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국밥에 전기료 오를라"…발칵 뒤집힌 에너지업계

에너지 탐내던 환경부…원전 수출 빼고 뺏긴 산업부
전기·가스 분리, 원전 수출·운영 분리
정부는 '시너지' 기대하지만…업계 "기형적 나눠먹기"
이재명표 정책들 펼치려면 안정적 전력 공급 필수
개편안 시행되면 전기 요금 인상 불가피


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당정대)이 발표한 산업통상자원부 개편안에 대해 에너지 분야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산업부가 가지고 있었던 에너지 정책 기능을 환경부로 이관해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로 개편하는 이번 안에 대해 상당수 업계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조직 설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개편안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나 정책 방향과도 상충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이 대통령은 '에너지믹스'를 전면에 내걸고 복수 부처에 흩어진 기후·에너지 관련 업무를 통합하기 위한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약속했지만, 이번 개편안에 따라 오히려 업무가 인위적으로 분산돼 선진국 트렌드와 거꾸로 가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에너지 쪼갠 제조업 강국 없어…나눠먹기식 개편"

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에너지 전문가들이 이번 개편안에 대해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산업·에너지 기능 분리 △전기·가스 분리 △원전 수출·운영 분리다.

산업부 2차관 산하에 있던 에너지정책실 기능(에너지 산업 정책)은 기후부가 가져간다. 원전산업정책국을 포함한 에너지정책관·전력정책관·재생에너지관·수소경제정책관 등 주요 에너지 관련한 업무가 환경부로 이관되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 같은 산업부 산하 전력 공기업들도 기후부 밑으로 가게 된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에너지·기후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의도로 산업부 개편에 나섰지만, 석유·가스·석탄 등 전통 에너지 관리 기능만 산업통상자원부 잔류하면서 에너지 정책이 이원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가스 등 화석에너지는 산업부가, 재생에너지만 환경부가 맡는 것은 자리 나눠먹기식에 불과하다는 인식도 없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전기 사용량이 많은 제조업 강국에서는 에너지와 환경부를 통합한 사례가 없다시피 하다. 독일도 에너지와 환경부 부처 기능을 통합했다 결국 다시 원상 복구했다.

한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전기와 가스를 부처별로 분리해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 비중을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지만, 실제 운영 비중은 30% 가까이 된다. 전력 생산의 핵심 자원이지만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장기 계약을 할 수 없는 만큼 높은 가격에 가스를 사오는 불합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산업부 2차관이 어렵사리 조율을 해왔던 게 현실이다. 이번 개편안은 이같은 상황을 더욱 꼬이게 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유승훈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선진국들은 전기와 가스의 통합 관리를 더 강조하는 것이 요즘 분위기인데, 두 분야를 떨어뜨려놓는 개편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소련과 미국이 얄타 회담에서 남북을 갈라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상한 구조"라고 비판했다.

원전 수출하자더니…기후에너지부 신설 의도 묻히게 돼

한전 제공

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은 원전 수출은 산업부가, 운영 및 건설은 기후부가 맡는 구조도 기형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존 여권이 추구하던 감원전 노선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는 '에너지믹스' 전략으로 선회한 바 있다. 전력 수요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합쳐 수요를 충당하겠다는 뜻이다.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전력 집약 산업의 성장은 물론 AI·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는 정책들을 고려해 현실적으로 접근한 결과다.

아울러 여권을 중심으로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소형모듈원자로(SMR)을 만들어 전 세계에 제일 많이 팔아야 한다"고 하는 등 원전 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강조해 오기도 했다.

전력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핵심 자원이 될 원전 운영 및 건설을 기후부가 맡게 되면서 신규 원전 건설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이는 이 대통령의 당초 구상과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원안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과 환경부의 기후 기능을 통합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는 것이었다. 기후·에너지 관련 업무를 개편해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산업부와 환경부를 그대로 둔 채 기후에너지부를 또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더해 산업과 에너지를 분리하면 비효율적이라는 의견이 국정기획위원회와 여권 안에서 커져 갔다. 이번 개편안을 놓고 에너지 기능을 가져오고 싶은 환경부 일각의 의도만 부각되면서 역으로 더 비효율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민주당 소속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지난 3일 비공개 정책 의원총회에서 에너지 관련 조직을 분리하는 개편에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산중위 소속 의원 중 김성환 환경부장관만 유일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기료 인상 불가피…그리드플레이션 현실화 될라

한편 업계 전문가들은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이번 개편안이 초래할 가장 큰 잠재적 문제점으로 보고 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환경부가 기후부로 재편되면 에너지 정책의 무게중심이 '탄소 중립'으로 옮겨지게 되고 전기·가스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 스스로 지난달 14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전기 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기까지 했다.

이 가운데 전기료 인상에 따른 '그리드플레이션'은 이번 개편안의 최대 부작용으로 꼽힌다. 그리드플레이션은 전력망(grid)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전력망 투자비와 전기요금 인상이 연쇄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려 발생하는 구조적 인플레이션 현상을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전기 요금이 오르면 물을 정제하는 등 기본적인 산업 활동에 따른 비용도 동반 상승한다. 원재료값이 오르면 운송료는 올라가고 수출은 둔화하면서 기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결국 기업은 최종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들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게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수입하던 주요 유럽 국가의 전력·난방비 인플레이션이 경제 전반에 확산된 것이 그 예다.

단국대 문주현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이번 개편안이 시행되면) 그리드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히 대단히 크다"며 "공공요금이 오르면 전반적인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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