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난 한국인들 공항으로…'비자 개선' 남은 숙제

이민단속으로 체포됐던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에서 나오며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와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이민당국에 구금됐던 한국인 316명이 탄 버스가 11일(현지시각) 새벽 2시 17분쯤 한국으로 갈 전세기가 대기하고 있는 공항으로 출발했다.

현재 우리 국민 316명과 외국인 근로자 14명 등 총 330명은 대한항공 전세기가 대기하고 있는 하츠필드-잭슨 애틀랜타국제공항으로 이동 중이다. 구금 시설에서 애틀랜타 공항까지는 약 430㎞로 일반 승용차로는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전세기는 현지 시간 11일 정오(한국시각 12일 오전 1시)쯤 애틀랜타 국제공항을 출발해 한국 시각 12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당초 전세기를 타고 출발하기로 한 날짜는 10일. 그러나 9일 밤 갑자기 '미 측의 사정'으로 출발이 하루 지연되면서 긴장감은 높아졌다. 백악관에서 구금 한국인들의 의사에 따라 한국행을 결정할 수 있다는 지시를 내리면서 행정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출국이 늦어진 것으로 우리 정부는 설명했다.

갑자기 연기된 전세기…美측과 '수갑 이송' 논의 중 해프닝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구금된 한국인들을 태운 전세기 일정이 갑자기 연기된 것과 관련해 "원래 계속 버스로 이동하는데 비행기를 탈 때까지는 미국의 영토라고 보고 (원칙적으로) 수갑을 채워 버스로 이송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절대 안된다고 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두고 밀고 당기는 와중에 (국민들에게) 소지품을 돌려주며 자진 출국이냐, 추방이냐 논쟁하는 상황에서 소지품 지급이 중단됐다"라면서 "백악관 지시라고 했는데 '자유롭게 돌아가도록 해라, 가기 싫으면 안가도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가 있어서 그 행정절차를 바꾸느라 그랬다고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의 여파로 한미 정부 간 협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에 대해서까지 깊이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대미 직접 투자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이 대통령이 한미 외교 관계 전반에 불똥이 튀는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미국 정부가 한국의 대미 투자를 독려하는 상황에서 평범한 한국 근로자들을 불법 이민자 취급하며 거칠게 다룬데 대한 불편함을 우회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이민당국이 지난 4일(현지시간) 한국 기업의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을 불법 이민자 취급하며 일렬로 세워 수갑과 쇠사슬을 채운 장면에, 한미 동맹에 대한 배신감을 깊이 느낀 우리 국민 감정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발전을 위한 우리 국민과 기업 활동에 부당한 침해"라고 언급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도 "미측에 항의성 발언을 분명히 하겠다"며 최근 한미 동맹관계에서 보기 힘든 항의의 표현을 내놨다.

조현 장관, 美와 협의에서 "비자 문제 논의할 워킹그룹 만들자"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8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조 장관은 미국 이민당국의 단속에 따라 구금된 한국인들의 석방 문제 협의를 마무리하고 유사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미국 당국과의 협의차 방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종도=박종민 기자

한국인 구금 사태는 우여곡절 끝에 자진 출국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현 미국 비자 제도로는 한국 기업의 현지 활동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음이 드러나, 개선의 필요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미국 백악관의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9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사태 재발 방지와 관련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의 외국 기업들과 그들이 미국에서 하는 투자에 대해 매우 감사해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면서 "국토안보부와 상무부가 이 문제에 함께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원한다면 출국하지 말고 남아서 일해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 비자 문제를 개선하려는 여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조현 장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의 면담에서 한국 전문인력의 미국 입국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조 장관은 "국무부와 외교부 간 워킹그룹을 만들어 새 비자 형태를 만드는 데 신속히 협의해 나간다는 것까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미투자 확대와 함께 수개월동안 미국에 머물며 일할 파견 인력들이 받을 수 있는 비자를 만들자는 것이다.

앤디 베이커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겸 부통령 안보보좌관은 방미 중인 조 장관을 만나 "트럼프 행정부 아래 이룬 대규모 대미투자가 현실화하고 있지만 현 비자 제도는 이를 뒷받침해오지 못했다"며 비자문제 개선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와 함께 우리 정부는 기존 출장자들이 받던 단기 상용 B-1 비자를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미국과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새 비자제도의 신설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출장비자로 불리는 B-1 비자와 무비자 전자여행허가(ESTA) 등을 받은 근로자들이 체류 목적에 맞지 않게 근로 노동을 했다는 점을 미 이민당국이 문제 삼으면서 발생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B-1비자를 소지한 기술자의 공장 구축 활동 보장' 방안을 미국과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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