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정부 총지출 규모를 8.1%나 늘리며 예산 700조 원대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정부 재정의 역할을 감안해 지출을 늘린 대신 GDP(국내총생산)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4.0%까지 감내하기로 결정하는 등, 적극적 확장 재정 기조를 분명히 드러냈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열어 '회복과 성장을 위한 2026년도 예산안'을 의결, 발표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진행한 언론브리핑을 통해 내년도 예산안을 "향후 5년간의 국정 방향을 보여주는 이정표이자 디딤돌"이라고 소개했다.
구 부총리는 "지난 정부의 감세정책과 경기 둔화로 100조 원 수준의 세수가 결손되는 등 세수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며 "세수 결손을 충당하기 위해 기금 여유재원을 무리하게 끌어다 씀으로써 재정 자체의 경기 대응 여력도 상당 부분 소진된 상황"이라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어렵게 되살린 회복의 불씨를 성장의 불꽃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며 "내년 예산안에서 줄일 것은 대폭 줄이거나 없애고 해야 할 일에는 과감히 투자하여 성과 중심의 재정 운용에 집중했다"고 강조했다.
"지금 돈 안 쓰면 안 된다" 정부 총지출 8.1% 늘린 728조…尹 감세 감안하면 '예산의 정상화'일 수도
이번 예산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정부 지출 증가폭이다.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총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8.1%(54조 7천억 원)나 늘린 728조 원으로 편성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초혁신경제에 투자하고, 사회적약자를 지원해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도록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총지출 증가율을 대폭 높였다고 해명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AI(인공지능) 대전환 및 신산업 성장을 위한 R&D 혁신을 앞당기는 한편, 지방·민생·사회적 약자를 아우르는 '모두의 성장'을 병행할 방침이다. 또 재난 예방 및 국방 강화 등 국민 안전 분야에도 힘을 쏟는다.
구 부총리는 "지난 정부에서 지출증가율을 낮춰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잠재성장률이 더 떨어지고 실제 그만큼 성장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하며 "소극적 재정 운용이 성장률을 낮추고, 세입 기반을 축소시키고 성장률을 더 낮출 수 있는 악순환으로 빠져서는 안 된다"며 윤석열 정부 시절의 긴축 재정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이어 "현 시점은 AI 대전환 시대다. 여기에서 뒤진다면 미래가 없다"며 "내년 예산을 늘리되 지출 구조조정을 예년보다 더 많이 하고, 그 여력을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해서 경제 성장이 다소 높아지고, 그래서 세입 여건이 좋아지고 재정건전성이 확보되는 적극적인 의미의 선순환 구조를 생각했다"고 구상을 밝혔다.
다만 구 부총리의 설명대로 윤석열 정부 시절 총지출 증가폭이 2023년 5.1%에서 △2024년 2.8% △2025년 2.5%로 뚝 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지출 확대를 오히려 정부 예산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도 해석할 수 있다. 윤 정부 시절 과도한 감세 정책으로 재정이 위축된데다 2년 연속 '세수펑크'까지 일어나면서, 당시 정부가 경기 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앞서 편성·시행된 추가경정예산 지출 규모와 비교하면 지출 증가율은 3.5%로 떨어진다. 이에 대해 기재부 유병서 예산실장도 "오히려 경기 대응 쪽에서는 조금 미흡하다고 얘기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유 실장은 "당초 중기계획에는 내년에 4.6% 늘리게 됐고, 이것을 전제로 KDI, 한국은행이 성장률을 1.56%로 판단했다"며 "내년 지출증가율을 8%는 늘려야 잠재성장률 수준까지 올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증가율을 잡았다"고 밝혔다.
'정부 가계부' 관리재정수지 GDP 대비 4.0% 적자 불가피…채무비율도 50% 넘어
12.3 내란 사태에 따른 정치적 리스크가 해결되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정상회담이 고비를 넘기면서 내수를 중심으로 경기 회복세를 기대되는 가운데, 국세수입은 올해 본예산보다 7조 8천억 원(2.0%) 증가한 390조 2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세입 경정 10조 3천억 원 등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과 비교하면 18조 1천억 원(4.9%) 증가할 전망이다.
세수가 주로 걷히는 3대 세목을 나눠 살펴보면, 윤석열 정부 시절 세수결손을 빚었던 원인인 법인세 수입은 올해 기업실적이 호조세를 유지하면서 올해 본예산 대비 3조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소득세 수입 역시 올해 추경예산 대비 5조 3천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회복에 따라 종합소득세 납부가 늘고, 물가에 따라 임금이 오르고 경제 규모가 커지며 취업자가 증가하면서 근로소득세도 자연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도 내년부터 내수가 회복되면서 추경예산 대비 3조 2천억 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세외수입은 사회보장성기금 수입 증가 등에 힘입어 14조 8천억 원 늘어나, 정부의 총수입이 올해보다 3.5% 증가한 674조 2천억 원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이처럼 세수가 증가하더라도 지출 증가폭이 훨씬 더 커서,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가 GDP 대비 2.0%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특히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 흑자분을 빼 나라 살림살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GDP 대비 4.0% 적자를 기록해, 전년 본예산보다 적자폭이 1.2%p 커질 전망이다.
이렇게 정부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나라 빚인 국가채무 규모도 141조 8천억 원 급증한 1415조 2천억 원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1400조를 넘게 됐다. GDP와 비교하면 올해보다 3.5%p 높은 51.6%로, 50%를 넘어선다.
이처럼 재정 수요가 급증한 점을 고려해 정부는 지출 구조조정에도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기존 사업을 재구조화하고 관례적으로 진행하던 각종 연례 행사, 행정경비 등 경상비도 구조조정해 역대 최고 수준인 27조 원을 아끼기로 했다.
그 결과 법으로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의무지출 규모는 내년에 364조 8천억 원, 이 외에 정부가 지출 규모를 조절할 수 있는 재량지출 규모는 340조 원 편성돼 의무지출 증가폭(9.4%)보다 재량지출 증가폭(10.3%)이 더 컸다. 전제 재정지출에서도 각각 53.3%, 46.7%씩 비중을 차지했는데, 올해 본예산에서 의무지출 비중이 54.2%, 재정지출 비중이 45.8%였던 것을 감안하면 의무지출 비중이 감소한 것이다.
다만 의무지출 중 가장 비중이 크면서, 초·중·고 학령인구가 감소한 탓에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히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자체에는 '메스'를 대지 않기로 했다.
구 부총리는 "오히려 더 재원을 이전해 달라는 요구가 많은 만큼 지방재정이나 지방교육재정이 효율적으로 운용이 되어서 생산성을 높인다면 효율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현재로서는 그런 부분까지 재원을 구조조정하는 계획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