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물을 받았는데 아침에 보니 전부 흙탕물이 돼버렸습니다."
9일 오전 7시쯤 찾은 강릉 초당동의 한 아파트. 전날 밤 부랴부랴 집안 곳곳에 물을 받아놨던 주민 이주연(58)씨는 욕조에 가득한 흙탕물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어젯밤 단수 직전에 오늘 씻을 물을 받아놨었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흙탕물 천지가 됐다"며 "갑자기 물이 끊겨서 생활 자체가 막막한데 참담한 지경이다. 이제는 재앙 수준"이라고 호소했다.
배수구가 막힐 수 있다는 걱정에 욕조 밖으로 물을 퍼나르던 이씨가 급수 시간에 맞춰 물을 틀자 누런 흙탕물이 쏟아져 나왔고 몇 분이 지나서야 투명한 색으로 바뀌었다.
깨끗한 물로 씻을 수 있다는 안도에 한시름을 놓았던 것도 잠시, 물에서 흙 비린내가 진동하면서 이씨는 결국 시에서 배급받은 물로 부랴부랴 씻은 뒤 집을 나섰다.
400여 세대가 거주하는 강릉 홍제동의 한 아파트의 경우 전날 급수 시간이 하루 4시간에서 30분으로 갑작스럽게 단축되면서 주민들이 사실상 단수 사태에 직면했다.
해당 아파트 공고문에 따르면 아파트 측은 전날까지 물 공급시간을 출·퇴근 시간에 맞춰 오전 6시 30분부터 8시까지, 오후 6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총 4시간을 공지했으나 저수조 용량 부족으로 오전 7시부터 7시 30분까지로 변경했다.
이날 찾은 한 쌍둥이 육아 가정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급수 일정 변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뭄 이후 생수로 설거지를 하거나 그릇에 비닐을 싸서 사용하기까지 불편함은 감수해왔지만 하루 30분 급수 조치로 생활이 불가능한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5명의 가족이 함께 살고 있어 하루라도 빨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급수 시간 이내 세탁기 조차 돌릴 수 없는 현실에 정씨 부부는 인근 동네로 원정 빨래를 갈 수 밖에 없게 됐다.
정씨는 "화장실이나 싱크대는 생수로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지만 세탁기가 문제"라며 "최소 하루 2시간은 물이 나와야 세탁기를 돌릴 수 있는데 이제는 주문진 빨래방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갑작스러운 단수 상황에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으로는 수십 통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일부 주민은 직원에게 "당장 씻고 나가야하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라며 심한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아파트 측은 저수조 용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해당 아파트의 경우 200톤 규모의 저수조 2곳을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저수량이 단 '26.1%'로 저수위 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아파트 관계자는 "이미 저수량 위험 수위인 30%를 크게 밑도는 상황에서 만약 25%까지 떨어질 경우 저수관에 공기가 차면서 저장고 자체가 고장날 수 있어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말했다.
저수조 고장으로 자칫 아파트 전체의 급수가 차단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강릉시는 이날 오전 해당 아파트 저수조에 물을 공급하기로 한 상태로 전해졌다.
한편 최악의 가뭄 사태를 맞고 있는 강릉지역의 생활용수 87%를 공급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이날 오전 12.2%로(평년 70.9%) 전날 12.4% 보다 0.2%p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