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의무 기피로 23년 동안 입국이 금지된 가수 유승준(48·미국 이름 스티븐 승준 유)씨 한국 입국 비자를 발급해달라며 제기한 세 번째 행정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다만 LA 총영사관은 앞서 두 차례 법원 판결에도 '병역 의무 면탈은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비자 발급을 재차 거부한 터라, 이번에도 입국은 불확실한 상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이정원 부장판사)는 28일 유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사증(비자)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를 입국금지해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공익과 사익 간 비교형량을 해볼 때 피해 정도가 더 커서 비례원칙에 위반된다"며 "(비자 발급) 거부 처분은 처분 사유가 존재하지 않고, 재량권의 일탈 남용으로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의 과거 행위가 적절했다고 판단하는 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또 "입국이 허가돼 원고가 국내에서 체류하게 되더라도 격동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성숙해진 우리 국민들의 비판적 의식 수준에 비춰 원고의 존재나 활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존립이나 안전에 위해를 가할 우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유명 가수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유씨는 당시 군에 입대하겠다고 밝혔지만, 돌연 병역 의무를 피하려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가 2002년 한국 입국이 제한됐다.
그는 38세가 된 2015년 8월 LA 총영사관에 재외동포(F-4) 체류 자격으로 비자 발급을 신청했다. 옛 재외동포법은 병역 기피 목적으로 국적을 상실했더라도 38세가 되면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게 했다.
재외동포법은 2018년 이후 개정됐고, 병역기피자의 비자 발급에 '법무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유씨의 경우 법 개정 전 사안이기 때문에 옛 재외동포법 적용 대상이 된 것이다.
재판부는 유씨의 병역 의무 기피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명확히 하면서도, 현재까지 비자 발급이 거부되는 건 위법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자 발급을 거부한 곳은 LA 총영사관이다. LA 총영사관을 상대로한 유씨의 소송은 이번이 세 번째다.
유씨는 2015년 신청한 비자 발급을 거부 당하자, 첫 소송을 냈고 파기환송심과 재상고심 끝에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LA 총영사관은 "유씨의 병역의무 면탈은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발급을 재차 거부했다.
이에 유씨는 2020년 10월 두 번째 소송을 냈고, 2023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LA 총영사관은 지난해 6월 또다시 비자 발급을 거부했고, 유씨는 그해 9월 세 번째 소송을 낸 것이다.
세 번째 판결이 확정됐지만 비자 발급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LA 총영사관은 "판결 취지는 비자 발급 거부 과정의 절차적 하자이지, 비자 발급을 명하는 취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유지해오기도 했다.
유씨 비자 발급 문제는 지난해 10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LA 총영사관 국정감사에서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차지호 위원은 총영사관이 유 씨의 비자 발급을 계속 거부한 결정에 대해 "민감한 사항이라는 건 이해가 되지만, 유 씨가 외국인이 아니고 재외동포이지 않나"라며 "총영사관이 어떤 법률적인 판단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의했고, 김영완 총영사는 "우리 재외동포법에 명백하게 나와 있다.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국적을 이탈한 경우"라며 "그(유승준) 사례는 그 규정의 대상이 되는 사례"라고 밝혔다.
김 총영사는 또 "비자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입국이 금지되어 있지 않아야 하고, 입국 금지는 법무부에서 결정한다"며 "대법원 판결 이후 법무부에 입국 금지 여부를 확인했고, 법무부로부터 유지한다는 답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유씨의 재외동포 자격에도 해석의 문제가 있다면서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뒤 관계 부처의 의견과, 비례의 원칙에 맞는지에 대한 자체적인 판단, 관련 법령 등을 전체적으로 봐서 불허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유씨 측은 이번에 법무부를 상대로 2002년 입국금지 결정의 부존재·무효를 확인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법무부 조치는 내부적 결정에 불과해 행정소송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했다.
유씨 측은 이번 소송에서 '간접강제'를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이번 거부 처분이 취소되더라도 피고가 그 의무를 임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없음이 명백하다고 볼 수 없어 부적법하다"며 각하하기도 했다. 간접강제란 거부처분 취소 등의 소송에서 승소 판결이 났는데도 행정청이 이를 일정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으면 지연 기간에 따라 일정한 배상을 명하거나 즉시 손해배상을 하도록 명령하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