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니까요."
사실상 도전이었다. 평소 하이틴 장르의 영화를 좋아했지만, 정작 로맨스 멜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를 연출한 남궁선 감독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당시를 떠올렸다.
"로맨스 멜로를 못 참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로맨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로맨스 멜로 작품을 찾아 보고 이야기 구조에 관한 책도 읽으면서 재미를 느꼈다"며 "서양 하이틴 영화의 재미와 동양 하이틴 영화 특유의 간지럽지만 귀여운 감성을 섞어보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유치한 맛이라는 게 처음엔 뭔지 잘 몰랐는데 점점 빠져들게 되더라"고 웃었다.
남궁 감독은 국내 로맨스의 특징을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으로 바라보고, 첫 키스 설렘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청춘의 순간을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장면이 후반부 한윤석(공명)이 꺼내는 '학알'이다. 이는 시나리오에는 없었지만, 콘티 작업을 통해 추가됐다. 당초 학알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잘 몰랐던 남궁 감독이었지만, 작품에서는 상징적인 장치로 바라봤다.
"이야기가 학알로 시작됐다면 학알로 끝나야 할 거 같았어요. '이런 걸 왜 해'라고 말했던 친구가 '너를 생각할 때마다 접었다'라고 말하면 의미와 감동을 모두 표현하기에 좋을 거 같았죠."
이어 "이 장면을 생각해 뿌듯했다. 오글거리긴 하지만, 저도 같이 좋아할 수 있게 된 행복한 순간"이라며 "물론 저희는 학알을 접느라 진짜 고생했다"고 덧붙였다.
"행복에 관해 고민…즐거움 있는 작품 하고 싶었죠"
1998년 부산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곱슬머리 친구가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는 설정은 이미 완성된 시나리오에 담겼다.
그는 연출을 맡은 배경에 대해 "영화 '힘을 낼 시간'(2024) 등 연달아 한 두 편의 작품들이 청춘들의 아픔을 담다 보니 마음이 많이 어두워졌다"며 "저도 모르게 기운이 빠져 즐거움이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어 "행복에 관해 고민을 하다 시나리오를 받았다"며 "처음엔 못할 거 같았지만, 작품 얘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이라면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시대 상황을 재현하기 위해 삐삐, 워크맨 등 소품에도 공을 들였다. 특히 박세리의 아빠 박홍일(류승수)의 창고에서 한윤석이 읽은 만화책에는 의미가 담겼다.
남궁 감독은 "'오디션'은 당시 특정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며 "지금처럼 남자, 여자 나뉘어져 있는 게 아닌 혼성에 대한 얘기였고, 로맨스도 학원물도 아닌 여러 장르가 섞여있는 만화라 골라봤다"고 말했다. 이어 "'짱'은 세리 책장에 순정만화가 많았는데, 세리가 윤석에게 권하는 설정이 배려라고 볼 수 있어 선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4곡의 창작곡에 대해선 "밴드들의 색을 온전히 담겼으면 했다"며 "큰 틀의 가이드만 제시했고, 불어 가사는 발음이 잘 어울려 음악 감독님이 작사를 하셨다"고 전했다.
특별 출연도 눈길을 끌었다. 박정민, 공유, 정유미가 등장해 존재감을 더했다.
"정민 배우와는 단편 영화 '세상의 끝'(2007)에서 함께 작업했어요. 그 단편을 보고 영화 '파수꾼'(2011)에 캐스팅됐다고 주장을 하고 있죠. 촬영할 당시에 '세상의 끝' 상영이 있었고, 작품 속 정민 배우 머리가 곱슬곱슬한 기억이 나 물어봤는데 흔쾌히 한다고 해서 정말 고마웠어요."
이어 "공유, 정유미 배우님은 부산 출신이기도 하고 저희 제작사에서 만든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에서 부부 역할을 하셔서 말씀 드려봤는데 흔쾌히 와주셨다"며 "저희 모두 행복해하며 촬영했다"고 강조했다.
"예쁜 장면 있었지만…차우민 비중 원래 이렇게 크지 않았어요"
121분의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 편집된 장면도 있었다.
남궁 감독은 "최종판이 감독판이긴하지만, 예쁜 장면들이 몇 개 있었다"며 "세리와 윤석이가 비를 맞고 잠시 쉬는 장면이 너무 예뻤지만 흐름상 없어도 됐다"고 말했다.
이어 "세리가 고백할 당시 김현(차우민)이 '내는 안 되겠나'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쿨하게 정리했다"며 "사실 김현의 비중은 크지 않았는데 계속 늘어났다. 그 인물도 매력있더라"고 웃었다.
박세리 가족에게 빚더미 설정이 있었던 점도 전했다. 당초 돈을 받아야 했지만, 그 돈을 받지 못해 일회용 카메라로 받았던 내용이란다.
그는 "고민을 꽤 했다"며 "우리의 추억을 돌아보고, 기분 좋게 만들고 싶은 영화였던 만큼 이 부분을 덜어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남궁 감독은 이번 작품을 촬영하며 거듭 행복을 느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나 DVD 가게에서 영화를 빌려와 친구들과 집에서 함께 보던 기분이 이 영화에 있는 거 같아요."
이어 "로맨스 맬로 장점을 알게 해준 작품"이라며 "마음이 힘들 때나 편안해지고 싶을 때마다 찾게 될 거 같다"고 강조했다.
한편, '고백의 역사'는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톱10 비영어 영화 부문 3위에 올랐으며 한국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일본, 터키, 멕시코, 모로코를 포함한 총 31개국 톱10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