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멀어진 영국 건설현장…해답은 발주 책임 강화였다

박종민 기자

건설현장의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정부의 초고강도 대책이 연일 나오고 있다. 여기에 앞장 서는 것은 대통령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로부터 중대재해 감축을 위한 조치 대응을 보고받으면서 "대형 건설사들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받은 사례가 단 1건도 없다. 기업들이 안전 비용을 꼭 확보할 수 있게 과징금 제도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건설사) 입찰 자격을 영구 박탈하는 방안 △금융제재 △안전 미비 사업장 신고 때 파격적 포상금 지급 방안 등 강력한 제재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올해 들어 현장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면허취소'를 검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사고가 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대통령이 앞장서자 관련부처간 대책마련 경쟁이 벌어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내 20대 건설사 CEO들과 간담회를 갖고 "사용 가능한 안전예산의 규모를 늘리라"고 주문했다. 이어 "중대재해가 반복되는 기업에 대한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획재정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공공입찰 참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건설현장에서 불행한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대명제에 반대하는 이견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정부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지느냐는 점이다. 이 대통령과 관련부처들의 대응에서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거의 모든 대책이 '사고 발생 후 제재'에 집중돼 있고, 시공을 할 건설사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英 건설안전 뼈대인 CDM 개정 과정 보니…발주 책임 강화의 역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제공

영국은 세계에서 건설현장 사고가 가장 적게 발생하는 건설안전의 모범생이다. 지난 2020년 기준 OECD 경제 10대국 건설산업 주요 사망사고 지표에서 건설산업 사고사망 십만인율 1.9로 10개 나라 가운데 최소발생국이다. 이 지표에서 대한민국은 20.0으로 꼴찌다. 건설현장이 거칠고 위험하다는 사실은 양국 모두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십수배에 이르는 사망률의 차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영국 건설안전 제도의 밑바탕이 되는 CDM(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건설관리규제법)의 제정과 발전 과정을 보면 그 차이가 어떻게 나는지 알 수 있다. CDM은 영국 산업계 안전의 뼈대라 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아래 하위법령으로 지난 1994년 제정된 뒤, 2005년과 2017년 두 차례 개정됐다. CDM의 핵심은  '사전예방'과 발주·설계·시공·하청 주체의 협업에 의한 안전 보장이다.

특히 CDM의 두 차례에 걸친 개정 과정은 한국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1994년에 제정당시 CDM 제정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안전 확보를 시공 이전 단계에서부터 준비하도록 확장하고, 안전 담보의 책임 주체도 건설사 뿐만 아니라 발주·설계로 넓혔다는 점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영국의 건설현장 안전 보장은 발주·설계·시공·하청의 협업으로 이뤄지게 된다. 건설 비전문가가 많은 발주 특성상 이 단계에서는 발주사가 전문가나 업체를 선정해 제반 안전보장 체계를 위임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제공
 
하지만 1995년 79명이던 건설산업 사고사망자수가 CDM 도입 이후인 2004년 69명으로 12.7% 감소에 그치자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다. 영국정부는 여기서 발주자의 책임을 한층 강화시키는 방향을 택했다. 발주자의 안전보장 업무를 대리인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했던 1994년 법조항을 고쳐 안전책임을 대리인에게 전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 계약 대상자에게 안전관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야하는 의무가 발주자에게 추가됐다. 안전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거나 안전을 확보할 충분한 공기가 주어지지 않게될 경우 발주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된 것이다. 또 시공 이전단계부터 안전 관리 책임자를 반드시 선임하도록 했다. 발주자 뿐만 아니라 설계자의 책임도 강화됐다. 시공이전 단계까지 안전보장의 책임이 설계자에게 주어졌다. 영국 건설안전의 책임은 시공 전까지는 설계자가, 시공 이후부터는 시공사가 책임지는 이중구조가 확정됐다. 설계단계에서부터 안전 담보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화 한것이다. CDM의 두차례 개정이 완료된 후 영국 건설현장의 사망자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韓산업안전보건법도 발주자 책임 강화, 하지만 현실에선…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작성한 '영국 건설산업의 안전보건관리제도' 보고서에서 최수영 연구위원은 "국내 건설사업 발주자는 사업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에 비하여 생산과정(시공단계) 에서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역할 수행에는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한국의 산업안전법도 이런 지적을 상당 부분 반영해 왔다.  하지만 건설현장 안전보장의 책임이 시공사에게 집중돼 있는 한국의 현실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건설공사발주자의 산업재해 예방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는 기초안전보건대장 등 시공 전 서류 작성과 확인 의무만 있었다. 뒤늦게나마 2021년 개정을 통해 '건설공사발주자는 설계자 및 최초 수급인이 안전을 우선 고려할 수 있도록 적정한 비용과 기간을 계상·설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문제는 현장에서 이 조항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느냐다. 새로 추가된 제67조 3항은 의무조항이기는 하지만 위반시 10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가 전부다. 막대한 건설사업 규모를 생각하면 큰 의미를 찾기 힘들다. 이 법이 규정하고 잇는 '적정한' 비용과 기간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기준이 부족하다. 법 개정이 이뤄진지 4년 가까이 지났지만 건설 현장에서 안전 담보를 위한 발주자의 책임이 늘었다는 사실을 체감하기란 힘들다.

 영국은 사고 발생시 대부분 민사적 책임을 지는데, 발주자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막대한 배상을 지게될 수도 있다. 영국 건설현장에서 발주자의 중요한 의무는 "계약자(설계자·시공자)가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시공사가 안전을 담보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때문에 영국에서는 건설공기 연장이 보편적이다. 한국은 '공기 준수'라는 족쇄가 건설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 지나치게 경색적인 한국의 발주·시공사 관계에서 시공사가 안전에 필요한 경우 정당한 공기 연장이나 예산 조정 요구를 할 수 있는 문화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사고 후 처벌에 중점을 두기보다 건설 프로젝트에서 수익을 얻는 모든 주체들이 적절하게 책임을 분담하게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사고 예방의 해답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이유다.
 

英서 정당한 공기 연장은 당연시…韓발주자도 안전 부담 같이 져야

 
CBS노컷뉴스는 영국 건설현장에서 안전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고 한국 실정에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었다. 영국 로펌  트라워즈앤햄린스(Trowers & Hamlins)의 코리아 데스크를 맡고 있는 윤덕근 변호사는 다채로운 국제 건설분쟁 조정 이력을 갖고 있다. 고대법대를 졸업하고 법무법인 율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으며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건설법을 전공해 영국의 건설제도에 정통하다.

영국 로펌 트라워즈앤햄린스(Trowers & Hamlins)의 코리아 데스크를 이끌고 있는 윤덕근 변호사 19일 서울 중구에서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황진환 기자
윤덕근 Trowers & Hamlins 변호사 인터뷰
▶영국은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건설현장 사망사고율이 낮은데 여기에는 CDM이라는 제도가 큰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먼저 영국의 CDM(Construction Design and Management·건설관리규제법)이라는 제도가 어떤 제도인지 소개 부탁드린다.
▷영국에는 우리로 치면 산업안전보건법에 해당하는 법률이 있고 분야별로 하위 법령이 있는데 그 중 CDM은 건설업의 안전 관리를 위한 법 제도다. 우리나라랑 큰 차이점이 뭐냐면 건설 안전의 책임을 시공자에게만 부담시키는 게 아니고 발주자가 전체적인 안전 책임을 관리하고 발주자, 시공사, 설계사 그리고 하청사들이 그 산업 안전에 있어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분담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설 현장 사고의 책임 대부분 시공사 책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영국에서는 발주자들의 책임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나?
▷우리나라 법도 제일 앞에 이념이라든지 목적 같은 게 나오는데, 이 법을 보면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게 발주자의 책임 부분이다. CDM 제4조가 발주자의 적절한 관리 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건설 프로젝트에 있어서 충분한 시간과 자원의 확보를 요구하고 있고, 사전적으로 공사 정보를 제공하는 부분, 그러니까 건설 프로젝트 안전을 확실히 담보하기 위해 충분한 예산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업 예산이라든지, (안전과 관련된)사업의 내용 그런 부분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끔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 시공사가 (안전과 관련된)공사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보장케 하고 그 기록을 유지하고 관리하게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설계자, 시공자들이 적절하게 안전 관리 의무를 취할 수 있도록 발주자가 합리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 현장 현실하고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
▷ 영국 같은 경우는 건설 프로젝트에 있어서 공사비라든지 공사기간 그런 부분에 대해서 사전에 굉장히 신중하게 설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수주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저가 수주를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실 안전 부분과 관련한 충분한 예산이나 공사기간 확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안전관련) 사전 계획이 좀 도식적으로 수립된다고 보시나?
▷ 큰 프로젝트에서는 우리나라도 시공사가 입찰 서류 같은 것도 준비하고 하지만 아무래도 저가 수주를 하다 보면 안전에 필요한 비용을 충분히 확보 못할 가능성이 있고 전체적인 공사비가 부족하면 시공사가 하청사에게 전가할 우려가 있다. 그러 계획적인 부분에 있어서 발주자에게 총괄적인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부분이 영국과의 차이점이 아닌가 싶다.
 
▶CDM의 경우 발주자는 물론이고 설계·시공·하청·노동자 모두에게 안전과 관련한 역할을 분담해 줬다고 한다. 이런 역할 분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 건설 프로젝트는 각자 담당하는 역할들이 다 구분돼 있다. 일반 제조업과 달리 책정된 공사비에 따라서 시공자가 하청사로 넘겨주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안전을 실질적으로 누가 책임지는지가 진행 과정에서 좀 모호해질 수가 있다. 누가 책임지는지 책임귀속 부분이 확실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 단계에서부터 그런 부분들을 확실하게 구분해 정리하는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다.
 
▶ 영국의 경우 발주자가 프로젝트 시작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준비해야할 일들이 굉장히 많겠다.
▷ 그 부분은 굉장히 실무적인 부분이어서 한국과 구체적인 차이점까지 제가 언급하기는 힘들다. 다만 영국은 책임 부분에 있어서 문서를 통해 디테일한 내용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계획 수립 단계 절차라든지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좀 정교하게 짜여져 있다. 그러다 보니 영국 내에서도 이제 CDM 제도에 대해서 이게 서류 작업이 너무 많다는 비판도 있었다고 하더라. 특히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 같은 경우 상당히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있을 정도다. 그 정도로 안전관리 부분에 대해서 관련부처가 굉장히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CDM 제도에서 안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부분이 결국은 예산과 시간이라는 말이다. 예산의 집행 관리감독과 달리 시간의 확보와 관련해서 발주자가 져야할 책임이 있나?
▷ 그 부분에 대해서는 법 자체보다는…사실 우리나라는 수주라든지 그런 부분에서 갑을 관계 개념이 강하지만 영국에서는 사적 계약의 당사자로서 대등한 관계가 좀 더 강조된다. 건설 공사라는 것이 보면 항상 일정 지연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공사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충분히 허용이 돼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공사 기간 연장 등에 있어서 영국에 비하면 더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것 같고, 우리나라는 공사 기간이 부족하면 '돌관공사'라는 것을 굉장히 많이 한다. 부족한 공기를 맞추기 위해 야간 작업이나 적정인원보다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공사를 돌관공사라고 한다. 그런데 영국에는 이 돌관공사라는 개념 자체가 많지가 않더라.
 
▶국제건설 분쟁 조정을 많이 해보셨는데 결국 영국이나 외국 같은 경우 공기가 늦어진다는 것이 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인가?
▷그렇다. 거의 90% 이상의 건설 공사에서는 공기 지연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건설을 하다 보면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많이 발생을 한다. 코로나도 그렇지만 지반을 파다 보면 암반이 발견이 된다든지 예기치 못한 변수가 항상 많다. 우리나라도 제도적으로는 공기연장이나 공사비 증액 부분에 대해 근거를 갖추고는 있지만 실무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는 시공사가 과연 발주자한테 얼마나 적절하게 요구를 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안전문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발주자와 시공사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에도 있다고 보시는건가?
▷ 우리나라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작업을 할 때는 같은 식으로 한다. 공사비가 늘어나거나 공기가 좀 부족하게 되면 그 시점에 굉장히 신속하게 발주처한테 요청을 해야 된다. 과거 우리나라 건설사들은 그런 부분들을 우리나라에서 하던 방식대로 답습을 해서 권리 주장을 잘 안 했었다. 그러니까 해외 발주사들 입장에서는 우리 건설사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착해 보였던 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당한 이유로 공기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 발주자들은 거의 부담을 지지 않는건가?
▷공기가 지연되면 제일 큰 것이 지체보상금이 부과된다. 계약 금액의 일정 비율로 그 공기 지연 부분에 대해서 벌금처럼 이제 부과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상당히 부담스럽기 때문에 돌관공사를 해서라도 공기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발주자들도 정당한 공기지연 부분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동 부담을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으로 들린다.
▷그렇다. 또 공사 예산이라든지 공기 지연에 대한 대책 등 계획적인 부분을 전문적으로 준비하는 회사들이 서유럽에는 많이 발달해 있다. 우리나라도 물론 설계사무소나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그런 부분들을 담당하기는 한데, 조금 더 전문화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역시 건설 현장에서 사고는 발생할 것이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은 어떤 방식으로 지게돼 있나?
▷ 실제 사고가 났을 때 영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책임의 인과관계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가리는데 집중을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책임은 민사적으로 해결하는 편이다. 어떤 회사의 대표자가 형사 처벌을 받는 케이스는 많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
 
▶사고의 책임이 시공사에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말인가?
▷그렇다. 발주자 쪽에서 계획을 잘못했거나 예산이라든지 비용 때문에 적절한 인력이 투입이 못돼서 발생한 사고라고 판단이 되면 그런 부분도 당연히 참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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