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묘하게도 집권을 시작한 시기가 거의 같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 당 대표자회에서 당 제1비서로 추대되며 권력을 공식 승계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같은 해 11월 당 총서기직에 오르면서 자신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집권의 시작이 같다면 동질감도 느낄 법하지만 김 위원장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인식은 그렇게 탐탁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당 총서기에 이어 2013년 3월 국가주석에 오르기 한 달 전 김 위원장은 3차 핵실험을 감행해 국제적 부담을 야기했다. 1년 뒤에는 북한에서 중국식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던 친중파 장성택을 처형했고, 2017년 2월엔 중국 당국과 연결되는 친형 김정남도 암살했다.
이에 중국 지도부는 김 위원장이 인접국에서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이며, 외교의 주력도 전통적 우방국인 북한이 아니라 한국으로 돌렸다. 그 결과가 지난 2014년 7월 북한에 앞선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이다. 그 다음 해 9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의 이른바 '전승 70주년' 열병식을 참관하기위해 처음으로 천안문 망루에 오르기도 했다.
북한이 핵 개발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가속화하고 중국은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 북·중 양국의 갈등도 심화됐다. 그런데 이런 흐름을 완전히 뒤바꾼 계기가 바로 2018년 초의 상황이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방침을 밝힌 뒤 남북,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이 고조되자 북·중 정상회담의 길이 전격적으로 열렸다. 김 위원장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그해 3월 25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이어 상가포르 1차 북미정상회담을 역시 한 달 앞두고 5월 7일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났다. 2019년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한 달 반 앞두고도 김 위원장은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회담을 했다. 북미정상회담은 중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였던 것이다.
김 위원장이 3일 중국의 전승 80주년 열병식을 참관하기로 결정하기 전에도 북·중 관계가 그렇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파병 등 러시아와의 밀착 속에 중국과는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터져나왔다.
김 위원장이 지난 2018년 5월 중국 다롄을 방문했을 때 시 주석과 산책을 하며 친교를 나눈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한 발자국 동판을 중국 당국이 지난해 어느 시점인가 제거하고 콘크리트로 덮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김 위원장이 올해 정접협정 체결일을 맞아 6.25전쟁 참전 중국군을 추모하는 우의탑을 방문했으나, 이에 대한 보도가 겨우 4문장이었다는 사실도 양국간에 벌어진 틈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관세문제로 더 심화되고, 한미일 3국의 공조가 한일, 한미정상회담으로 확인되자 북·중간에는 다시 새로운 국면이 조성됐다.
시 주석이 3일 전승 80주년 열병식에 김 위원장을 초청했고, 김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여 다자외교 무대에 처음 서는 어려운 결정을 한 것이다. 천안문 망루 위에서 시 주석의 양 옆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함께 서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진영 결속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장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방중 직전 미사일 생산기지 방문, 기획메시지 발신
김 위원장이 중국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인 31일 국경 지역 자강도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생산기지를 방문한 것은 이번 중국 방문의 목적과 관련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이른바 '흐름식 미사일자동화 생산 공정 체계'를 살펴봤는데,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각종 전술 미사일의 대량생산 능력을 과시한 셈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전승절 방문 전에 이런 행보를 한 것은 매우 의도된 기획 메시지"라며 "핵무기를 다량 배치해 운용할 수 있는 중견 핵보유국이자 중국,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전략국가임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같은 반열의 핵 국가라는 사실을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확인받고, 이를 한국과 미국에도 과시하며 '비핵화는 불가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한국에 선포한 적대적 2국가 기조를 이번 다자외교 무대에서 외교적으로 실행하는 측면도 있다.
김 위원장은 아울러 지난 2018년 상황처럼 중국과의 진영 결속을 다지며 이를 토대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준비할 가능성도 있다. 시 주석 입장에서는 미국과 회담에 나서는 북한을 미리 관리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은 이처럼 중국과 북한의 지정학적 연계로 인해 상황에 따라 서로를 활용하는 관계적 특성을 보여왔다. 특히 이번 방중을 계기로 양국 간에는 경제 분야에서의 협력이 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대외무역의 95%를 차지하는 중국은 영향력의 면에서 한국 이상으로 두려운 존재이다. 북한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강화될 때에는 '일본은 백년 숙적, 중국은 천년 숙적'임을 강조하는 반중 교육이 주민들을 상대로 강도 높게 실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