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제기한 검찰의 술자리 회유 의혹이 1년여 만에 다른 국면에 접어들면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검찰의 위법한 수사가 있었다는 감찰 결과가 나온다면 이 전 부지사 측이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대북송금 재판 과정에서 법원이 '검찰의 권한 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어 재심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TF 꾸린 검찰…'술자리 회유 의혹' 감찰 본격화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검 인권침해 점검 태스크포스(TF)는 술자리 의혹이 불거진 2023년 5월 당시 대북송금 수사팀 관계자들을 조사할 전망이다. 서울고검 TF는 정용환 감찰부장이 팀장을 맡고 검사 3명이 참여한다.법무부 특별점검팀 조사 결과 이 전 부지사, 쌍방울그룹 김성태 전 회장, 수원지검 검사 등은 2023년 5월 17일 수원지검 1313호 검사실 내 영상녹화실에서 연어회덮밥과 연어초밥을 먹었고 일부는 술을 마셨다.
지난해 수원지검 자체 조사와 달리 술자리는 존재했다는 게 특별점검팀 결론이다. 서울고검 TF는 당시 술자리에서 실제 이 전 부지사를 회유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는지, 이 전 부지사나 이재명 대통령의 혐의 입증에 필요한 진술을 유도했는지 등의 의혹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의혹이 감찰 결과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 전 부지사 측이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 형사소송법 420조에서 정한 7가지 사유에 해당한다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판결의 증거가 위조되거나 증언이 허위라는 사실이 드러난 때 등이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
진술 회유 사실로 드러나면 재심 청구 가능성도
술자리 회유 의혹의 경우 해당 법 7호에서 규정한 '공소 제기 또는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 등이 직무에 관한 죄를 지었을 때'와 관련이 있다.검사가 수사 과정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폭행·가혹행위 등 직무에 관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10·26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고(故)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경우 군 수사관들에 의한 폭행과 가혹행위 사실이 인정돼 재심이 개시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재권 송미경 김슬기 부장판사)는 지난 2월 "기록에 의하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 소속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수사하면서 수일간 구타와 전기고문 등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영 진술 회유, '직무상 위법 행위'인지가 쟁점
대북송금 사건에선 수사팀 관계자들이 직권남용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는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수사팀이 식사와 술을 제공하는 등 편의를 도모하면서 진술을 회유했고, 김 전 회장 등 쌍방울 임직원과 대질신문을 진행하며 서로 말을 맞추는 이른바 '진술세미나'를 했다고 주장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팀 지휘부가 담당 검사에게 이 전 부지사 등과 술자리를 하며 진술을 회유하도록 지시했는지, 그것이 법령상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한 행위에 해당하는지 등이 확인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술자리 회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고 해도 재심 개시가 이뤄지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무부 특별점검팀 조사로 드러난 술자리 회유 시점은 2023년 5월 17일이다. 그런데 이 전 부지사는 2022년 10월 이미 대북송금 사건으로 기소됐었다.
재심 사유가 성립하려면 '공소 제기의 기초가 된 수사'에서 검사가 직무 관련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데, 술자리 회유는 기소된 이후 일이기 때문에 이 전 부지사 사건에 대한 재심 사유로는 적절치 않다는 견해가 있다.
술자리 회유 의혹, 법원은 이미 "문제 없다" 결론
술자리 회유 의혹은 법원에서 이미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기도 했다.대북송금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의 정치인으로서의 경력, 연령, 학력 등을 고려해볼 때 연어 및 술 등의 제공이 있었다고 하여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 근본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전 부지사와 쌍방울 관계자들이 함께 대질신문을 받은 점은 인정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대질진문의 형식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다른 인물이) 하나의 사실에 관한 진술을 먼저 한 다음 그 내용을 들은 나머지 사건 관계인들이 동일한 진술을 하는 등의 형식으로 진행된 바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의 대질신문이 검사의 재량권을 일탈·남용된 상태에서 이뤄졌다고 볼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고, 이는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됐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는 "회유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부적절한 측면은 있겠으나 검사가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입증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