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텍쥐페리의 책 '어린왕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지 않는다고.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대신 '그 앤 나이가 몇이니', '형제는 몇이니'라고 묻는다. 어른들은 항상 숫자를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풋풋했던 10대의 시간이 있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에 가고,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앞뒤 재지 않고 친구들을 만나던 평범하면서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일상' 말이다.
지난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는 그런 열아홉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언제부턴가 꼬여버린 곱슬머리처럼 자신의 고백 역사도 엉켰다고 믿는 박세리(신은수)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김현(차우민)을 짝사랑한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전학해 온 한윤석(공명)을 도와주게 되면서 '서울 매직 스트레이트'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친구들과 함께 학알을 접는 등 일생일대의 고백을 준비한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학여행에서 김현과 단둘이 마주한 박세리는 마침내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항상 내가 변해야 누군가가 내(나)를 좋아할 수 있을 줄 알았거든. 막 뭘 더 잘해야 될 거 같고. 더 예뻐져야 할 거 같고. 근데 내 가(걔) 앞에선 그런 생각이 하나도 안 든다."
소품·의상·음악 등 시대상 반영…"행복에 관한 이야기"
작품은 1998년 부산을 배경으로, 당시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촬영은 부산에서 진행됐으며, 광안대교가 들어서기 전 광안리의 모습을 구현했다.
삐삐, 워크맨, 엠씨스퀘어 등 당시 유행하던 소품은 물론, 수능생들의 필수품 '수험생 코트', 인기그룹 SES, 핑클 등의 헤어스타일까지 선보이며 시대적 공감을 더한다.
음악도 당시 유행한 SES 데뷔곡 'I'm Your Girl', 자자의 '버스 안에서' 등이 담겼으며, 작품 속 창작곡 또한 박세리의 심리를 드러내며 눈길을 끈다.
배우 신은수는 극 중 부산 출신의 박세리를 표현하기 위해 부산 사투리를 따로 공부했다. 별도의 교육과 개인 연습까지 병행해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남궁선 감독은 작품에 대해 "행복에 관한 이야기"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주는 사람들과 함께 쌓아가는 소소한 시간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경험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물론 낭만만 가득한 시대는 아니었다. 극 중 수학여행에서 반장 상철(천명우)이 부모님께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처럼 당시 사회는 외환위기 여파로 힘겨운 시기였다.
실제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연예 프로그램이 축소되던 시대였던 만큼,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조금 더 간접적으로 반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박세리와 캐디'라는 졸업 촬영 설정 또한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작품은 함께 걷기만 해도 웃음이 터졌던 청춘들의 시간을 잘 담아냈다.
무엇보다 극 중 박세리를 향해 "고마쎄리"라고 별명을 외치는 마솔지(최규리), 방하영(이소이), 정다울(손희림), 이른바 '솔.방.울'과 백성래(윤상현)의 존재는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여기에 특별 출연한 배우들의 활약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들의 고백은 과연 성공할지.
넷플릭스 영화 '고백의 역사'. 남궁선 감독 연출. 공명·신은수·차우민·윤상현. 121분.
한줄평: 그렇게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