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에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관세 등 통상 관련 산적한 과제엔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대규모 투자 계획과 농·축산물 추가 개방 여부, 디지털 무역 장벽 등에 대해 세부 사항은 논의되지 않았고 일부 이견도 여전하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무기 구매와 아울러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 참여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언급하는 등 추가 청구서를 내민 듯한 모습이다.
제조업 르네상스 교두보 마련했지만…청구서 또 내민 트럼프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오후(현지시간) 140분 동안 이어졌다. 12시 42분부터 진행된 소인수 회담, 이어 진행된 오찬을 겸한 확대회담까지 예상보다 길어진 결과다. 회담에는 양국 대통령 비서실장과 외교·통상 라인 핵심 참모진이 배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에서 선박이 다시 건조되길 바란다"며 "미국 조선업을 한국과 협력해 부흥시키는 기회를 얻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관세 협상 당시 한국 정부가 제시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정말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고, 이 대통령도 "조선 분야뿐만 아니라 제조업 분야에서도 르네상스가 이뤄지고 있다"고 화답했다.
양국은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조선·원자력·항공·액화천연가스(LNG)·핵심광물 등 5대 전략 산업 분야 총 11건의 협력 양해각서(MOU)가 체결하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이란 핵시설 타격에 동원된 B-2 폭격기를 언급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우수한 무기를 구매해 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B-2 폭격기는 핵 억제력과 정밀 타격 능력을 동시에 갖춘 갖춰 적의 방공망을 뚫고 전략적 목표를 타격하는 데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한국이 4년 동안 1천억달러(약 140조원) 규모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기로 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를 끼워파는 듯한 발언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처럼 한국과도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을 발표하면서 2030년 이후 생산이 예상되는 알래스카 LNG 구매 및 투자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 "韓, 재협상 원한다 얘기 들었지만 개의치 않아"
두 정상이 덕담을 주고받는 등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지난달 관세 협상 타결 후 양국 해석 차가 큰 부분들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미국은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춘다고 합의한 가운데 관세 인하 적용 시점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대미 투자의 총액과 방식과 농·축산물 개방에 대한 이견도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측에서 무역 협정을 재협상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는) 개의치 않는다"고 뼈있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장관도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미국에서는 시장 개방을 원한다"라며 "저희 농민, 제조업자, 혁신가를 위해 시장을 계속해서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구체적인 얘기를 한다기 보다 두 정상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는 오찬이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협의는) 잘 알아서 하길 바란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상 간 구체적인 세목을 갖고 서로 얘기한 건 아니고 우리는 무역협상을 할 것이고 (정도의 얘기를 했다). 너무 분위기가 좋았다"라며 "구체적으로 세목을 따지기보다 과거 얘기를 하면서 기분이 좋은 오찬 자리였다"라고 부연했다.
큰 틀에서의 합의 내용에 대한 세부 사항이 오리무중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미 투자 등도 여전히 '안갯속'…EU는 무역합의 성명 발표
3500억달러(한미 조선 협력 펀드 1500억달러+조선업·반도체 등 2천억 달러)를 어떻게 투자할지, 수익은 어떻게 배분할지 등에 대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명문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EU(유럽연합)의 경우 지난 21일 무역합의 내용을 문서화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불확실성을 해소한 상태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미 정상회담과 별개로) 최근 미국-EU 합의를 보면, 영국과 일본, 한국 순으로 각각 합의문이 공개될 것 같다"며 "지금으로서는 한국이 우려했던 디지털 장벽 등에 대해선 실무 선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고, 미국산 농·축산물 관련 전담 검역 데스크가 정해지면서 (검역 단계에 머물러있던 농·축산물) 수입에 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