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학살 국가 폭력 규정 '여순사건'…경찰은 여전히 '반란'으로

전북경찰청 홍보관에 '여순반란'이라 기재하고 반란 진압 성과 홍보
1기 진화위서 국가폭력 규정된 여순사건, 특별법 따라 진상규명 작업 중
전북경찰청 "2007년 게시 후 인지조차 못해…빠른 시일내에 수정하겠다"

전북경찰청 전경. 심동훈 기자

전북경찰청이 정부 수립 초기 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군인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을 학살해 진실화해위가 국가 폭력이라 규정한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을 여순반란으로 표기해 놓고 있어 역사 왜곡 논란이 제기된다.
 
27일 CBS노컷뉴스 확인 결과 전북 경찰은 전북경찰청 1층 홍보관에 정부 수립 초기의 전북 경찰을 소개하며 '여순반란 공비를 수색하는 경찰'이라는 사진을 게시해놨다.
 
사진과 함께 기록된 안내문에는 '도내에서뿐만 아니라 타지방에서 일어난 좌익 세력의 반란과 소요에 대한 원정 진압에 나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고 기록하는 등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규정하며 이를 진압한 전북 경찰의 업적을 홍보하고 있다.
 
전북경찰청 1층 홍보관에 게재된 정부 수립 초기의 전북경찰의 업적을 홍보하는 게시물. '여순반란 공비를 수색하는 경찰(1949)'라고 적힌 사진이 눈에 띈다. 심동훈 기자

여순사건은 정부 수립의 초기 단계에 여수에서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 4·3사건'진압 명령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48년 10월 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 1일까지 여수·순천 지역을 비롯해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에서 무력 충돌 및 이의 진압 등 혼란스런 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
 
지난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여순사건을 국가가 민간인을 부당하게 학살한 '국가 폭력'으로 규정했다.
 
국회도 지난 2021년 사건 진상규명 등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해 여·야 합의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볍(여순사건법)을 제정했고, 한 차례 개정을 거쳐 올해 4월부터 시행됐다.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전북경찰청이 여순사건을 '좌익세력의 반란'이나 '여순반란' 등으로 기록하고 이를 홍보물로 게시하고 있는 것은 특별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특히 여순사건을 '반란'이라 표기하는 태도는 전북경찰청이 故차일혁 경무관을 '호국영웅'이라 칭하며 동상까지 세워 기리는 태도와는 모순이다.

故차일혁 경무관은 빨치산 토벌을 위해 지리산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절을 태우는 건 반나절이면 충분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며 거부하고 생포한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며 전향시켰던 인물이다.
 
전북경찰청 청사 내에 비치된 故차일혁 경무관 동상. 차 경무관은 생포한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빨치산 토벌을 위해 지리산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거부하는 등 공을 인정받아 경찰영웅으로 선정됐다. 심동훈 기자

또한 극우 성향 역사 단체인 리박스쿨이 발간한 도서에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기재하고, 극우 역사관을 가진 단체들이 여순사건을 여순반란으로 규정하고 있는 점을 비춰볼 때, 극우 편향 역사관이 투영됐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여순항쟁 연구자 주철희 박사는 "여순사건을 여순반란이라 하는 것은 경찰들이 민간인을 학살했던 자신의 과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규정한 것"이라며 "당시 친일 경찰 출신이 다수였던 경찰들이 군인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족적 감정을 가진 민간인을 탄압하거나 학살하는 일들이 잦았다"고 말했다.
 
"국가가 민간인을 다수 학살해 국가 폭력으로 규정된 여순사건을 반란이라며 정당화하는 태도는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군부독재 정권이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평가하며 추켜세운 것과 맥을 나란히 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반란으로 규정하려면 체제를 전복시키거나 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14연대는 제주도민, 즉 자국민을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에 저항했기에 여순사건을 '여순 항쟁'으로 다시 명명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최경필 여수·순천 10·19항쟁 범국민연대 사무처장도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경찰에서 여순사건을 '반란'으로 표기하고 있는 건 기가 찰 노릇이다"라며 "특별법을 통해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가 진상규명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순반란' 표기는 국가 폭력을 규명하려는 취지와 완전히 어긋나기에 반드시 사과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사안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속히 해당 문구를 교체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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