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길거리에 있는 한 카페에서는 넷플릭스(Netflix) 오리지널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OST인 '골든(Golden)'이 흘러나왔다. 골목 곳곳의 공예품 가게를 돌며 팔찌를 구경하던 앨리스(30)는 "케데헌은 이탈리아에서도 유명한데, 정말 재밌게 봤다"며 "(영화 속) 사자보이즈를 보니 한국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저승사자도 생각났다"며 웃었다.
서울에 이른바 '케데헌 열풍'이 불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 6월 20일 공개된 이후 현재까지도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 OST곡인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의 정상 자리를 무려 한 달째 지키고 있다. 이날 서울 명소 곳곳에서 영화 속 한국 문화에 매료돼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갓'에 빠진 사람들
앨리스는 케데헌을 보고 한국의 한방 문화를 새롭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평소에도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한다"며 "케이팝은 물론이고 한국 역사나 샤머니즘 문화도 살짝 알고 있다"고도 했다. 출장 차 서울을 네 번째 찾았다는 그는 "서울은 정말 마법 같은 도시"라고 표현했다.
인사동에서 공예품 가게를 운영하는 구필서(61)씨는 영화에 나오는 파란색 까치호랑이 인형을 보여주며 "특히 이 인형을 찾는 분들이 많다. 오늘 아침만 해도 여섯 일곱 개 정도가 팔렸다"고 말했다. 진열대에는 호랑이 배지부터 주인공 루미와 진우가 교환했던 알록달록한 전통 팔찌도 나열돼 있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근처에는 케데헌에 나오는 '사자보이즈'처럼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화요일은 경복궁 휴관일이었음에도 광화문 근처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하는 관광객들이 지나다녔다. 서울시 움직이는 관광안내소 직원들도 길거리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광화문 월대 앞에서는 캐나다 출신 여행사 직원들을 만났다. 파란색 한복에 갓을 쓴 레이나는 한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걸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레이나는 "갓이나 한복 입고 싶어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 이렇게 우리가 직접 입고 사진을 촬영하고 콘텐츠를 만들어 올려 홍보한다"고 말했다. 경복궁역 근처의 한 한복 대여점 사장도 "저승사자 복장은 따로 없지만 주로 검은색 한복을 많이 찾으러 온다"며 "요즘 갓이 하루에 열댓 개 정도는 나간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 장소 '성지순례'
케데헌의 인기는 서울 강남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 6번 출구에서 나오면 높은 코엑스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 왼편으로는 직육면체 모양으로 입체적인 대형 전광판이 있다. 이곳은 케데헌 영화 속에서 주인공 그룹 헌트릭스의 '골든' 뮤직비디오가 최초로 공개되는 장소 중 하나다. 이날 오후 전광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온 솔리마르(34)의 손에는 코엑스 지도와 서울시 여행 지도가 들려 있었다. K드라마를 좋아하는 그는 홀로 서울을 방문했다고 한다. 솔리마르는 케데헌에 대해 "시간이 없어 아직 보지 못했다"면서도 "반드시 볼 '위시리스트'에 저장해뒀다"고 했다. 그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노래 '골든'은 알고 있었다. 그는 여행하면서 드라마에서 봤던 장소를 찾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대형 전광판)은 드라마에서 보고 찾아온 곳은 아닌데, 이상하게 낯이 익더라"며 "노래 골든 영상에서 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폴란드에서 온 마야(23)와 카샤(23)도 함께 여행 온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은 케데헌에 대해 "애니메이션도 좋고, 음악도 좋고, 캐릭터들도 좋다"며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카샤는 "원래 K팝과 K컬처를 좋아한다"며 "BTS, 엑소, 샤이니, 에이티즈" 등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영화에서 한국 문화가 아주 좋은 모습으로 그려져서 행복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곳이 영화 속 장소라는 것을 말해주자 "오 마이 갓"이라며 손뼉을 치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케데헌 열풍, 서울 넘어 전국으로
서울시 서울관광재단은 케데헌 열풍에 발을 맞춰 지난달 28일부터 '서울트립헌터스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남산타워, 북촌한옥마을, 낙산공원, 한강공원 등 영화 배경지를 미션 장소로 지정해 인증 사진을 올리면 스탬프를 주는 방식이다. 또 케데헌에 나오는 설렁탕, 핫도그, 김밥 등 음식 인증도 가능하다.
서울관광재단 관계자는 "이날 기준 1200~1300명 정도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스탬프 투어에 참여했다"며 "케데헌 배경이 된 명소 지도를 보고 이동하는데, 사람들이 지도 자체도 기념품으로 생각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난 7월 한 달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달(110만 명) 대비 23.1% 증가한 136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찍었다. 티맵모빌리티가 올해 7~8월 주행데이터를 분석해 발표한 'TMAP 이동 트렌드로 본 K-헤리티지'를 보면 올여름 국립중앙박물관 방문은 케데헌 굿즈 열풍으로 지난해 대비 122.7%가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절·사찰은 45.2%, 재래시장·종합시장 등 전통시장 방문도 28%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케데헌 열풍을 관광 활성화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지난 7일 서울 광진구 뚝섬한강공원에서 케데헌을 주제로 열린 '2025 한강 불빛 공연'에서 드론들이 케데헌 주인공들의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 오는 14일에는 서울광장에서 '2025 서울 헌터스 페스티벌'도 열릴 예정이다.
오는 10월 25일부터 26일 경북 김천시에서 열리는 '2025 김천 김밥축제'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영화 속 주인공 루미가 김밥 한 줄을 통째로 베어 무는 장면이 해외 팬들에게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김천 김밥축제는 지난해 처음 열렸는데, 김천시는 올해 축제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유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