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다는데?"…매일 5시 귀가하던 아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서울 강서구 맨홀서 작업하다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A씨
사고 당일 새벽 어머니 "오늘 비 온다는데?" 걱정하기도
사고 전날 A씨, 통화에서 "비가 오전에도 오는 것 같아"
'돌발강우 시 하수관로 내부 안전작업 관리 매뉴얼' 적용
강수확률 50% 이상이거나 먹구름 보이면 작업 중단해야
"지자체가 서류 외 현장점검은 사실상 관리하지 않는 점도 문제"

지난 25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맨홀 안에서 보수 공사를 하다 목숨을 잃은 A씨의 빈소가 마련된 모습. 송선교 기자
26일 오전 11시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목놓아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상복도 입지 못한 채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하나뿐인 아들인데…"란 말만 되풀이했다.

지난 25일 오전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맨홀 안에서 보수 공사를 하던 작업자 A(46)씨가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먹구름에서 마구 쏟아진 폭우에 맨홀 내부의 물이 순식간에 불어났고, 급류에 휩쓸린 A씨는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맨홀 작업 중 급류에 휩쓸려 숨져…"부지런한 아이였는데"

"막내여서 늘 1시간씩 일찍 출근하는 부지런한 아이였어요"

어머니와 단둘이 반지하 방에서 살던 A씨는 작업이 있는 날이면 항상 새벽 5시쯤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고 한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A씨의 어머니는 사고 당일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나눈 아들과의 인사가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25일 오전 8시 38분쯤 서울지하철 9호선 등촌역 인근 한 공원에서 맨홀 보수 공사를 하던 A씨가 맨홀 내부로 휩쓸려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함께 작업하던 노동자 4명은 무사히 빠져나왔지만, A씨는 1시간 정도가 지나 실종 위치에서 약 1㎞ 떨어진 가양빗물펌프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사고 현장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A씨는 맨홀 안쪽 벽면을 깎고 다듬는 일을 하는 이른바 '치핑팀'이었다. 사고 당시 치핑 팀원 5명 중 A씨는 출입구로 삼은 맨홀에서부터 가장 안쪽에 있었다고 한다. 이날 빈소를 찾은 해당 공사 관계자는 "내가 현장에 있지는 않았다"면서도 "150m 거리를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물이 너무 빠르게 차오른 것 같다. 성인 목 높이까지 차올랐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어 "다 같이 나오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나오던 A가 손을 놓쳤고, 급류에 휩쓸려 간 것 같다"면서 "A씨랑 6년 넘게 일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A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비통한 심정이다. A씨의 어머니는 아들과의 마지막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A씨가 현관문을 나가기 전, 어머니는 한 가지 걱정이 떠올랐다고 했다. "비 온다는데, 어떻게 해?" 어머니의 말에 A씨는 "12시쯤 온대. 그 전에 (작업)할 것 같아"라고 답했다. 어머니는 "그럼 점심시간이네"라며 웃었다. A씨도 "그렇지"라며 맞장구치며 문을 나섰다고 한다. 이게 이 모자의 마지막 대화였다.

A씨는 일을 나간 날이면 매번 오후 5시쯤에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 그 시간쯤 어머니에게 돌아온 것은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 한 통뿐이었다.

조카의 부검을 보고 빈소로 온 외삼촌은 "부검 결과가 익사일 것 같다"며 슬퍼하면서도 "(몸에) 상처가 많이 났더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A씨의 사촌누나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비가 오는 날에 작업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우선 이번 주 초에 비가 온다는 예보는 지난 주부터 있었다"며 "당일 비 예보가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왜 작업을 진행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청 직원도, 회사 사람도 그 누구도 우리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먹구름' 확인 시 즉각 중단인데…현장 관리자도 없었다?

25일 서울 강서구 가양빗물펌프장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수습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공사는 강서구청이 발주한 '등촌동 사각형거 보수공사'다. 사각형 모양의 대형 하수관인 '하수박스'에 들어가 보수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A씨는 구청이 도급계약을 맺은 건설업체와 일용직 계약 관계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작업에는 서울시 '돌발강우 시 하수관로 내부 안전작업 관리 매뉴얼'이 적용된다는 게 서울시 측의 설명이다. 매뉴얼에 따르면 작업자는 안전고리가 부착된 안전조끼를 착용하고 돌발 강우에 대비해 점멸 작업등, 무전기 등을 휴대해야 한다. 돌발 강우가 쏟아지면 대피 사다리나 지상 크레인을 사용해 신속하게 탈출하고 안전관리책임자는 탈출이 어렵다면 119에 즉시 신고하게 돼 있다.

특히 매뉴얼의 안전작업 조치사항 이행 중 단계별 절차를 보면, '작업 수행' 단계에는 '기상청 일기예보를 스마트폰을 이용해 실시간 수시확인'해야 한다. 또 '강수확률이 50% 이상의 경우나 육안으로 하늘에 먹구름 확인 시 작업 중단 후 즉시 철수'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사고 당일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가 예보돼 있었다. 당시 기상청은 중부지방은 대체로 흐리고 오전부터 수도권에도 비가 내리겠다고 했다.

심지어 사고 전날, A씨도 당일 비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유족 측이 공개한 A씨 통화 녹취에 따르면, 사고 전날 저녁 공사 관계자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날 공사가 어떻게 될 것 같은지를 물었다. 이에 A씨는 "연락이 안 왔으면 출근"이라며 "비가 원래 저녁에 오는 건데 오전에도 오는 것 같다", "등촌에는 오전에 1~2㎜씩 비 오는 걸로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 오면 잠깐 나와 있다가 다시 들어가는 식으로 (작업)했다"며 "내일 보자"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결국 25일 오전 A씨는 작업을 하러 맨홀에 들어갔고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나오지 못했다.

한편 사고 당일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공사를 담당하는 구청 직원은 사고가 일어났다는 연락을 받고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다. 공사를 관리하는 감리 직원 역시 없었다. 구청은 이에 대해 "현장이 여러 군데라 시간대별로 옮겨 다닌다. 현장에 처음부터 끝까지 감리가 상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와 경찰 등 수사 당국은 해당 공사의 관련자들을 불러 정확한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또 시공사가 제출한 시공 계획서의 안전 관리 계획 등을 살펴볼 방침이다.

정부 현장점검에도…맨홀 작업 사망자 올 들어 7명째

25일 서울 강서구 염창동 맨홀 안에서 하수박스 보수공사를 하던 작업자가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관계자들이 현장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사고까지 포함해 올해 맨홀에 들어가 작업하다가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7명째다. 지난해 같은 기간 사망자가 1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훨씬 많다.

지난달 27일 금천구에서는 상수도 누수 긴급 복구공사를 위해 투입된 70대 노동자가 맨홀 속에 진입했다가 질식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에서는 오수관로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맨홀 아래에서 쓰러져 실종됐다가 하루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그를 구하려 맨홀에 들어갔던 업체 대표도 심정지 상태로 구조됐지만 가스 중독으로 끝내 숨졌다. 지난 5월 4일 전북 전주의 한 제지 공장에서도 맨홀 안에서 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유독 가스를 흡입해 숨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7일 맨홀 사망사고와 관련해 "이같은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 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 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오는 9월 30일까지 '혹서기 맨홀 질식사고 근절 특단대책'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한 상하수도 맨홀 작업에 대한 현장 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맨홀 사망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고가 맨홀에 들어가기 전 산소와 유해가스 농도를 측정하지 않고, 적절한 보호 장비 없이 작업하다가 일어났다.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실질적인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산대학교 안전보건관리과 조성웅 겸임교수는 "이번 사고도 비가 오면 당연히 작업을 중단한다는 원칙조차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아 일어났다"며 "기상 상황 등과 연계한 작업 통제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맨홀 공사를 발주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시공 계획서 등 서류만 제출받고 현장 작업에 대한 점검은 사실상 관리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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