과 길금 두 파로 갈린 바 있다. "이게 참…"이라고 웃은 홍진기는 "같이 늘 (일)하다 보니 정이 든 걸 수도 있고, 아무래도 함께 보내는 시간을 무시 못 하지 않을까. 공길은 공길씨만의 깊은 서사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보니 수라간이 좀 더 어울리지 않나"라는 답을 내놨다.

전작 '옥씨부인전'도 사극이었기에, '폭군의 셰프' 들어가면서 잡은 목표가 있다. '이번에는 끝동이가 생각나지 않게 하자'라는 것이었다. "맹 숙수가 끝동이었어?"라고 하는 댓글이 "가장 뿌듯"했던 이유다. 홍진기는 "그래서 더 옛날 사람처럼 주근깨도 넣고 수염도 붙이고 노력하다 보니까 분장 덕분에 가면 뒤에 숨은 느낌도 들고, 좀 더 맹 숙수답게 나올 수 있었던 모멘트였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희로애락이 잘 녹아져 있는 작품이었어요. 잘돼서 너무 감사하고요. 보통 자신 있는, 했던 역할로 얻는 시너지도 있지만 새로운 도전했을 때 얻는 시너지는 또 너무 다른 것 같아요. 벼룩을 이만큼 담아두면 이만큼만 뛰는데 더 큰 곳에 두면 더 높이 뛸 수 있다고. 저한텐 약간 그런 시기였던 거 같아요. (새)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았고, 늘 쓰던 이미지가 잘 어울리니까 그렇게 하는 게 당연시됐던 부분인데 요 부분을 기점으로 '그래,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이런 연기를 못하지 않는다' '난 이런 이미지도 있고 이런 매력도 있다' 하면서 앞으로의 행보에서 폭을 확실히 넓힐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이 역할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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